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권 목사.
(Photo : 기독일보) 안인권 목사.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이름 모를 잡초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 잡초의 생육을 측정하는 지표에는 '잡초의 높이'와 '잡초의 길이'가 있다. 잡초의 높이는 위로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즉 수직적으로 그 잡초가 뻗어 나가면서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를 측정한다. 이러한 잡초를 직립형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든 잡초가 수직, 위로만 자라는 타입은 아니다. 어떤 잡초는 위로 자라기보다는 옆으로 줄기를 뻗어나가면서 자라기를 거듭하는 잡초도 있다. 위로 자라기와 옆으로 자라기를 거듭하는 잡초도 있다. 위로 자라기와 옆으로 자라기는 잡초의 생태계에서 각각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일까? 또한 이런 잡초들의 위로 자라기와 옆으로 자라기는 지식의 깊이와 넓이 추구에 어떤 의미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까? 잡초의 높이는 낮지만 전체 길이로 측정할 때 높이 자란 잡초보다 더 긴 잡초가 있다. 길게 자란 잡초가 높게 자란 잡초에 비해 자라는 과정에서 더 좋지 못한 악조건을 견뎌 왔을 가능성이 많다.

높게 뻗어나가지 못하도록 방해공작을 폈던 외압 요인이 높이 자람을 포기하게 만들고 옆으로 자라게 만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높이 뻗는 잡초에 비해 비록 높이는 낮지만 뿌리에서 줄기 끝까지 길이는 훨씬 길다.어떻게 보면 옆으로 길게 자라는 동안 더 많은 잡초적 삶을 경험한 증표가 바로 잡초의 길이가 되는 것이다. 높이 자라는 생존경쟁에서 패배한 잡초가 옆으로 길게 자라는 생존전략으로 바꾼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높이 뻗은 잡초들간의 경쟁을 통해서 결정되지 않고 오히려 옆으로 길게 자란 잡초들 간의 끈질긴 생명력이 결정해주는 경우가 잡초들의 세계에서는 더욱 많이 발견된다. 같은 맥락에서 '지식의 깊이'와 '지식의 넓이를 생각해볼 수있다. 특정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서 한 분야만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외골수들의 전체 '지식의 길이'는 깊이의 정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 지식 길이는 수직적 지식 길이이며, 지식 깊이 파기를 통해 축적한 지적 노하우의 양과 직결된다.

즉 지식 깊이 파기를 통해 특정 분야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결과 특정 분야와 직결되는 지적 노하우의 양이 많아짐으로써 생긴 정도가 바로 지식 길이가 된다. 지식 깊이 파기는 또한 적어도 자신이 관심을 두고 파온 지식 분야에 해당하는 질적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관심영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그 질적 수준이 현격하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지식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식 깊이 파기와 지식의 양과 질은 자신이 깊게 판 지식 분야 내에서만 통용되는 양과 질의 많고 높음이 된다. 이와는 달리 '지식의 넓이'는 특정 관심 분야만 한정되지 않고 인접 분야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지식의 양적 측면은 지식 깊이 파기 전략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등히 많을 수 있다. 양적으로 확보된 지적 노하우의 질적 수준은 지식의 넓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적 수준과 지금까지 추구해온 지적 궤적의 수준에 따라 전적으로 달라진다.

누가 어떤 노력을 통해 어떤 지적 궤적을 따라서 지식의 여정을 추구해왔는지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삶의 형태가 정해진다. 지식의 깊이는 잡초의 위로 자라기에 비교해볼 때 '아래로 파기전략'에 해당된다. 자신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를 아래로 깊이 파고들면서 뿌리를 뽑겠다는 탐구전략이다. 한 분야만을 계속 파다보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 즉 전문가의 비전이 바로 깊이 파기, 아래로 파기를 통해서 해당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으로 체득되는 지식은 지식의 깊이는 나무랄 데 없지만 조금만 자기 분야를 넘어서는 얘기를 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하거나 인접 유관 분야와의 관련성에 대한 감응능력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깊이 파다가 중간에 바위 덩어리와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이를 극복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경우가 또 다른 취약점과 한계가 된다.

워낙 좁게 파다 보니까 깊이 파기 과정을 방해하거나 저지하는 어떠한 장애물에 대해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임기응변이나 위기상황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바로 이점에서 '지식의 넓이'가 필요한 것이다. 지식의 넓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지향점이나 목표는 지식의 깊이에 있다. 우물을 팔 때 깊이 파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넓게 파기 시작해야 되는 것처럼 지식을 깊게 파려면 지식의 넓이를 확보해야 한다. 좁게 파는것보다 깊이 파는 속도가 떨어질 수 있으나 넓이를 확보하지 못하면 깊이를 확보할 수 없게 된다. 넓이의 확보는 깊이의 확보가 되는 셈이다. 잡초가 높이 자라기 위해서 상응하는 뿌리의 깊이가 확보될 때 외부의 시련을 견디며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인생문제는 깊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이도 있다. 지식의 깊이와 넓이가 다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다 넓은 지식, 보다 깊은 지식이 보다 넓고 깊은 인생을 살 수 있게 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다양한 사건을 만나게 된다. 모든 상황을 소화해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상당한 깊이와 넓이를 가진 사람이다. 단순히 지식의 깊이와 넓이 뿐만 아니라 인격과 신앙에 있어서도 차원이 다른 스케일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인류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역경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책상에 앉아서 인생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할 수 없다. 삶의 현장에서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 물속에 들어가야 물의 깊이 만큼의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 불속에 들어가야 뜨거운 만큼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때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고 고생이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러나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된다. 깊고 넓은 그릇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걸린다면 그릇이 만들어지는 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채워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