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저의 모든 앞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서울에 있는 ‘정동제일감리교회’ 원로장로입니다. 장로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교회의 역할이 모여 예배드리는 역할이 있지만 또한 사회봉사하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역할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적인 일에서 은퇴하게 되자마자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를 만들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18년간 한국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주도하고 묵묵히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 김옥자 회장을 만나보았다.

주님께서는 저의 양심을 통해 임하셨고 모든 앞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고향은 강원도 간성이에요. 1918년 9월 27일 태어나 시골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우리 부모님과 조무모님이 전부 교회에 나가서 저는 모태신앙이었고 그 신앙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바울사도의 다메섹 도상에서와 같은 강한 체험은 없었지만 늘 하나님께서 내 양심 통해 말씀해주셨고 저는 어려운 일 당할 때마다 늘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이 일을 해왔습니다.”

“간선에는 중학교가 없었습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야하는데 가정형편이 딸을 유학 보낼 정도는 못되고 그래도 공부는 하고 싶어서 독학해 검정시험을 쳤습니다. 그래서 신학교도 가고 일본에 유학도 갔습니다.

집이 어려운데 어찌 갔나!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께서 그때그때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중 하나는 감리교신대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 비용에 대해 고민하는데 생각도 안했던 선교사 한 분이 강원도 철원에 사회관 교사를 구하러 왔습니다. 근데 그분이 졸업생을 원하는 거예요. 우리 위의 졸업여학생이 둘 밖에 없는데 이미 교회임지를 찾아간 뒤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 3학년 수료생이었는데도 주님의 은혜로 뽑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모아 일본유학을 가게 된 것입니다.

해방되어 서울에 오니 우리 집이 삼팔선 이북입니다. 그래서 고아가 되었습니다. 근데 그때 일본 가기 전에 정동교회에서 교사였을 때 가르친 학생을 만났습니다. 그가 내 길잡이가 되어주어 서울에서 고생을 덜하게 되었지요. 정동교회는 제가 대학생 시절 마지막으로 신학교에서 파송되어 섬겼던 교회였습니다. 그 때 제게 배웠던 한 학생이 끝까지 좋아하고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걸스카웃을 통해 자원봉사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또 저를 가르쳤던 신학교 교수님 한분이 미 군청에 소개시켜 줬습니다. 그래서 5년간 공무원 생활 했는데. 길고 긴 걸스카웃과의 만남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40년간 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배운 게 자원봉사라는 것입니다. 나는 걸스카웃에서 15년간 월급을 받고 일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원봉사 할 때 더 열심히 했고 더 사랑하며 헌신적으로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헌신을 본받고자 다른 사람들과 힘을 모아 ‘한국자원공사능력개발연구회’와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를 설립하게 되어 본격적인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가 60이었을 때 자원봉사 연구회를 만들었습니다. 왜냐면 교회서나 사회서나 꼭 월급으로 계산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영혼 마음속에 주님께서 사랑을 거저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거저 일해 주셨어요. 그래서 나도 내 이웃을 위해 거저 봉사하는 것이 너무 귀중하다 느껴졌습니다. 근데 나 혼자 보다 힘을 합해하자고 만들어진 것이 ‘한국자원공사능력개발연구회’입니다.

복원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사회복지법인이라는 인가를 받았습니다. 이사가 필요해서 박준서 박사님도 함께 이사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연세대연합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교수님이셨던 분입니다.

그렇게 5년 후 남편이 1990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슬픔이 너무 커 죽음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 고민에 빠져 삶과 죽음의 문제를 더불어 토론하고 생각하고 싶어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남편의 호를 따 만든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 산하에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와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년간 7천여 명씩 호스피스 교육실행, 매년 강연회 열어 죽음과 삶에 대해 강연회 개최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에서는 노인 고아 장애인 비행청소년과 같은 사람들을 돕는 자원봉사 일꾼들을 교육했습니다.

또 호스피스 암 말기환자들 돕는 일도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에서 시작했습니다. 한 4년 동안 3천여명 가량 우리에게 와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일년에 7,8백 명씩 교육을 받았습니다.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는 91년도에 설립되어 주로 죽음준비교육을 했습니다. 강연회를 매번 열어 철학자 의사 목사 상담전문가 들에게 죽음에 대한 문제 발제를 부탁해 죽음은 무엇인지? 죽음의 철학이 무엇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이런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2001년에 10주년 기념회를 하면서 강연들은 사람을 집계해보니 한 1만 명 정도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호스피스 교육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현재 4명중 1명은 암입니다. 암은 큰 고통을 당하고 죽어요. 정신은 말짱해요 그래 그분들의 마지막 가는 길에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이 고통을 받지 아니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갈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호스피스 케어입니다. 여기서 길러진 일꾼들이 지금 병원서 가정서 교회서 그런 말기환자 위한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자원봉사는 행복한 죽음을 준비하는 최선의 방법

이 일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맨 처음에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해를 못하니까 이해시켜 가면서 자원봉사 정신을 갖게 하는데 무척 힘이 들었어요.

또 사람들이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죽는 연습까지 하느냐’라며 이해를 못했어요.

근데 우리가 공부해보니 이생의 삶의 기껏해야 100년인데 언덕을 넘어 이생의 삶의 하나의 관문을 통해 가는 그곳은 영원한 생명이에요. 그곳에 대해 준비를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 준비는 ‘순수하게 거룩하게 사는 것’이죠. 우리가 이생을 넘어 저생은 이승보다 깨끗하고 거룩하고 사랑이 넘치고 서로 돕는 사회 일거라 생각합니다. 그니까 그곳에 맞는 나 자신을 만들어야 해요. 욕심을 그대로 가져가면 안 됩니다. 그니까 자원봉사 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이에요. 보수 받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죠. 그니까 자원봉사 열심히 하면 좋은 죽음 맞을 수 있는 거죠.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요구가 일어나는데 고령화 되어 다른 나라보다 고령화가 되고 있습니다. 고령화에 따라 침애도 따라옵니다. 그것은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에요. 그래서 침해 환자를 돕는 자원봉사자 교육을 내년부터 시작할 계획입니다. 침해 걸린 사람이 못나가도록 문도 잠그고 그러는데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는 경험상 사랑으로 보살피면 그 병이 악화되지 않고 낫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매도 사랑을 먹어야 하는 것이에요.

끝으로 김옥자 회장은 살아생전에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격려가 되어 주었던 남편과 한마디 불평도 없이 묵묵히 순종으로 함께했던 자녀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