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를 부르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라 명하셨다. 그 명령에 따라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자기 아들의 할례를 행해서 그 양피를 모세의 발 앞에 던졌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 하심을 그쳤다. 이것은 출애굽기 4장 24절부터 26절까지 기록된 내용이다. 필자는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가졌었다. 하나님은 왜 모세를 죽이려 했을까? 어떻게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는 그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 아들의 할례를 행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모세의 두 아들 중 누구의 할례를 행하였을까?
하나님은 왜 모세를 죽이려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사명은 애굽에서 노예로 고통당하는 자기 백성, 즉 할례(남자 성기의 귀두 부분 표피를 베어냄) 받은 백성(창17:9-14)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라는 것이었다. 모세는 그 사명을 감당하려고 애굽으로 향했지만 정작 자기 아들들도 다 할례를 행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를 불러서 일을 맡기신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딤전3:5)”, 교회 감독/장로/집사들의 필수 요건이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딤전3:2-3,12)라고 말씀해 준다. 모세는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아직 자신의 자녀도 할례를 다 행치 못하였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십보라는 어떻게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시려는 이유를 알게 되었으며, 또 즉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십보라가 누구의 할례를 행했는가를 알게 되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모세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 게르솜(뜻: 이방에서 객이됨)과 둘째 엘리에셀(뜻: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심)이다(출18:3-4). 출애굽기 4장 25절은 십보라가 차돌을 취해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Cut off her son's foreskin)’라고 단수(한 아들)로 되어 있다.
만약 미디안에서 두 아들들의 할례를 전혀 행하지 않았다면 어찌 십보라가 모세가 죽어 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 아들의 할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며, 전혀 보지도 못했던 할례를 행할 수 있었겠는가. 성경은 십보라는 이미 할례에 대해 알고 있었고, 또 할례 행하는 것을 보았던 경험이 있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위급한 상황에서 십보라는 누구를 할례 했다는 것일까?
어떤 이는 첫째 아들의 할례를 행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세가 둘째는 할례를 했지만 굳이 첫째만은 행치 못했어야 할만한 이유가 없다. 그리고 두 아들이 다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먼저 첫째 아들의 할례를 행했다고 가정한다면 아직 둘째는 할례 받지 않은 상태이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던 것을 멈추시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절반만 해도 다 한 것으로 봐주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필자는 분명히 둘째 아들의 할례를 행했다고 본다. 출애굽기 2장 21-22절을 자세히 보면 모세가 미디안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아내로 삼아 게르솜을 낳았다고만 기록돼 있다. 둘째 아들을 가졌다는 내용이 없다. 그리고 곧바로 23절에서 “여러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 ”라고 말해주며, 24절부터 4장 17절까지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는 사건을 기록해 준다. 그리고 4장 18-20절에서 그 명령에 순종하여 장인 이드로의 허락을 받고 자기 아내와 아들들(두 아들)과 함께 애굽으로 떠난 것을 기록하고 있다. 모세는 첫 아들을 사명을 받기 전에 낳았고, 둘째 아들은 그 후 가진 아이이다. 그러므로 첫째와 둘째 사이의 나이 차이는 많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여기에 한 스토리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모세가 미디안에서 십보라를 아내로 맞아 첫 아들을 낳고 8일만에 할례를 행했다. 그런데 십보라는 전혀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할례를 모세가 게르솜에게 행하는 것을 보고 아주 질겁을 했다. 갓난아이의 성기의 끝 부분의 살을 베었기에 그 아이의 피는 낭자했고 아프다고 우는 것을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십보라는 속으로 ‘이것이 끝이다. 둘째 아이부터는 절대로 그런 고통을 주지 않고 절대로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을 것이다. ‘여자(아내)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십보라가 아들을 가진 엄마가 된 후부터 모세의 가정에서도 아내의 목소리가 커져 갔다. 그리고 그 아들이 점점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 영향력은 강해져 갔다. 세월이 지난 후에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애굽으로 향하게 됐는데 아내가 둘째 아들을 뒤늦게 갖게 됐다. 모세가 80세에 가까워 가는 때에 둘째를 낳았던 것이다. 모세는 둘째 아들도 할례를 행하려 했지만 십보라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게 됐고 결국 할례를 행하지 못한체 애굽으로 떠나게 됐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들에게도 할례를 다 행치 못한 모세를 할례를 다 행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모세를 죽이시려 하셨다. 모세가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한 십보라는 자신이 둘째 아들의 할례를 완강히 반대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리고 즉시 둘째의 할례를 행했다.
