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애틀랜타 한국 학교의 발전

(1) 애틀랜타 한국 학교가 한인 천주 교회로 수업 장소를 이전

한국 학교는 학교 자체 건물이 없는 관계로 항상 학교 운영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한국 학교의 장소를 옮겨 다니며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이는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학교 운영과 나아가서는 자체 건물 소유를 목표로 하고 1991년 2월 한국 학교 이사회(이사장 김용건)에서 한국 학교 후원의 밤 개최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 후원의 밤 행사 준비위원장으로 권명오 이사를 선출하였다.

1991년 7월 제 1회 한국 학교 후원의 밤을 개최하여 많은 한인들의 호응을 얻어 대성황을 이루었다. 후원금이 2만 달러(순이익)가 넘게 모였다. 첫 번째로 가진 후원의 밤 행사에 성공을 거둔 이사회 측에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후원 사업을 펼쳐 가기로 결의하였다. 1992년과 1993년에 걸친 후원의 밤 행사는 권명오 행사위원장이 주도하여 이 지역 한국 학교 후원의 밤 행사에 있어서 전통성을 구축하였다. 1992년 여름 애틀랜타 한국 학교(교장 지혜정)가 수업 장소를 한인 천주 교회로 이전하였다. 1992년 8월 22일 새 학기를 시작한 애틀랜타 한국 학교가 초과 등록생 30명에 대한 교실을 마련치 못해 당초 예상 등록생 수 200명 만을 수용키로 결정하였다.(주간동남부 1992년 9월 15일 자 기사) 애틀랜타 한국 학교(교장 지혜정)는 9월 3일 백도가든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고 이같이 결정하는 한편 초과 등록생 30명에게는 사과문을 발송하여 내년에 재 등록하도록 요청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이와 함께 이사회는 교실 부족 현상을 보완하기 위해 트레일러를 구입하여 13세 이상 성인 2반을 수용키로 하였으나, 칸막이가 얇아 진지한 수업 분위기 조성이 힘들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또 이사회는 2부제 수업을 검토하였으나 교사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한 교사가 1, 2부 수업을 맡을 경우 학생과의 친밀감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어 이에 대한 결정을 지혜정 교장에게 일임하기로 하였다.

한편 이사회는 서울여대 부속 화랑초등학교(교장 정진해)와의 자매 결연 안건을 상정하여 통과시켰다. 이 자매 결연은 애틀랜타를 방문 중인 화랑초등학교 심인자 교감을 동생 심중구 씨(한미TV 대표)가 한국 학교에 소개하는 한편 화랑초등학교 심인자 교감이 한국 학교 측에 자매 결연 의사를 밝힘으로 이루어졌다.

1994년 정기 이사회에서 권명오 이사를 한국 학교 이사회 이사장으로 선임하였다. 한국 학교 이사회 권명오 이사장은 후원의 밤 행사를 더욱 발전시켜 1994년에도 행사위원장을 맡아 성공리에 행사를 치루었다. 1995년에는 원용각 이사가, 1996년에는 양용삼 이사가 후원의 밤 행사위원장으로 수고하였다.

또 이사회는 모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작년 180명에 비해 27.8%증가함에 따라 학교 건물 신축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기금 형성을 위해 한인회관 건립위원회(위원장 우병욱)와 공동으로 모금 운동을 펼치기로 의견을 모으고 차기 이사회의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결정하였다.

1997년 12월 5일 그 동안 저축해 온 20만 달러로 한국 학교 부지 1,2에이커를 한인회와 함께 권명오 이사장과 김경숙 교장이 계약서에 서명함으로 역사적인 서명 행사를 가졌다. 뷰포드 선상 한인회관과 이어지는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계약한 것이다.

1997년 민수종 이사장을 거쳐 1999년 양용삼 이사장이 다시 한국 학교 후원의 밤을 부활하여, 행사위원장에는 차경오 이사가 맡았으며, 2001년에는 원재권 대회장과 장지욱 행사위원장이 수고하였다. 권명오 이사장이 1998년 5월 한국 학교 교지에 실은 학생 ‘여러분들께’를 여기에 싣는다.

