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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으로 보는 한국인의 '기복 신앙'

기독일보

입력 Aug 05, 2018 06:22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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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 (下)

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 한국 고유의 가족주의와 인연 사상을 깊게 반영한다.

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 한국 고유의 가족주의와 인연 사상을 깊게 반영한다.

전편에 이어 지난 1일 개봉해 삽시간에 600만을 돌파한 하정우(강림), 주지훈(해원맥), 김향기(덕춘), 마동석(성주신), 김동욱(수홍), 이정재(염라대왕) 등의 출연 영화 <신과 함께 2: 인과 연>을 박욱주 박사님께서 분석해 주십니다. -편집자 주 

◈가족과 인연: 천년의 세월도 끊지 못하는 천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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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인 반도 지형에 농경문화를 영위해 온 한국에서는 주거지 이동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의 가문이 한 지역, 한 동네, 한 집에 대대로 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상, 가계, 혈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자리잡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망자(주로 죽은 가족)와 접신하는 것을 주된 제의로 삼는 샤머니즘, 즉 무속신앙까지 가세하면서 굳건한 가족주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 가족주의 문화는 주후 4-5세기경 들어온 불교의 환생과 인연 개념을 수용하면서 한층 더 강화되었다. 한 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 한 번 인연은 영원한 인연이라는 사고가 우리네 조상들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금번 개봉한 <신과 함께: 인과 연>은 장구한 역사를 가진 확고한 가족주의에 기반을 둔 한국 고유의 종교성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지난 회차에 다룬 바 있던 가택신앙 역시 한 가족이 대대로 거하는 집을 기반으로 형성된 신앙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가족중심적 종교성이 표현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순전히 영화적 재미 측면, 서사의 긴장감과 치밀함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신과 함께: 인과 연>은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객석을 떠나며 살펴본 관객들의 반응은 영화의 자체 완성도에 비해 나쁘지 않았다. 제법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간간이 목격됐다. 한국적 종교성의 핵심요소인 무속, 불교, 유교, 그리고 가족의 인연과 정리(情理)라는 모티프가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리라.

<신과 함께: 인과 연>의 서사는 1,000년 전 동북 9성 공략이 한창이던 고려시대의 함경도, 21세기 현대의 서울, 그리고 망자의 심판이 한창인 저승을 수시로 오간다. 전편인 <신과 함께: 죄와 벌>부터 주인공이었던 저승 3차사 간, 그리고 이 3차사와 염라대왕 간의 생전 인연이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가택신의 이야기는 원작 웹툰과 다르게 예상보다는 그 비중이 작은 편이다. 성주신(마동석 분)의 역할은 저승 3차사의 생전 인연을 알리는 데 주로 국한된다.

영화는 가족의 연이 1,000년을 넘어도 이승과 저승을 가리지 않고 지속되며, 비록 생전에 그 연이 악연이었다 할지라도 용서와 화해의 기회가 남아있다고 가르친다.

이는 관객들에게 심리적 보상을 제공한다. 현세에서 어긋난 인연은 저승에서, 혹은 환생 후의 새로운 삶에서 재차 풀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신과 함께 인과 연
▲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 가족 간, 원수 간의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런 화해와 용서는 내세와 환생을 통해 실현된다.

이는 불교와 융합한 한국 무속신앙이 현대에도 여전히 그 위세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다. 억울한 망자는 새 삶의 기회를 얻고, 생전에 가족과 주변인에게 지은 죄는 내세나 다음 생, 혹은 긴 세월이 지난 후 용서받을 수 있다는 희망은 당장의 불운, 악연, 죄책감 등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하나의 해법과 위안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영화 <신과 함께>는 시리즈 전체가 무속신앙에 기반을 둔 예언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일단 한 사람이 죽음 이후에 처해질 운명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 그리고 그 운명이 생각보다 희망적이라는 점 때문에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는 것으로 판단된다.

◈환생과 인연: 현세를 보완하는 한풀이용 내세관, 환생

동서양을 막론하고 환생 이론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내세관을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이야 유물론과 실존철학의 대두로 '사후 존재란 있을 수 없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지만, 전 인류가 내세의 존재를 확고하게 믿던 시절에는 환생 이론이 전 세계 종교 가운데 다수(불교, 힌두교, 고대 이집트 종교, 고대 그리스 종교, 플라톤주의 계열 영지주의, 잉카 종교)의 내세관을 지배하고 있었다.

환생 이론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새로운 생에서는 현생의 불운과 결핍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선사한다. 강력한 도덕적 교훈도 수여한다. 현생에 악업을 쌓으면 다음 생에서, 혹은 다음 생에 이르기 전 머무르는 내세에서 형벌에 처해진다는 믿음은 사람들에게 선량한 삶을 살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갖는다.

<신과 함께: 인과 연>은 환생 이론이 가진 이런 장점들을 최대한 활용한다. 여기에 인연 사상에 결부된 가족주의 역시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3차사 강림(하정우 분), 해원맥(주지훈 분), 덕춘(김향기 분) 모두 1,000년 동안의 저승체류를 통해 그들 사이에 얽힌 진한 악연을 선연으로 변화시킨다.

강림과 해원맥은 그들이 생전 저지른 죄업을 용서받는다. 심지어 염라대왕마저도 생전 가족 사이에 얽힌 악연으로 인해 받던 고통을 해소한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김수홍 병장(김동욱 분)은 환생의 기회를 얻는다.

신과 함께 인과 연
▲<신과 함께: 인과 연>의 저승 3차사. 저승과 이승에서 1,000년 동안 함께함으로써 생전의 악연을 해소한다.

