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코네티컷, 메릴랜드, 뉴욕, 텍사스… 미국 각지에서 떠나 온 일행 10명은 이른 아침 인천공항에서 첫 인사를 나누었다. 짙은 안개로 인하여 비행기 출발이 늦어진다는 방송을 들으며 약간 걱정도 되었지만 무사히 중국 심양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심양 공항에서 다시 영국에서 온 2명과 호주에서 온 1명이 합류하여 우리는 힘차게 이번 단기의료선교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활기차고 복잡한 심양 시내를 지나 선교 유적지를 먼저 방문하게 되었다. Ross 목사님에 의하여 성경이 최초로 조선어로 번역되었고 많은 믿음의 선각자들을 배출하였으며 중국의 문화혁명기간 동안 극심한 종교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굳건히 믿음의 그루터기를 지켜온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며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 교회가 크게 성장하여 복음사역을 잘 감당하고 많은 선교의 열매가 맺혀지기를 기도하며 다음 행선지로 향하였다. 의료봉사가 예정되어 있는 B시까지는 버스로 15시간의 긴 여정이다. 청명한 가을 날씨에 하늘과 햇볕은 가까이 다가왔고 지붕마다 널려 있는 가을걷이 한 옥수수의 노란 빛깔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끝없는 시골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날이 저물어 목적지의 중간쯤 되는 T시에 도착하여 저녁식사 후 피곤한 몸을 누이며 잠을 청하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조선족 교회(00교회)로 향하였다.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따뜻한 웃음과 부여잡은 투박한 손을 통하여 벌써 한민족의 끈끈한 정이 흐름을 느끼게 된다. 예배를 준비하는 경배와 찬양 시간, 우리 민족 특유의 흥겨운 율동과 그들의 한과 정이 서려있는 은혜로운 찬송 가사를 접하며 뜨거운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지구의 동쪽과 서쪽 끝으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같은 언어로 복음을 함께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메어져 왔다. 예배 후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B시를 향하여 다시 버스에 올랐다. 창 밖으로 펼쳐진 끝없는 산하를 바라보며 달리고 또 달렸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이 되는 압록강변을 따라 도로공사가 한창이며 올해 안으로 마무리 된다고 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한번도 정세를 생각하니 시원하게 뚫린 이 도로가 혹시 군사용으로 쓰이기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하였다. 중간중간 많은 터널과 도로공사로 인하여 길이 막혀 있어서 때로는 산골짜기 좁은 길로 우회하여 쉬지 않고 달렸다. 늦은 저녁시간 B시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내일을 준비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6시, 오늘의 모든 사역을 겸손과 섬김으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강건케 하시기를 기도하며 은혜로운 Q.T.로 하루를 열었다. 아침식사 후 숙소로부터 2시간 정도 달려 아주 작은 촌락에 도착하니 진료를 받기 위하여 벌써 30명 정도의 주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생 처음 대하는 얼굴들이지만 반가운 마음에 덥석 두 손을 부여잡고 함박웃음으로 인사부터 나누었다. 투박한 북한 사투리가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으며 그들의 주름진 얼굴과 거친 손마디가 몹시도 정겨운 것은 웬일일까?

그곳 주민들은 한족(중국인)과 조선족(한국인) 가리지 않고 모두가 진료를 받았으며 우리 의료진들의 정성 어린 진료와 투약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와 닿았다. 중국 내에서 외국인들이 현지인을 상대로 선교와 전도하는 일이 불법이므로 집회를 갖거나 눈에 뜨이게 기도나 찬양을 할 수는 없지만 서로 바라보는 눈빛과 따스한 손잡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이 그들의 마음에 전하여질 수 있도록 성의를 다 하였다.

그들의 질병이 의약품으로 고쳐짐과 동시에 그들의 메마른 영혼이 성령의 단비로 젖어 들며 복음을 접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분 한 분 진료하였다. 먼 곳에서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너무나 벅찬 우리들의 만남이기에 가슴 뿌듯한 정경이 곳곳에서 보여지고 있었다. 오래 전 한반도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후손들이지만 이제는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으로서 당당하게 선조들의 생활 양식과 문화 예절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한민족의 끈끈한 면면을 볼 수 있어서 큰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였다.