(전략) 1994년 제가 처음 이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학교로 사용하던 천주 교회에서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는 피치 못할 상황에 처했을 때, 갈 곳은 없고 개학은 해야 되고 참으로 가슴이 저리고 아팠습니다. 다행히 한 학기는 구세군장 사관님이 도와주셔서 학업을 계속하게 됐고, 그 다음 노크로스 하이스쿨에서 학교를 빌려준 덕분에 지금까지 별탈 없이 학교는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의 집을 빌려 쓰는 셋방살이 신세니 불안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개교 이래 십여 년 동안 역대 한국학교 이사장님들 및 이사님들의 노고와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 여러분들과 이 지역 한인 여러분들께서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덕분에 작년 12월 5일 학교 건물 부지 1.2에이커를 마련했습니다. 이제 멀지 않은 장래에 여러분들께서 어깨를 펴고 마음껏 공부를 하면서 뛰어 놀 수 있는 학교를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후략)


(2) 애틀랜타 한국 학교 개교 20주년 기념식

2001년 5월 19일 애틀랜타 한국 학교 개교 20주년 기념식이 한인회관에서 개최되었다. 김경숙 교장이 역대 교장과 이사장을 소개하였고, 김경환 한인회장과 조중표 총영사의 축사, 양용삼 한국 학교 이사장의 인사가 이어졌다. 이 기념식에서 박선근 씨 외 1명에게 특별 공로상을, 송종규 씨 외 12명에게 이사장 상을, 강신범 이사 외 3명에게 5년 이상 근속 이사장 상을 각각 수여하였다.

제 2부 행사에서는 6회 졸업생인 류진선, 박소라, 은민수, 이안나, 장유진, 조지연, 김진희 등 7명의 졸업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재학생 대표로 손보희 학생회장이 떠나는 선배 졸업생들에게 석별의 아쉬움을 나타내며 한국 학교 선배로서 훌륭한 사람이 되길 기원하였다. 이어 졸업생 대표 은민수 학생은 답사를 통하여 선생님들의 은혜에 감사하고 한국 학교 졸업생으로서 앞으로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또 졸업 행사에서 한국 학교 측은 학교 건물을 제공한 노크로스 고등학교 팸 웰튼 교장에게 감사패를 증정하였으며, 이밖에 장한 어머니상과 5년 이상 근속 교사상도 수여하였다. 제 3부에서는 개근상, 학교장상, 우등상, 학부모회장상 등 재학생 수상식이 있었고, 제 4부에서는 학습 발표회가 개최되었다.


(3) 애틀랜타 한국 학교의 학교 부지 착공 기념식

2001년 7월 24일 현 한인회관 뒤편 학교 부지에서 애틀랜타 한국 학교 건축위원회는 착공 기념식을 열고 공식적인 건축 시작을 알렸다. 이 날 기념식에는 양용삼 한국 학교 이사장, 김경환 한인회장, 김백규 한인회 이사장, 원재권 건축 기금 모금 행사 대회장, 장지욱 행사준비위원장, 선우인호 한국 학교 교감 등 학교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해 환호와 함께 테이프를 끊었다. 건축위원회는 미국계 토목 회사 로버트 호머 트럭킹사와 계약을 맺고 부지 벌목 작업과 함께 1주일 간의 부지 정지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이 날 양용삼 한국 학교 이사장은 “애틀랜타 한국 학교는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자체 재원으로 부지를 매입하고 건축을 하는 사상 최초의 학교로 기록될 것인데,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한다”고 말하였고, 김경환 한인회장은 “애틀랜타 한국 학교가 이 지역의 다른 민족에게도 모범을 보이면서 성공적으로 조속한 시일 내에 완공되길 바란다”고 기원하였다.


(4) 애틀랜타에서 운영되는 다른 한국 학교(혹은 한글 학교)

애틀랜타 한국 학교는 제 1부 제 2장 제 4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애틀랜타 한인회 지원 하에 설립되었고, 또한 애틀랜타 한인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발전하였다. 애틀랜타 한국 학교는 형식적으로는 비영리 단체로서 독자적으로 운영되어 왔으나, 실제적으로는 설립 당시부터 한인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운영되어 왔다. 하지만 애틀랜타 한인회에서 애틀랜타 한국 학교를 운영해 온 것은 아니다.

