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 속에 소중하게 간직한 추억이 있다. 그런 추억들을 되새기며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추억이 사라지게 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지금의 한국의 기독교가 있기까지 하나님의 추억이 깃든 소중한 장소가 사라지게 될 위기에 놓였다. 바로 지리산에 있는 선교유적지다. 이 선교 유적지는 복음전파의 소명 하나로 목숨을 걸고 낯선 이국 땅을 찾은 선교사들의 숨결이 남겨진 곳이다.

각종 풍토병 등으로 34명 사망 불구 선교사명 완수 위해 귀환 거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지리산 노고단에, 하늘을 사모하며 하늘의 뜻이 이 땅에도 이뤄지길 바랐던 선교사들의 아름다운 선교 유적지가 남아 있다. 바로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에 있는 선교 유적지가 그것이다.

이곳은 1920년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을 주축으로 총 50여채의 선교사 수양관으로 세워졌다. 이렇게 세워진 선교사 수양관은 동북아 선교의 중심지이며 교육과 영성 훈련의 장소로 쓰였다.

하지만 당시 선교사들이 노고단에 모였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국 환경에 적응이 어려웠던 선교사들은 각종 풍토병과 수인성 질병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결국 34명의 선교사들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남장로교회는 소속 선교사들에게 다시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명했으나, 선교의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 돌아갈 수 없다는 선교사들은 지리산 노고단에 수양관을 짓고 끝까지 선교의 사명을 이어가려 했다.

선교사들은 이곳에 모여 교육과 영성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 일본 등지의 선교사들과 함께 극동아시아의 선교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성경번역으로 민중 속 한글 정착에도 영향.. 무관심 속 사라질 위기에 처해

지리산 선교 유적지는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 레이놀즈 선교사를 중심으로한 구약 개혁 위원회가 이곳 노고단 수양관에서 예레미야서를 제외한 구약 38권의 성경을 한글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이 구약 성경의 번역은 단지 개신교적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성경번역을 통해 우리말을 정화하고 우리말에 문법척 체계를 세워 나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또한 성경을 한글로, 그리고 민중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한글을 민중 속에 정착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노고단 수양관의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은 군산, 광주, 목포, 순천에 선교부를 두고 전라도 지역 선교에도 힘을 썼다. 그 중에는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한 1895년 이후 린턴 선교사 가문처럼 4대째 한국 선교에 몸담은 이들도 나왔다. 그만큼 한국을 사랑하고 한반도 선교에 열정을 가졌던 선교사들은 이후 전라남도지역 근대 교육과 의료사업에 큰 획을 그었다.

이들은 광주에 기독병원, 목포와 순천에 안력산병원, 그리고 전주의 예수병원을 통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죽어가는 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봉사와 헌신을 다했다. 그리고 순천에 기독 결핵제활원을 세워 당시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수용이 불가능했던 결핵 환자들을 돌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병원과 학교, 고아원을 세워 사랑과 헌심의 자취를 남겼다.

▲지리산 선교 유적지에 대한 왜곡된 안내문 ⓒ지리산 기독교 유적지 보전본부 제공
하지만 선교사들의 피와 땀의 흔적이 있는 노고단 수양관 앞에는 이곳이 별장이며 자연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안내문이 박혀 있고,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할 경우 땅 소유지에게 모든 유적지와 흔적들이 사라질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

풍토병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잃으면서도 한반도 선교를 위해 이 땅을 떠나지 않았던 선교사들의 아름다운 믿음과 선교의 숨결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리산 기독교 유적지 보전본부의 한 관계자는 “이 민족을 위해 몸과 생명과 재산을 다 바친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교회와 이 민족이 있게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그들의 숨결이 서려있는 지리산 선교 유적지를 보전하는 일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런 상황 앞에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지리산 선교 유적지를 보전하기 위해 마음을 모으기 시작했다. 유적지 보전을 위한 연합예배를 통해 120년 전 선교사들의 목숨을 걸고 이 땅에 남기고 간 사랑과 믿음의 흔적을 반드시 보전해야 한다는 기도의 힘을 모으고, 100만인 서명 운동과 학술 심포지엄을 통해 지리산 선교 유적지가 왜 역사의 현장이며 보전의 현장인지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교나, 구교인 카톨릭에 비해 개신교의 문화 유적지에 대한 관심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담긴 유적지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지금까지 연재됐던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는 ‘한국 성지순례 선교회’가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순교지, 선교사들의 발자취’라는 주제로 지난 10일부터 11일까지 기독교 신문사 및 방송사 기자들을 대상으로 열었던 한국 기독교 성지순례를 기사화 한 것입니다.

문의)02-2230-5154 한국 성지순례 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