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이 90% 이상인 복음주의루터교회(ELCA)에서 교단 역사 141년 만에 루터란신학대학원 첫 한인 졸업생으로 15년간 묵묵히 믿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메시야한미연합루터교회 박민찬 목사를 만났다. 개척자의 자리가 그렇듯 ‘루터 교단도 있습니까?’ ‘루터 교단에 한인 목사도 있나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아온 박 목사는, 그럼에도 교단 내 후배 목회자들이 생기고 삶을 헌신하는 성도들이 있어 작지만 귀한 열매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15년을 왔으니 앞으로 35년이 지나 루터교단 내 한인사역 50년이 되면 1.5세, 2세 목회자들이 성장해 다문화 목회를 이끄는 리더로 세워질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첫 한인목회자인 제가 더 모범을 보이고, 한인교회를 세워나가는 본보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4대 장로교 집안에서 루터교 목사로
“왜 루터 교단의 목사가 되었나?”라는 질문에 박민찬 목사는 집안 내력을 먼저 소개했다.

그의 증조부(曾祖父) 박규섭 옹(翁)은 한국 기독교 100년사에도 기록된 인물로 한국 최초 선교사 중 한 명에게 복음을 받아들여 ‘스스로 상투를 자르고 신주단지를 깨고’ 교회를 세우고 복음전파에 나섰던 헌신적인 장로교인이었다. 증조부의 신앙이 이어온 박민찬 목사 역시 총신대학교 재학 당시만 해도 당연히 장로교 목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전혀 달랐다. 기독교 교육학을 전공한 그에게 한 교수가 그 분야는 루터 교단 신학대학이 뛰어나니 그곳에서 공부해보라고 권유했고, 학위만 받고 가려는 생각으로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미국 루터란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교육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입문했을 때 뉴욕노회에 계신 보우만 감독님이 저를 개인적으로 찾아왔어요. 당시만해도 한인학생은 제가 처음이었는데, 루터교단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하셨죠. 보우만 감독님 삼촌께서 한국에 파송된 최초의 루터란 선교사였던 만큼 한국인 사역에 대한 마음과 꿈이 있으신 분이었죠. 저는 한 달의 시간을 달라고 했고,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길을 물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이미 청빙받은 교회가 있었고, 정통 장로교인인 부모님과 친지들의 반대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결국 하나님께서 ‘누군가 불모지에서 개척을 해야 한다면 네가 해보라’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예상대로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이상한 곳이 아니냐’ 하실 정도로 거부감을 갖기도 하셨지만, 후에 백인교회에서 당당하게 설교하고 목양하는 모습을 본 부모님은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끊임없이 기도해주는 든든한 동역자가 됐다.

▲박민찬 목사는 루터교회에 대해 5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예전(禮典)을 통해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그분의 깊은 사랑을 느끼는 자리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전(禮典)이 살아있는 예배
메시야루터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한마디로 ‘예전(禮典)이 살아있는 예배’라 할 수 있다. 매주 성찬식을 거행하고, 심방용 성찬식 미니 세트가 있을 정도다. 성찬식을 매주 나누면서, 성찬의 의미를 묵상해보고 자신을 위해 살을 찢고 피를 쏟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된다고 박민찬 목사는 설명했다.

열린 예배, 설교가 중심인 예배에 익숙한 한인들이 루터교회의 예전(禮典)을 처음 대하면 대부분 어색해하고 당황한다고 한다. 가톨릭에서 주로 이뤄지는 예전(禮典)을 개신교회에서 집례하는 것에 대해 묻기도 하는데, 박 목사는 “예전(禮典)은 예배 가운데 오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말씀만큼 예전(禮典)을 중시하는데 이는 수동적으로 앉아서 듣기만 하는 예배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내가 몸을 낮추고 고백함으로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예전(禮典)의 역사는 루터교회의 창시자인 마틴 루터(1483~1546)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터는 당시 교회의 관습이었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비판으로 1517년 ‘95개조 논제’를 발표해 파장을 일으켰고, 갖은 핍박 속에서도 ‘오직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을 견지해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 마틴 루터는 새로운 교회 형성에 힘썼는데 그의 개혁적인 신앙을 따르던 이들을 멸시하는 뜻으로 부르던 호칭이 통칭이 되어 ‘루터파 교회’가 탄생하게 됐다. 하지만 루터는 예전(禮典)을 소중히 여겨 지켜왔고, 500년간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무료 ESL, 한국어학교 등 지역사회 봉사에 힘쓰는 교회
메시야교회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것이 무료 ESL과 한국어 학교 그 외에 다양한 지역사회 봉사다. 특히 ESL의 경우 백인교우들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섬김, 수준 높은 교육으로 지난 8년간 2,000여 한인들이 거쳐갔을 만큼 입에서 입으로 알려진 알짜배기 과정이다. 매년 봄과 가을 두 번 개강하는데 특별한 광고를 하지 않아도 몇 주 전부터 문의가 이어지고, 수강신청을 시작해 며칠 안에 마감되는 등 지역주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어 학교는 매주 토요일 읽기, 쓰기, 듣기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으로 이 또한 인증된 한인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자녀들과 외국인을 위해 무료로 열고 있다. 이런 사역 뒤에는 전도를 위한 박민찬 목사와 교회의 열정과 노력이 담겨 있다.