B시 근처의 작은 촌락을 옮겨 다니며 사흘 간의 진료 일정을 마치고 삼자교회인 조선족교회를 방문하여 수요일 저녁예배를 함께 드리고 사역 현황에 관하여 설명을 듣게 되었다. 중국에 살고 있지만 강 건너(북한) 동족의 어려움과 고통에 마음 아파하며 헐벗고 굶주린 내 동족을 조금이라도 도우며 살고자 하는 그들의 애틋한 사랑이 나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며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침이 되어 압록강변에 나가 강 건너 손에 잡힐 듯 펼쳐진 북한 땅에 오가는 북한 주민들을 바라보니 마음 한 끝이 저려왔다. 강가에서 무엇인가 씻는 아낙네도 보이고 세수하는 어린 아이도 보였다. 물을 퍼서 머리에 이고 가는 노인도 보이고 물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남정네도 보였다. 한편으로는 200미터 정도 간격으로 국경 경비초소가 있고 그 안에는 장총을 어깨에 멘 경비병들이 보였다. 무표정한 그들의 얼굴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음날 우리는 백두산 등정에 올랐다. 지난 밤부터 내리는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는 했지만 기온이 뚝 떨어져 두꺼운 옷으로 몸을 감싸고 아침 일찍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 중국 측 국경수비대의 검문을 받게 되었다. 일행 모두의 여권을 검사하고 여행 목적과 이곳에 오기 전까지의 모든 일정도 묻고 많은 질문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중국과 북한의 변화하는 정세와 동북공정의 영향을 국경지대인 이곳에서 접하게 되는 것 같아 약간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한민족에게는 많이 심각하고 절실한 문제들인데 말이다.

백두산 등성이에는 며칠 전에 내렸다는 첫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서파 등반로를 택하여 1,236계단을 걸어 올라가 백두산 천지에 이르니 심한 안개와 강한 비바람으로 몸이 날아갈 듯 하였다. 중, 조(중국과 북한) 경계선을 넘어 북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일행 모두는 함께 손 잡고 그 땅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다. 꿈인 듯 잠깐 보여진 백두산 천지의 한 끝자락을 가슴에 담고 산을 내려 오는데 비바람은 어느덧 함박눈으로 변하여 계곡을 온통 하얗게 덮기 시작하였다.

점심식사 후 다시 버스로 8시간을 달려가서 늦은 저녁 A시에 여장을 풀었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단동을 향하여 떠나야 했다. 버스로 다시 7시간을 달려야 하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A시를 떠나기 전 압록강변에 나가 강 건너 북한 땅 M시를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 일행 모두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음을 보게 되었다. 크게 외쳐 부를 수는 없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의 애틋함과 기도가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리라.

오후 시간, 단동에 도착하여 우리 일행은 곧바로 배를 빌려 타고 북한 신의주 앞 강변으로 나갔다.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도시로서 두 도시를 잇는 기차, 자동차 공용 다리를 통하여 모든 교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다리 옆에는 6.25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끊어진 원래의 ‘압록강 중조 우의교’가 그대로 남아 있다.

배를 타고 신의주 쪽으로 가까이 가니 강변에 낡은 배들이 많이 정박하고 있는데 그 중에 대부분은 폐선으로 보였고 그 안에서 살림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안녕하세요” 하며 손을 흔드니 간혹 같이 손을 흔들어 응답하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강변을 따라 한참을 오르내린 후 선실로 들어가 선상기도회를 가졌다. 북한 땅을 바라보며 하루속히 강 건너 내 사랑하는 동족의 헐벗고 굶주리며 질병에 신음하는 고통이 사라지고 그 땅에 화합과 평화가 깃들기를 그리고 이념과 체제와 갈등을 떠나 오직 인도적 차원에서의 구제와 구호의 손길이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걱정하는 그 땅의 백성들에게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우리 모두는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뜨거운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날이 어두워지자 중국 쪽 강변에는 화려한 오색 네온 싸인이 빛을 발하고 많은 주민들이 운동하러 공원에 모여 여유로운 삶의 모습을 보이는데 강 건너 북한 쪽 강변에는 불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암흑의 정경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볼 때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목을 메이게 하였다. 우리들의 마음이 이렇게 아프거늘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아프실까 생각하다가 분명 계획하심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믿고 기다리면서 끊임없이 기도하기로 다짐해 본다.

다음 날, 작은 산골 마을을 찾아 하루의 진료 일정을 더 끝내고 저녁 집회를 통하여 이번 단기의료선교 여행을 되짚어 보는 가운데 모두들 받은 은혜와 감사를 나누었다. 이제 각자의 삶터로 돌아가 이 모든 것들을 전하며 좀더 많은 사람들이 돕고 나누는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힘쓰기를 다짐하였다. 또한 다음 선교여행도 함께 하자고 약속하며 기도의 제목들을 나누었다. 언젠가 그 땅에 기쁨과 감사와 영광의 잔치가 베풀어지는 그날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리라. 함께 기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