이 사건 이후에 모세는 그 가족을 미디안 처가 집으로 돌려보냈다(출18:2). 모세의 사명은 많은 위험과 고통을 내포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으로 향하면서 가족을 데리고 가라고 명하셨을 리가 만무하다. 자기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면서 처자들을 다 데리고 가라 말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모세는 왜 가족을 데리고 갔을까?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출4:18)”라고 말하여 허락을 받는다. 모세가 좋은 일로 간다하니 장인이 반대할 리도 없으며, 자기 처자도 함께 간다고 졸랐던 것이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보다는 인간적인 정에 끌리어 처자를 다 데리고 애굽으로 향하게 됐다. 이러한 모세를 하나님은 그냥 둘 수 없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자들 특히 지도자(Leader)들은 필히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이어야 한다(딤전5:5)고 성경과 본 사건은 가르쳐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였을 때에 아브라함은 그 엄청난 명령에 어느 누구, 특히 아내의 동의도 받지 않고 아침 일찍 일어나 모리야 산을 향해 떠났다. 이러한 용기와 결단이 지도자의 자질에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람을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사람을 죽이려고도 하여(물론 절대 죽이시지 않으시는 분이시지만) 고난(건강/물질/정신)을 당하게 하신다. 이는 그 사람을 더욱 겸손(Humble)하고 정직(Honest)하고 강건(Healty)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알게 되며,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67)"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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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모세를 죽이려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사명은 애굽에서 노예로 고통당하는 자기 백성, 즉 할례(남자 성기의 귀두 부분 표피를 베어냄) 받은 백성(창17:9-14)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라는 것이었다. 모세는 그 사명을 감당하려고 애굽으로 향했지만 정작 자기 아들들도 다 할례를 행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를 불러서 일을 맡기신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딤전3:5)”, 교회 감독/장로/집사들의 필수 요건이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딤전3:2-3,12)라고 말씀해 준다. 모세는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아직 자신의 자녀도 할례를 다 행치 못하였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에 대한 답은 십보라가 누구의 할례를 행했는가를 알게 되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모세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 게르솜(뜻: 이방에서 객이됨)과 둘째 엘리에셀(뜻: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심)이다(출18:3-4). 출애굽기 4장 25절은 십보라가 차돌을 취해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Cut off her son's foreskin)’라고 단수(한 아들)로 되어 있다.
만약 미디안에서 두 아들들의 할례를 전혀 행하지 않았다면 어찌 십보라가 모세가 죽어 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 아들의 할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며, 전혀 보지도 못했던 할례를 행할 수 있었겠는가. 성경은 십보라는 이미 할례에 대해 알고 있었고, 또 할례 행하는 것을 보았던 경험이 있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위급한 상황에서 십보라는 누구를 할례 했다는 것일까?
어떤 이는 첫째 아들의 할례를 행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세가 둘째는 할례를 했지만 굳이 첫째만은 행치 못했어야 할만한 이유가 없다. 그리고 두 아들이 다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먼저 첫째 아들의 할례를 행했다고 가정한다면 아직 둘째는 할례 받지 않은 상태이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던 것을 멈추시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절반만 해도 다 한 것으로 봐주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필자는 분명히 둘째 아들의 할례를 행했다고 본다. 출애굽기 2장 21-22절을 자세히 보면 모세가 미디안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아내로 삼아 게르솜을 낳았다고만 기록돼 있다. 둘째 아들을 가졌다는 내용이 없다. 그리고 곧바로 23절에서 “여러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 ”라고 말해주며, 24절부터 4장 17절까지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는 사건을 기록해 준다. 그리고 4장 18-20절에서 그 명령에 순종하여 장인 이드로의 허락을 받고 자기 아내와 아들들(두 아들)과 함께 애굽으로 떠난 것을 기록하고 있다. 모세는 첫 아들을 사명을 받기 전에 낳았고, 둘째 아들은 그 후 가진 아이이다. 그러므로 첫째와 둘째 사이의 나이 차이는 많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여기에 한 스토리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모세가 미디안에서 십보라를 아내로 맞아 첫 아들을 낳고 8일만에 할례를 행했다. 그런데 십보라는 전혀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할례를 모세가 게르솜에게 행하는 것을 보고 아주 질겁을 했다. 갓난아이의 성기의 끝 부분의 살을 베었기에 그 아이의 피는 낭자했고 아프다고 우는 것을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십보라는 속으로 ‘이것이 끝이다. 둘째 아이부터는 절대로 그런 고통을 주지 않고 절대로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을 것이다. ‘여자(아내)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십보라가 아들을 가진 엄마가 된 후부터 모세의 가정에서도 아내의 목소리가 커져 갔다. 그리고 그 아들이 점점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 영향력은 강해져 갔다. 세월이 지난 후에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애굽으로 향하게 됐는데 아내가 둘째 아들을 뒤늦게 갖게 됐다. 모세가 80세에 가까워 가는 때에 둘째를 낳았던 것이다. 모세는 둘째 아들도 할례를 행하려 했지만 십보라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게 됐고 결국 할례를 행하지 못한체 애굽으로 떠나게 됐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들에게도 할례를 다 행치 못한 모세를 할례를 다 행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모세를 죽이시려 하셨다. 모세가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한 십보라는 자신이 둘째 아들의 할례를 완강히 반대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리고 즉시 둘째의 할례를 행했다.
이 사건 이후에 모세는 그 가족을 미디안 처가 집으로 돌려보냈다(출18:2). 모세의 사명은 많은 위험과 고통을 내포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으로 향하면서 가족을 데리고 가라고 명하셨을 리가 만무하다. 자기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면서 처자들을 다 데리고 가라 말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모세는 왜 가족을 데리고 갔을까?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출4:18)”라고 말하여 허락을 받는다. 모세가 좋은 일로 간다하니 장인이 반대할 리도 없으며, 자기 처자도 함께 간다고 졸랐던 것이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보다는 인간적인 정에 끌리어 처자를 다 데리고 애굽으로 향하게 됐다. 이러한 모세를 하나님은 그냥 둘 수 없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자들 특히 지도자(Leader)들은 필히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이어야 한다(딤전5:5)고 성경과 본 사건은 가르쳐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였을 때에 아브라함은 그 엄청난 명령에 어느 누구, 특히 아내의 동의도 받지 않고 아침 일찍 일어나 모리야 산을 향해 떠났다. 이러한 용기와 결단이 지도자의 자질에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람을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사람을 죽이려고도 하여(물론 절대 죽이시지 않으시는 분이시지만) 고난(건강/물질/정신)을 당하게 하신다. 이는 그 사람을 더욱 겸손(Humble)하고 정직(Honest)하고 강건(Healty)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알게 되며,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67)"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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