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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경직 목사 설교] 해방의 성서적 의미

기독일보

입력 Aug 12, 2019 09:06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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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8월 11일

故 한경직 목사.

故 한경직 목사.

갈라디아서 5:1~12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서 여러분 잘 아시는 갈라디아서 5장 첫 절을 다시 한 번 봉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오늘은 전국적으로 온 교회가 해방 기념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오는 8월 15일은 해방된 지 40년이 됩니다. 일제에서 해방된 지 40년이 됩니다. 성경은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성경은 첫째로 민족적 해방, 둘째로는 사회적 국민적 해방, 그리고 셋째로는 영적 해방, 이 세 가지 방면으로 인간을 해방하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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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민족적 해방입니다.

구약을 읽는 이는 제일 먼저 모세오경을 창세기로 시작해서 읽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출애굽기는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해방을 받아, 온 민족이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 시내 광야를 거쳐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종노릇을 하다가 자유를 얻는 민족적 해방, 곧 정치적 해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옛날 일제시대에 일본 당국이 교회 안에서도 구약을 읽는 것을 금한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한 민족이 강제로 다른 민족이나 나라를 강점하고 노예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러한 민족적 해방, 곧 정치적 해방을 강하게 주장하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민족은 다른 민족, 혹은 국가에게 오랫동안 노예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자유를 쟁취하고 스스로 정치적 기반에서 벗어나 독립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3.1 운동을 비롯하여 온갖 일제의 압박에 저항하는 데 우리 기독교인들이 선두에 나섰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성경은 민족적 내지 정치적 자유를 얻도록 유도하는 책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약을 계속하여 읽어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곳에 독립국가를 세우며, 다윗과 솔로몬 같은 위대한 제왕들이 일어나 강대하고 번영한 국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 국민은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부패하여져서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졌으며, 결국은 강대한 나라들에게 멸망당한 비참한 이야기를 또한 우리는 구약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남방 유다 나라도 결국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였고, 성전과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었으며, 가련하게도 왕족과 귀족들과 모든 지도 계급들은 모두 포로가 되어 멀리 바벨론으로 잡혀간 비참한 사실이 또한 구약 하반부에 전개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들이 다른 나라에서 약 70년간 포로생활을 한 후에, 그들의 회개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그들이 다시 해방을 받고,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또한 구약에 있습니다. 이렇게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가 전개되며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의 기쁜 소식을 우리는 또한 읽습니다.

주전 6세기에 일어난 이 해방 운동도 말하자면 민족적 내지 정치적 해방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정치적, 민족적 해방을 선언합니다.

둘째, 사회적 해방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민족적 내지 정치적 해방만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로는 해방된 사회 안에서의 구속을 풀어주는 시민적 해방 또는 사회적 해방 제도가 또한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구약에서 우리가 보는 '희년제도'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매 50년마다 희년을 선포하고, 모든 개인적인 노예들을 석방시켜 주었습니다. 또 부채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이 해방은 사회적 내지 경제적 해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민족과 국가는 오래 독립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사회 안에서 개인을 노예로 사용한 제도는 이러한 교훈이 성경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에 오래 잔존하여 왔었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도 약 200여년 전에 정치적으로 영국에서 독립은 하였으나, 그 사회 안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부렸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시대에 와서, 그 처절한 남북전쟁을 치른 후에야 흑인노예를 해방해서 온전한 자국민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물론 오랫동안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대로 이조 말기에 와서야 개인 노예제도가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민족적 독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 국가 안에 사는 모든 국민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해방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벌써 오래 전에 이 사회적 해방의 원리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셋째는, 영적 해방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성경은 민족적, 정치적 해방과 사회적 해방을 가르치지만, 여기에만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이보다 더 깊은 의미의 해방을 선포합니다. 곧 영적 해방입니다. 이 근본적인 해방은 신약과 특별히 우리 주님께서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 이하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또 요한복음 8장 31절 이하에 이렇게도 가르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말씀들은 분명히 정치적 또는 사회적 자유를 의미함이 아닙니다. 영적 자유를 뜻합니다. 아무리 민주국가에 산다고 하지만 죄를 지으면 그는 영적으로 죄의 종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하는 가운데 술의 종, 아편의 종, 정욕의 종, 거짓의 종, 악한 습관의 종이란 말들을 혹 씁니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실로 인간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노예가 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이러한 죄의 종의 멍에에서 해방시켜 참된 자유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정치적 자유가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참 자유도 얻어야 합니다.