천륜과 인연 때문에 발생한 수많은 문제와 불행들이 저승과 환생을 통해 해결된다. 이는 한국 무속신앙의 현세중심적 내세관을 십분 반영한 결과다.

무속신앙은 기본적으로 사물화 혹은 물상화를 기반으로 삼는 기복신앙의 성격을 갖는다. 신적 존재, 초월적인 것, 그리고 내세는 현세의 복락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가치판단이 기본으로 작동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 무속신앙에서 환생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즉 '기계에서 나온 신' 역할을 담당한다. 얽히고 설킨 악연, 죽음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원한(恨) 등은 모두 죽음 이후에 수여되는 새로운 삶, 새로운 시간, 새로운 기회에 의해 해결된다. 내세의 장구한 시간은 환생의 한 준비과정일 따름이다. 이로써 환생은 무속신앙의 진정한 구원이자 신으로 등극한다.

왜 한국 무속신앙은 망자의 영혼을 저승에 모셔두지 못하고 끝내 이 땅으로 불러내리는 것일까? 진정한 복락은 바로 현세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속담처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확고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한풀이는 이 땅에서, 가족과의 끈끈한 관계 가운데서, 몸을 덧입은 생생한 감각적 경험들 안에서만 실현된다는, 철저히 현세중심적인 사고가 무속신앙이 가르치는 환생이론에 배태되어 있다.

◈환생과 구원: 현세에의 미련에 머무르는 신앙, 기복신앙

사물화 경향과 현세 중심주의는 기복신앙의 두 기둥이다. 기복신앙에 있어 내세, 초월, 신령(神靈), 환생 등 초험적 실재와 사건 모두는 복된 현세를 위한 보조적 장치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기복신앙을 거부한다. 참된 복락이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에 있다는 믿음에 정면으로 저해되기 때문이다.

신과 함께 인과 연
▲환생과 인연 사상에 의해 묘사된 저승은 하늘에서의 영원한 복락을 소망하는 기독교 신앙과 상충되는 내세관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 사이에 보이는 갖가지 기복적 행태들은 모두 토착화의 결실이라 볼 수 있다. 하나의 종교가 새로 전파되면 그 지역의 정신문화와 융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당연한 일 전체가 모두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니다.

토착화는 원(原) 신앙의 변개를 초래한다. 이런 변개가 그 신앙의 근본에 맞닿게 되면, 새로 정착된 신앙은 더 이상 원래의 신앙이라 보기 어려운 새로운 종류의 것이 되고 만다.

한국 기독교는 무속신앙의 영향으로 이런 근원적 변개의 과정을 겪었다. 청교도 신앙을 이어받은 미국 기독교 선교사들의 헌신 덕에 보수적 복음주의 교의를 확보했으나, 기독교인들의 실제 삶에서는 여전히 기복신앙이 확고하게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확고한 한국적 가족주의의 영향력 또한 그대로 살아있다.

물론 앞서 지적한 대로 유물론, 무신론, 실존철학,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덕에 무속신앙과 그에 결부된 가족주의, 인연사상, 천륜사상 등은 약화되고 있는 추세다. <신과 함께: 인과 연>에 묘사된 성주신의 소멸, 그리고 허춘삼 가족의 붕괴는 이런 실태를 반영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 기독교계에는 호기(好機)라기보다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전에 한국인들의 심성이 무속적 종교성으로 무장되어 순전한 복음적 기독교 신앙의 수용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향후에는 무종교적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다 못해 전적으로 무시하는 세태가 팽배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무종교적 세태에도 한국만의 특색이 존재한다. 서구인들의 무종교적 세태가 자기 인생의 내밀한 가치, 피상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는 고유한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반면, 동아시아인들의 무종교적 세태는 극단적으로 노골적인 현세 중심주의로 치우치는 듯 하다.

공산혁명과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애초 종교 자체가 현세 중심적이었던데다, 유물론 사상까지 도입되고 나니 남은 것은 천박하리만치 극단적인 현세 중심주의 뿐이다.

신과 함께 인과 연
▲한국 고유의 내세관은 지극히 현세중심적이다. 종교성 자체가 현세적이다보니, 유물론 및 포스트모더니즘이 점차 승해지는 오늘날 한국의 무종교적 세태는 갈수록 더 피상적이고 즉물적인 양태를 보이고 있다.

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은 한국에 이와 비슷한 미래가 펼쳐져 있음을 암시하는 듯 하다. 영화 속에 반영된 한국 고유의 현세 중심주의, 신과 내세마저 현세의 한풀이 도구로 전락시키는 무속신앙의 정신은, 단지 그것이 이교적이어서만이 아니라, 향후 기독교 신앙의 근간인 내세의 구원에 대한 소망에 완벽하게 대치되는 무종교적 세태로 전환될 가능성을 다분하게 내포하고 있기에,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사뭇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은 우리네 한국인들의 전통적이고 근원적인 종교성을 진단해볼 기회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도 의미가 없지 않다.

예상한 대로 영화를 통해 확인되는 한국 고유의 무속적 종교성은 온전한 기독교 신앙의 확립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현세의 복락과 가족의 정리가 기실 내세의 구원을 위해 봉사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무속신앙에서는 정반대로 내세 체류와 환생이 현세의 복락과 가족의 정리를 위해 봉사한다.

기독교인으로서 나의 삶은 어떤 편에 서 있을까? 영화를 계기로 우리의 신앙이 기독교적인지, 아니면 기복적이고 무속적인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박욱주 박사.
박욱주 박사.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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