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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라 (누가복음 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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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Feb 09, 2017 10:29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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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효 목사의 목회 칼럼

장재효 목사
장재효 목사(서울 성은교회)

어떤 율법사가 상당히 교만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영생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존경하거나 그 가르치심을 기대해서 영생의 도리를 깨닫기 위해 던진 질문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율법을 가르치는 자이기에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하시니 그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고 답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6:5 이하에 있는 말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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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고 역사를 주관하시고 계신다고 믿어진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며, 삶의 의욕과 목적을 하나님께 맞추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고 진정 믿어지는 사람의 마음은 온전히 하나님께로만 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대로 믿어지며 행동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목숨은 영적인 목숨과 육적인 목숨이 있는데, 영적인 목숨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면 끝이 나는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는 레위기 17:11의 말씀처럼 육적인 목숨은 피로써 생명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유지시켜서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11:12부터 보면 시장하셨던 예수님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으나 무화과 때가 아니어서 열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나무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이가 예수님이시며, 열매를 찾으셨으나 잎사귀만 무성했기 때문입니다. 잎사귀는 육체의 세상조건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 무화과는 생존의 의미가 없으니 생기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튿날 제자들은 그곳을 지나다가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이 살리시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로마서 2:6의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목숨을 다한다는 것은 죽을 각오로 섬김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그를 더욱 강건하고 윤택하게 하셔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힘을 다한다는 것은 그저 한 번 힘을 쓰고 나면 기운이 빠지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힘 있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으로 생기를 공급하십니다. 창세기 2: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 했습니다. 사람의 육체 속에는 기(氣)와 혈(血) 두 가지가 생명체로 활력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기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는 세상조건으로부터 얻어진 것입니다. 음식을 먹고 보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힘을 다한다는 말은 이 두 가지, 기와 혈에 공급되는 힘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뜻이라는 것은 마음에 작정한 계획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은혜로 살고 구원을 얻었고 하늘소망을 목적으로 천국 갈 믿음을 가꾸며 사는 사람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더 잘 섬겨드리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은 영적인 성과, 많은 영혼을 지옥 길에서 하늘나라로 이끌 수 있는 전도와 선교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만족함을 드릴 수 있을 때 내 육체의 사는 목적을 그것에 두어야 합니다. 생활로 본을 보이며 믿음의 봉사와 자기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헌신적 봉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곧 뜻을 다하는 것입니다.

율법사가 예수님을 두고 시험해 보고자 했던 것은 지금껏 율법을 다 지켜 행했고 그것을 옳게 여겨주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자신의 의식화된 생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은 그들의 의식과는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섬기기를 힘쓸 때 그 은혜를 따라 구속해주심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9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 율법사는 자기가 율법을 다 지켜 행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율법을 가르치고 강조하는 사람으로 이 율법을 통하여 사람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열심히 애써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옳게 보여지길 원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을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비탈길입니다. 예루살렘은 지중해 해수면에서 762M나 높은 고지에 있고 여리고는 해저면입니다. 지중해 수면보다 250M가 더 낮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는 약 35KM입니다. 이 길을 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 그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았습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영적인 문제를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강도만난 자를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 뒤에 레위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레위인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직책을 맡은 자로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어 그들의 생활을 책임져 주셨던 자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못본체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 개, 돼지처럼 취급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쌍히 여기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나귀에 태워 주막에 데리고 가서 돌보았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다음 날 길을 떠나며 주막주인에게 돈을 주며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돌보아 달라고 당부합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고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참다운 사랑실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예화를 드시고는 율법사에게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 율법사의 입에서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입니다”는 소리가 나오도록 만드셨습니다. 현대 많은 교인들이 율법에 대한 의식과 내용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실천하는 생활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2:17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두 가지 강령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이 가르친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묶어놓은 것입니다. 즉, 율법의 완성은 사랑 실천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고통은 함께 나누되 그렇게 되어진 사연은 하나님께서 잘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믿어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는 그 받은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나누어야 하며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주변의 이웃들을 보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이며 소유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계산하지 마십시오. 나누어 주었으면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잠언 19:17에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네 주변에 있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네 몸처럼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라고 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같이 네 이웃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권자이시고 삶의 성패(成敗)를 결정지어 주실 분입니다. 그러나 그 성공과 실패를 결정지을 사람은 바로 본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살리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그를 통하여 영광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내게 하신 것처럼 그 이웃에게 행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고, 받은 은혜를 나누며 살기를 힘쓰면 하나님은 더 좋은 조건으로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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