오늘 요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하신 말씀은 모든 자유에 물론 적용되는 말씀이지만, 특별히 영적, 도덕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교회에는 나오지만 아직도 영적으로 종의 멍에를 벗지 못한 분은 혹 없습니까? 하나님은 아십니다. 또 여러분도 자신의 상태를 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죄의 멍에를 벗는 참된 자유를 얻으시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 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오는 8월 15일은 해방 40주년 기념일입니다. 이 해방은 물론 정치적 해방입니다. 일본의 패전으로 우리 민족은 해방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쁜 날인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날을 잠깐 회상만 하여도 우리의 가슴은 기쁨과 감격으로 넘치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 40년을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불행한 일도 또한 많았습니다. 해방으로 38선이 생겼습니다. 북한에는 공산 괴뢰 정부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들의 남침 야욕으로 6.25의 참변이 있었습니다. 수백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까지도 이산가족이 1,000만에 이릅니다. 전쟁 도발의 위험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리고 우리 남한에서도 많은 불행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4.19, 5.16, 그리고 10.26 사건 등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러한 여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자유 민주주의에 근거한 대의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더욱이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계속 발전하여 개발도상국의 선두를 달리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문화도 크게 발전하였으며, 더욱이 교회가 크게 진흥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이 여러 방면에서 헌신한 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또한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오늘에 공통으로 갈망하는 점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 가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기를 바랍니다. 계속적으로 경제가 발전하여 우리 대중의 생활이 좀더 향상되기를 바랍니다. 똑같이 우리 문화도 모든 재래 미신에서 탈피하여 건전한 민족 문화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더욱이 한국 교회가 새로워지며, 하나가 되어 민족복음화를 완성함으로써 우리 모두의 염원이 성취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염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모든 목적이 달성되게 하려면, 또 이루어지려면 오직 우리 사회가 안정되고, 질서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자유의 신장도 질서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 국민은 누구나 분명히 깨닫고,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법과 질서를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북괴의 남침 위협 아래, 준전시체제 아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정세 아래에서 듣는 대로,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소위 좌경한 학생들의 선동으로 학원이 동요된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좌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애국학생, 애국청년들은 총궐기하여 우리 학원과 나라를 지켜야 할 때입니다. 우리 기독청년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민주주의 체제는 물론 모든 자유를 보장하고자하나, 그 자유 체제 자체를 파괴하려는 자유까지는 허용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으므로, 우리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이미 민족적 내지 정치적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모든 분야에서도 자유를 넓혀 가고자 애를 씁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귀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법과 질서의식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 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이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진정한 해방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 사회에 부정과 부패, 사기와 횡령, 온갖 퇴폐, 음란한 행동, 온갖 흉악한 범죄가 적어질수록 우리의 자유는 신장이 되고, 이런 것들이 많을수록 우리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의 종 된 자들의 수가 적어질수록 우리 사회에서 양민들의 자유가 그만큼 신장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시대적 사명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새롭게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복음으로 중생을 하여야 합니다. 죄를 멀리 하는, 참으로 죄를 회개하는 새로운 국민이 될수록 우리 사회는 더 명랑하여지고 온갖 자유는 신장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의 전도의 사명이 새롭게 부각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 40년을 당한 오늘에 우리 북한 동포들은 어떠한 정세에서 살고 있습니까? 그들도 민족적 정치적 해방은 받았습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정부가 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집단 아래에 사는 국민의 자유는 어떠합니까? 사회적 자유는 어떠합니까? 신교의 자유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북에 예배당은 하나도 없습니다. 언론 출판 집회에 대한 자유는 그것도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직업의 자유, 북한에 있는 이들이 자기 직업을 자기 마음대로 택할 수 있습니까? 거주의 자유, 자기 집을 마음대로 지을 수 있고 살 수 있습니까? 여행의 자유, 마음대로 여행을 할 수 있습니까? 심지어 결혼의 자유도 없습니다. 소위 공산당의 허락이 있어야 결혼도 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북동포는 민족적 해방은 되었다고 하지만 4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보면, 우리 이북동포는 아무 자유가 없는 문자 그대로 공산당 몇 사람의 두목 아래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정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실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정세인데도 불구하고 소위 지성인이라고 하는 대학생 가운데 이런 사회를 동경해서 우리 캠퍼스에서 붉은 깃발을 날리고, 머리에는 붉은 수건을 들고 고함을 치는 아이들을 볼 때 실로 기가 찬 일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학부형들도 많이 있고 대학생들도 많이 있는데 분명히 해방 40년을 당한 오늘에 있어서 북한의 정세를 바로 보고 이북 동포를 사실 해방하여 주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결단이 필요한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내가 선 자리에서 내 책임을 바로 해야 합니다. 우리 남한에서 자유 민주국가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 남한 백성들이 죄를 회개해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우리나라도 바로 참 자유가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뜻 깊은 날을 맞이하면서 과거의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특별히 이북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우리가 믿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결의로써 이 해방의 날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이 나와서 묻기를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고 하자, 주님은 대답하시기를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8선이 언제 열릴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평화, 민주 통일을 위하여 기도할 뿐입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직 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모두는 성령을 충만히 받아 복음을 전파하여 우리 전민족이 새로워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온 세계의 빛이 되는 민족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자유와 해방의 주인이 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40년 전에 우리 민족에게 정치적 해방을 주시고 모든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해방을 주셨지만 우리 민족이 죄가 많고 우리 민족이 그릇된 생각과 오만한 생각 가운데서 우리나라는 둘로 갈라졌고 이남에 자유 민주국가가 설립은 되었으나 여러 가지 문제가 아직도 많은데 더욱이 이북 우리 동포는 말할 수 없는 아무 자유가 없는, 몇 사람에게 노예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첫 번 해방을 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동포 전부에게 이북동포에게 우선 참된 사회적 자유 국민적 자유를 얻을 수 있게 축복해 주시고 또 우리 대한민국이 이러한 자유를 얻었는데 이 자유를 남용하지 말고 옳게 사용하고 오히려 우리가 단결해서 어서 속히 이북동포를 참으로 해방해 줄 수 있는 이런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는 이러한 계절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간구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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