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가톨릭 신학자 한스폰발트자르(Hans von Baltzar)나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개신교 신학자 알브레히트 페터스(Albrecht Peters)교수는 기독교인이라면 가져야 할 네 가지의 규범을 제시해 준다. 그것들을 교회에 적용해보면, 건강한 교회는 다음의 4가지 규범(coram Deo, coram hominibus, coram Meipso, Coram Mundo)을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즉,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라는 神前意識(신전의식)이 우선 있어야 한다. 모든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먼저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태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엇이 하나님의 듯인지를 식별하는 문제는 항상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사회 정치적 가치에 편승하여 다수의 의견이 곧 진리라고 하는 불합리한 공식이 교회 안에서는 철폐되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제한된 공동체의 규칙으로 한계지우는 일은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어떤 교단들의 총회장 선출방식이 제비를 뽑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다. 이런 것은 성경의 방식을 따르는 것 같지만 성경 속의 사람들의 방식을 모방한 일에 불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란 이웃(coram hominibus)과의 건강한 관계정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 때 한국교회는 교회가 ‘개인구원이 먼저냐, 사회구원이 먼저이냐’ 하는 낡은 논쟁 아래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초대교회에서는 구원이라는 개념을 개인구원과 이웃을 위한 구제라는 개념으로 포괄적으로 사용해 왔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교회는 결국 사회와 동떨어진 고립된 섬으로 존재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교회는 사회 속에 연관되어 있고, 또한 그 역할도 이전의 개인 구원의 역할로부터 교회의 사회적 역할로 확대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즈음해서 우리의 관심사는 적벌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은 곧 교회의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현대 정치사를 들여다보면, 한 때 복음주의 보수주의 입장을 지닌 교회들이 정교분리라는 전통적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정치적 독재정권이 만연하도록 기회를 준 적이 있었는가하면, 이에 반하여 소위 소외 엘리트의 역할을 하던 반정권적 혁명의식을 가졌던 교회들이 오히려 지난 정권들의 비호아래 지배엘리트로 변화함으로서 교회의 복음적 자기 정체성을 넘어 정치적 사회 집단화하는 잘못을 범한 적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건강한 교회란 자기 성숙(coram Meipso)이 전제되어 있는 교회를 말한다. 소위 '자신 안의 내면적인 갈등과 성적인 충동'(coram Meipso)으로부터 벗어나 성숙한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는 말이다. 교회는 구원을 소지하고 있으면서도 많은 갈등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기, 질투, 분당, 권력욕, 당회원 사이의 갈등, 돈 문제 등 많은 교회 안 밖의 갈등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개인의 문제라고 해도 교회 안에서는 곧 교회 전체 문제로 진화된다. 때문에 교회는 자기성숙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 특별히 우리 이민 사회의 교회들은 세속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교회에 적용시킴으로서 교회를 단지 사회적인 단체 중 하나로 스스로 간주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교회는 적어도 자기 성숙을 위한 변화가 있어야 하고 이웃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교회는 자연친화적인 교회(coram Mundo)이어야 한다. 종래 교회가 이 용어인 ‘코람 문도’(coram Mundo)를 사용할 적에는, 자연을 숭배하지 말고, 자연을 잘 다스리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좀 더 현실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자연친화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즉, 과거의 본래적 의미에 현재의 의미를 첨가한 해석이 요망된다.
종래적인 의미로 ‘코람 문도’는 세속적인 물질화를 넘어서야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오늘날 교회의 물량주의와 배금주의는 교회 건축에서부터 공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일반적인 교인의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교회는 정직하고 검소해야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생활의 자원들을 검소하게 활용하고 아끼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즉,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라는 神前意識(신전의식)이 우선 있어야 한다. 모든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먼저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태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엇이 하나님의 듯인지를 식별하는 문제는 항상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사회 정치적 가치에 편승하여 다수의 의견이 곧 진리라고 하는 불합리한 공식이 교회 안에서는 철폐되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제한된 공동체의 규칙으로 한계지우는 일은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어떤 교단들의 총회장 선출방식이 제비를 뽑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다. 이런 것은 성경의 방식을 따르는 것 같지만 성경 속의 사람들의 방식을 모방한 일에 불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란 이웃(coram hominibus)과의 건강한 관계정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 때 한국교회는 교회가 ‘개인구원이 먼저냐, 사회구원이 먼저이냐’ 하는 낡은 논쟁 아래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초대교회에서는 구원이라는 개념을 개인구원과 이웃을 위한 구제라는 개념으로 포괄적으로 사용해 왔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교회는 결국 사회와 동떨어진 고립된 섬으로 존재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교회는 사회 속에 연관되어 있고, 또한 그 역할도 이전의 개인 구원의 역할로부터 교회의 사회적 역할로 확대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즈음해서 우리의 관심사는 적벌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은 곧 교회의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현대 정치사를 들여다보면, 한 때 복음주의 보수주의 입장을 지닌 교회들이 정교분리라는 전통적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정치적 독재정권이 만연하도록 기회를 준 적이 있었는가하면, 이에 반하여 소위 소외 엘리트의 역할을 하던 반정권적 혁명의식을 가졌던 교회들이 오히려 지난 정권들의 비호아래 지배엘리트로 변화함으로서 교회의 복음적 자기 정체성을 넘어 정치적 사회 집단화하는 잘못을 범한 적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건강한 교회란 자기 성숙(coram Meipso)이 전제되어 있는 교회를 말한다. 소위 '자신 안의 내면적인 갈등과 성적인 충동'(coram Meipso)으로부터 벗어나 성숙한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는 말이다. 교회는 구원을 소지하고 있으면서도 많은 갈등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기, 질투, 분당, 권력욕, 당회원 사이의 갈등, 돈 문제 등 많은 교회 안 밖의 갈등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개인의 문제라고 해도 교회 안에서는 곧 교회 전체 문제로 진화된다. 때문에 교회는 자기성숙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 특별히 우리 이민 사회의 교회들은 세속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교회에 적용시킴으로서 교회를 단지 사회적인 단체 중 하나로 스스로 간주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교회는 적어도 자기 성숙을 위한 변화가 있어야 하고 이웃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교회는 자연친화적인 교회(coram Mundo)이어야 한다. 종래 교회가 이 용어인 ‘코람 문도’(coram Mundo)를 사용할 적에는, 자연을 숭배하지 말고, 자연을 잘 다스리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좀 더 현실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자연친화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즉, 과거의 본래적 의미에 현재의 의미를 첨가한 해석이 요망된다.
종래적인 의미로 ‘코람 문도’는 세속적인 물질화를 넘어서야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오늘날 교회의 물량주의와 배금주의는 교회 건축에서부터 공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일반적인 교인의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교회는 정직하고 검소해야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생활의 자원들을 검소하게 활용하고 아끼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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