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선교사는 "이슬람권과 기독교 국가는 언제나 심리적인 원수 관계에 있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서구 사람들의 인식에 이슬람은 원수로 남아 있다. 이에 선교사를 파송하려는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1900년대 초까지 이슬람권에 들어간 선교사들이 없었으며, 아랍어 성경 번역은 837년, 아랍어 성경 출판은 1530년대에 이뤄졌다. 또한 이슬람권에서는 성경을 보지 못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에 성경을 접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유 선교사는 "무슬림들은 제대로 된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들에게 학살을 당했다. 그러나 과거에 똑같은 방법으로 기독교인들도 무슬림을 학살한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강의를 진행 중인 유해석 선교사. 유 선교사는 영국 출신 토마스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올 때 입고 왔던, 웨일스 전통복 차림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강혜진 기자
강의를 진행 중인 유해석 선교사. 유 선교사는 영국 출신 토마스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올 때 입고 왔던, 웨일스 전통복 차림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강혜진 기자

이슬람이 과거 기독교 지역에서 성장하는 이유

 

중동 지역은 선지자 무함마드(마호메트)가 태어나기 전 4세기 동안 기독교 국가가 있었다. 유 선교사는 "로마·알렉산드리아·시리아·예루살렘·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 등에서 초대 교회의 모든 신학이 나왔다. 또한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가 논의되고 공식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로마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전부 이슬람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유 선교사는 "비잔틴 제국은 페르시아와의 오랜 영토 전쟁으로 많은 세금을  걷게 되었고,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던 이집트 등은 이슬람을 해방군으로 맞이했다"면서 "기독교인들이 종교적인 신념보다 정치적·경제적 실리를 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선교사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이 무슬림 치하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2등 시민이 되어 인두세를 많이 내거나 무슬림이 되는 것이었다. 이를 거절하면 다 죽임을 당했다. 이집트에서 기독교 군인이나 공무원들은 절대로 고위직으로 진급할 수 없다.

유 선교사는 최근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이슬람국가(IS)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사담 후세인 정권 말기 3개월 동안 이라크의 모든 개신교 교회를 다니면서 아랍어로 설교한 적이 있었다. 특히 모술은 요나 선지자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오래된 기독교 유적지이자 기독교인들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IS가 모술을 점령한 뒤 기독교인들을 다 추방시킨 것이다. 이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고 했다.

미국과 영국 출신 기자들의 참수와 관련해 "이것은 무슬림들의 전통이다. 꾸란(코란)에는 '길을 가다 불신자를 만나거든 목을 자르라'고 적혀 있다. 기록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유대인들 600여명을 참수했다"고 설명했다.

무슬림이 성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결혼이다. 이슬람 법에 의하면, 무슬림 남성은 유대인이나 기독교인 여성과 결혼할 수 있으며, 결혼 후 이들은 자연스럽게 이슬람화된다. 반면 무슬림 여성은 다른 종교의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이슬람의 선교 계획 중 가장 첫 번째는 바로 마스지드(이슬람 사원)를 건립하는 것이다. 유 선교사는 이슬람 사원에 대해 "그냥 건물이 아니고 알라의 통치가 임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슬람 사원이 한 번 지어지면 그곳은 알라의 땅이라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기존 건물을 사서 이슬람 사원으로 개종하며, 무슬림 유치원과 학교도 부지런히 세우고 있다"고 했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똑같다고 주장하지만, 꾸란의 66%는 구약에서, 7%는 신약에서 가져왔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유 선교사는 "무슬림이 이렇게 증가하는 이유는,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없었고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건강한 교회를 만들자▲영혼 구원에 모든 초점을 맞추자 ▲신앙의 전수율을 높이자 ▲무슬림을 전도하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유 선교사는, 옥스퍼드대학교 장학생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한국에 건너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토마스 하디 선교사가 1966년 8월 2일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의 내용을 나눠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난 조선 사람을 대하면서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조선 사람을 사용하여 위대한 간증이 되는 민족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유 선교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복음이 우리 자리에까지 왔다. 한국교회가 더 어려워지기 전에 이슬람 선교를 해야 한다. 이슬람이 몰려오고 있다. 우리가 이슬람에 무지하지 않고 깨어서 긴장해야 한다"면서 "무슬림들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에, 이들을 배척하지 말고 따뜻하게 대해주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