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약자의 종교다. 성경에도 남편 없는 과부와 부모 없는 고아, 갈 곳 없는 나그네와 가진 것 없는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는 구절이 여러 번 발견된다. 또 인류의 대부분의 개혁운동과 해방운동의 최전선에는 기독교가 있었다. 한국의 3.1 운동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기독교는 약자의 편이 되어 그들에게 힘과 안식,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요즘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 기독교가 강자가 되어 약자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기독교계의 완강한 반대로 가정의 꿈을 이루지 못한 동성애자들, 주일날 마라톤을 못하게 시위하는 목회자들로 인해 곤란에 처한 마라토너들과 LA시, 총영사라는 고위 관리가 성경공부를 인도해 불만이 가득한 불교계가 대표적이다.

일부 사람들은 기독교인은 자기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이기주의자 혹은 머릿수를 내세워 약자를 핍박하는 모리배 등으로 비난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동성애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를 넘어서 창조질서를 깨는 죄적 행위이며 이로 인해 질병이 양산되고 어린이들의 교육에 막대한 장애가 발생한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말하자면 먼저 동성애자를 통해 전염된 질병으로 죽게 될 사람들과 동성애자 밑에서 양육받으며 성적 학대에 시달릴 어린아이들의 인권을 말해야 한다. 기독인들은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인 동성애자를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아이들, 그리고 창조질서와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을 뿐이다.

마라톤의 문제도 그러하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마라톤을 크리스천들이 못하게 한다고 해서 크리스천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주일에 마라톤을 할 권리가 있다면 주일에 예배를 드릴 권한도 있다. 게다가 돈을 벌기 위해 개최되는 행사가 인간의 영혼을 위한 예배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교계가 바라는 것은 마라톤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마라톤의 날짜를 주일이 아닌 다른 공휴일로 바꾸어 달라는 것이다. 마라톤의 날짜가 바뀐다면 기독교인들도 얼마든지 함께 나가서 뛸 수 있을 것이다. 마라톤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들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울부짖는 사람들은 결코 약자가 아니라 오히려 막대한 자금과 LA시의 비호를 받고 있는 강자들이다. 그리고 교계야말로 벌써 10년이 넘도록 강자들과 싸우고 있는 외로운 마라토너인 셈이다.

뉴욕 총영사가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불교계의 반발도 그러하다. 총영사가 공인이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특정 종교에 편향된 활동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공인은 기독교를 믿을 자유가 없나? 공인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대로 행동할 권리가 없나? 그가 성경공부를 인도한다고 자신에게 맡겨진 공직에 소홀한 것도 아니고 기독교에만 유리한 정책을 펴는 것도 아니다. 고위 공직에 있는 관리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기독교세를 확장한다는 불교계의 불안감은 말이 안된다. 총영사는 오히려 한 신앙인으로서 불교계의 반발에 부딪히는 시련을 겪고 있는 약자이다.

근간에 일어나고 있는 반기독교적인 움직임은 모두 약자의 편에 있는 기독교를 강자라고 몰아 세우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뭐 대단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창조질서와 정의, 인권과 신앙 등 기본적인 것을 요구할 뿐이다. 그러나 현세대는 이런 기본마저 무너뜨리려고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반기독교적 세력의 공격에 더욱 더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고 우리 믿음과 신념을 지켜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