애틀랜타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애틀랜타 한국 학교’의 발전과 더불어 1990년대 초를 지나면서 이 지역 여러 교회 내에 한국(한글) 학교의 설립이 부쩍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 주요 원인으로는 1) 이곳 한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거주 지역이 애틀랜타 외곽으로 확산되어 그 범위가 매우 넓어졌기 때문이다. 2) 애틀랜타 한국 학교가 1990년대 초 학교 건물 확보와 이전 문제로 증가하는 학생들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3) 여러 중대형 교회들이 자체 건물, 재정, 그리고 인적 자원 등을 이용하여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와 교육에 적극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4) 한인 이민자들의 계속적 증가와 다양한 인종과 복합 문화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5) SAT 2 시험에 한국어 시험과목 설정에 따른 수요가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6) 이 지역 한인 이민 1세들의 자녀들에 대한 한국어, 한국 문화, 한국 역사 교육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들은 1980년대에도 이미 교회 자체에서 주일 학교의 일환으로 주일마다 한두 시간씩 형편에 맞게 한국어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1993년에 처음으로 교회에서 토요일에 학교를 열어 교회 밖의 어린이들에게도 개방하여 학생들을 받아들여 한국 학교 구실을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교회로부터 재정적이나 행정적으로 독립하여 부설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1993년 8월에 제일장로교회 부설로 ‘제일 한국 학교’가 정삼숙 박사를 교장으로 하여 개교하였다. 약 100명의 학생들이 등록하였고 이사회를 별도로 구성하여 재정 보조를 받으며 발전하게 되었다. 정삼숙 교장은 공립학교 수학교사로 재직하면서 교육 현장에서 쌓은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학교 운영에 임한 것이다. 특히 청소년 상담과 지도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Counseling에도 역점을 두었다. 정삼숙 박사는 2001년 현재 동남부 한인 학교 협의회 회장으로 수고하고 있다.

1994년에 중앙장로교회 부설로 ‘중앙 한국 학교’가 임윤용 씨를 교장으로 하여 70여 명의 학생과 15명의 교사진으로 시작하였다. 이에 다른 교회들에서도 부설 한국 학교를 개교하였다. 1995년에는 염광 한국 학교(교장 임충수 목사), 베다니 한국 학교(교장 김진훈 목사) 등이 설립되었다. 1998년도엔 마리에타 지역에 조지아 세종 한국 학교(교장 이철희)가 개교하였다. 이렇게 교회 부설 한국 학교의 개교가 늘어가면서 중소 교회에까지 확산되어 현재 약 20여개의 한국 학교가 이 지역에 있다.

이러한 한국(한글) 학교들은 1) 한글과 역사, 문화 교육에 역점을 두고 2) 한국어로의 신앙 교육에 중점을 두어 평소 교회에서 영어로 주일 학교가 진행되는 것을 보완하며 3) 한국 음악, 무용, 미술, 연극, 태권도 등의 특별 활동을 지도하며 4) 설날이나 추석 등 민속적인 풍습을 가르치며 5) 글짓기, 동화, 동요대회를 열어 학생들의 학업 욕구를 불러일으키며 동기 부여에 힘을 기울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제시한다.

학교 수의 증가와 교사들의 양적, 질적 성장에 기인하여 기존의 동남부 한인 학교 협의회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연합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상호 협조와 발전을 꾀하고 있다. 약 40여 등록 학교 중에 애틀랜타 지역에 약 20여 학교가 참여하고 있다. 매년 연합 교사 연수회를 갖고 연간 1회 총회를 통하여 임원진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애틀랜타 총영사관으로부터 교재와 부교재를 분배받기도 한다. 나아가서는 재미 한인 학교 협의회에 대표를 파견하고 협회지도 발간하여 정보를 교환하며 상호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애틀랜타 한국 학교 협의회는 1998년 애틀랜타 한국 학교 교감 선우인호 씨와 베다니 한국학교 교감 송해순 씨, 제일 한국 학교 교감 김혜병 씨, 그리고 중앙 한국 학교 임윤용 교장 등이 임원진으로 구성되어 매년 교사 수련회, 동요 대회, 글짓기 대회를 개최하여 학교간 협조와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 한국 학교들의 생성과 발전으로 보도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환경과 프로그램 속에서 한국어, 문화, 역사 등의 교육을 받고, 학부모들뿐만 아니라 이 지역 단체, 유지, 언론과 기관들의 관심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고양되고 있다. 그러나 학생과 교사의 지속적 확보 문제, 학습 자료와 재정 등의 부족으로 인해 연속적, 체계적인 발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곳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애틀랜타 한국 학교의 학생과 교사의 꾸준한 증가로 말미암아 학교 건물을 확보하고 체계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의 운용에 따른 양적 질적 발전과 병행하여 중소 규모의 교회 부설 학교와 지역 중심 학교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은 무척 다행한 일이며 앞으로 더욱 긴밀한 유대와 협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