“공부를 마치고 처음 사역지가 뉴욕 백인교회였죠. 교단에서 한국인 사역 선교사로 파송받아 동사목사(Cooperate Pastor)로 부임해서 한인들을 전도하려고 1년간 노력했는데 정말 안되더군요. 어떻게 자연스럽게 루터 교단을 알리고 전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백인교우들과 의논해 무료 ESL, 한국어 학교를 열게 됐어요. 10명, 20명이 수업을 들으러 오면 1~2명이 교회에 친근함을 갖게 되고 성도가 됩니다. 1996년 시작해 제가 애틀랜타로 내려올 당시 2001년에는 100명까지 한인사역이 발전했어요. 경험을 살려 애틀랜타에서도 시작했죠. 한인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백인 교사들에게 ESL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훌륭한 선교의 일환임을 강조한다. 교사들도 먼저 기도와 정성으로 수업을 준비하고, 쿠키와 빵 등 간식을 만들어 오는 수고를 곁들이기도 하다. 꼭 이 교회를 다녀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어려움도 있다. 교회가 점점 알려지면서 루터교회가 생소한 한인들 사이에 누군가 나쁜 소문을 퍼트려 안팎으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인사회를 향한 메시야교회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라그랜지 개척 앞두고 있어…후배들 위해 길 열어나갈 것
박민찬 목사는 지난 8년간 부모가 갓난아이를 낳아 기르듯 정성껏 길러온 메시야교회를 떠나 라그랜지 어드밴트루터란교회 한인사역을 개척한다. 전통 있는 백인교회였던 이곳에 담임목사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박민찬 목사가 몇 번 설교를 하며 돌봐왔는데, 정식으로 교단에서 파송을 받은 것이다. 근처에 기아차 공장이 들어설 예정으로 뉴욕과 애틀랜타에 이어 3번째 한인선교지가 될 이곳에 그가 직접 가기로 한 것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라고. 비전은 다문화 목회(Multi-Cultural Ministry)다.
▲얼마전 라그랜지에서 합동예배를 드린 박민찬 목사와 성도들 모습. 박민찬 목사는 곧 라그랜지 담임목사로 부임해 백인교인들을 목양하는 한편, 한국인 사역을 열어나가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1.5세 2세들 가운데 소명을 받고 신학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차세대 사역자들의 선택은 1세 중심의 한인교회 아니면 개척입니다. 개척한다고 해도 재정문제에 부딪혀 번번히 무너지는 것이 현실이지요. 훌륭한 학력과 비전, 열정을 가졌지만 1세 교회의 지원을 받으며 그 우산아래 있을 수 밖에 없어요. 전 생각이 다릅니다. 영어와 한국어가 자유로운 이들이 오히려 타민족 교회에 가서 담임목회를 하며, 한인사역을 키워나가는 거죠. 루터교단에서 제가 백인교회에 담임목사로 가면, 1부 예배는 모두 함께 예배를 드리되 오후 시간에는 한국어 성경공부나 다른 소규모 예배 등을 통해 한국인이 가진 신앙의 유산과 정체성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결국엔 모든 민족을 하나님 말씀 안에서 목양할 수 있는 다문화 목회가 궁극적인 사역입니다.”

궂은일도 마다 않고 교단에서 한인 목회자의 길을 열어온 그 뒤를 이어 루터란 신학대학에서 공부하고 목회를 준비하고 있는 후배가 5명이다. 또 교회 청년들 가운데 비전을 갖고 루터교단에서 일하고자 훈련 받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박 목사는 이들이 바로 희망의 씨앗이라고 기대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쏟는 정성도 크다. 백인교회에서 설교할 기회가 생기면 이들을 데리고 가 설교하고 목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백인교우 집에 하루 이틀 머물면서 이들의 삶과 신앙을 함께 나눌 자리를 마련해주곤 한다. 라그랜지에서 역시 한인선교를 열어나가고 은퇴하기 전 테네시나 알라바마, 미시시피 가운데 한 곳을 더 개척할 계획이다. 물론 교단과 노회, 개 교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루터의 개혁정신 이어받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서’를 내세워 교황에 의해 출교 당했던 마틴 루터가 오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교황청에서 정식으로 복권된다. 십자가에 못박힘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비록 멸시를 담고 있었지만, 믿는 자들의 정체성이 되었던 것처럼 잘못된 관습과 부패에 대항해 나온 루터를 따르는 이들이라는 ‘루터란’들이 오랜 세월 변함없이 지켜온 믿음이 옳다고 인정받는 것이라고 박민찬 목사는 기뻐했다.

메시야교회 또한 정통 개혁주의 신앙을 붙들고 온 500년 루터 교회의 역사를 이어 새로운 세대를 열어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한인 목회자들과 한인 사역에 기초석이 될 것을 기대한다.

메시야한미연합루터교회(Christ The King Lutheran Church)는 5575 Peachtree Pkwy., Norcross, GA 30092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배는 주일 오전 10시 30분 한인채플실에서, 성경공부 오후 1시 30분, 수요열린찬양예배는 오후 8시에 진행된다. 문의 (770) 346-7676 또는 홈페이지 http://home.kcmusa.org/messi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