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서울에 교회를 개척한 K목사. 노방전도를 마다하지 않았던 열정과 '평신도의 목자화'라는 참신함으로, 그는 금세 교회를 중형 규모로 성장시켰다. 입소문을 타니 목회도 한결 수월했다. 그러던 중 문제가 불거졌다. "이단이다", "K목사에게 윤리적 결함이 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돌기 시작했던 것. K목사는 당황했다. 다행히 소문은 더 퍼지지 않았지만, 교회의 성장세는 한풀 꺾이고 말았다. K목사는 루머의 출처가 인근 교회들이 아닐까 의심했다. 교회들이 가깝게 모여 있어 서로 의식하는 분위기를 피부로 느낄 정도였기 때문이다.

힘을 합쳐 '마귀'들과 싸워야 할 교회들이 소위 '교인 쟁탈전'을 벌이며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등, 그 역기능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한국교회의 교세가 전반적으로 정체 내지 쇠퇴하고 있는 가운데, 교회 성장이 소위 '수평이동'에 주로 의존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교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러면서도 끌어오기 위해, 교회들 사이의 '경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평이동, 성장 둔화된 1980년대 중반 후 두드러져"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신학연구소 최현종 선임연구원의 논문 '한국 개신교의 새신자 구성과 수평이동에 관한 연구'(한국기독교신학논총 2014년 91권에 수록)에 따르면, 대형교회(교인수 1천명 이상)의 새신자 중 48.4%가 수평이동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최 연구원이 지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전국 242개 교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중·대형교회(301~999명)는 45.8%, 중·소형교회(101~300명) 40.3%, 소형교회(~100명) 42.7%로, 대형교회의 수평이동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최 연구원은 "전체적으로 수평이동:불교:가톨릭:무종교의 비율은 43:11:4:41(%) 정도로 나타났다. 즉, 새신자 10명이 오면 그 중 4명은 수평이동, 4명은 무종교인, 2명은 다른 종교인의 비율을 지닌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최 연구원은 "여기서 어느 정도 수평이동의 비율은 과소, 무종교의 경우는 과대평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최 연구원은 교회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번 조사를 실시했는데, "현 교회에 나오기 이전에 잠시 교회 출석을 중단했을 경우, 이는 수평이동이 아닌 무종교에 포함되었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최 연구원은 "수평이동이란 흔히 새로이 교회에 등록한 신자 중에서 개종자, 즉 비종교인이나 타종교인이 개종을 통해 등록한 것이 아닌, 기존의 여타 개신교 교회 신자가 교회를 바꾸어 등록한 사례를 지칭한다"며 "이러한 개신교회의 수평이동은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온 상황이지만, 특히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회의 성장률이 둔화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이후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한국교회의 전반적 교세가 정체 내지 쇠퇴하고 있는 가운데, 교회 성장이 소위 ‘수평이동’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로 인접한 교회들 사이에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상기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가 없음). ⓒ김진영 기자
한국교회의 전반적 교세가 정체 내지 쇠퇴하고 있는 가운데, 교회 성장이 소위 ‘수평이동’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로 인접한 교회들 사이에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상기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가 없음). ⓒ김진영 기자

"교회 외적 요소에 지나치게 신경 써... 소모전 양상"

문제는 이 수평이동 때문에 교회들이 불필요한 경쟁을 벌인다는 점이다. 서울 일원동 개포감리교회 안성옥 목사는 "과거 이 지역에 단독주택이 6~700세대 정도 있었는데, 교회 수는 무려 50여개에 달할 정도로 포화상태였다"며 "그러다 보니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한 교회에서 주일예배 안내를 맡던 교인이 2주 후 그 이웃 교회에서 똑같이 안내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적도 있다. 이런 일들이 잦아지자 결국 지역 목회자들이 모여 수평이동한 신자는 서로 받지 말자고 합의까지 했었다"고 말했다.

안 목사는 또 "교회들 입장에선 일종의 생존 문제다 보니 교인들의 이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작은 교회의 경우, 수평이동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이나 위기의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교회 외형 등 비본질적인 것에 눈을 돌리는 등 부작용이 초래되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 명동의 '교회다움' 민걸 목사도 "교인들의 수평이동은 교회들에겐 그야말로 생사가 걸린 문제다. 교인수가 줄고 순수한 새신자를 전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평이동에 대한 대책이 그 만큼 없어진 것"이라며 "그래서 교회들마다 이미지 경쟁에 열을 올린다. 주보나 예배당 조명 등을 가지고도 경쟁할 정도다. 이처럼 교회 외적인 요소들에 지나치게 힘을 쏟고 있고, 이는 교회들에게 있어 소모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 목사는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이제 정말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다. 지금처럼 소득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를 안식처 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수평이동이 아닌 순수한 새신자로 교회가 성장하려면 무언가 다른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다른 목회자는 수평이동을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주어진 양이 일정해, 한 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 쪽이 반드시 손해를 보는 게임 -편집자 주)에 비유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목회자는 "지금 우리 교회가 성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기쁜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수평이동에 의한 제로섬 게임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며 "비록 우리 교회는 성장할지 몰라도 다른 교회는 어려움을 겪는다. 이것이 하나님나라 확장에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는 과거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수평이동'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었다. 당시 김 목사는 "수평이동을 그저 큰 교회가 작은 교회 교인들 다 빼앗아 간 걸로만 보면 교회 건강성 회복은 어렵다"며 "수평이동을 막으면 교회가 건강해질까. 그 반대라고 본다. 수평이동을 강제로 못하게 막으면 목회자들이 열심히 목회해서 좋은 교회 만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자기 교회 교인들은 다른 교회로 못 가기 때문이다. 교회들끼리 서로 선의의 경쟁이 있어야 발전도 있는 것인데, 그걸 강제로 못하게 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