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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한국교회, 왜 자기방어적 근본주의로 후퇴했나”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May 16, 2018 07:05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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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 제19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옥성득 교수 발표

 

▲옥성득 교수.
(Photo : ) ▲옥성득 교수.

 

 

한국교회 평양 장신 신학이 초기에는 포용적·통합적 칼뱅주의였으나, 1930년대 들어 대내외적 도전들에 적절히 응답하지 못하면서 전투적 근본주의로 타락 또는 회피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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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15-16일 이틀간 열린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임성빈 박사) 제19회 국제학술대회 '세계 속의 한국신학: 장신신학,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서 옥성득 교수(UCLA)가 '한국교회사에서 본 장신신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것이다.

옥성득 교수는 먼저 '평양 장신 신학사'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평양 신학교 연구는 교단들이 자기 정당화 도구로 사용해 왔고, 해방 이후 유래 없는 교단 분열의 산물인 '역사 현재주의'로 새 이야기나 다른 목소리가 차단됐다"며 "한국 장로회 200여개 교단과 수십 개 신학교가 하나의 교단과 하나의 연합 신학교로 존재했던 평양 장신의 역사와 신학을 정리해야, 해방 후 분열사를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옥 교수는 1881-1900년 사이를 '포용적 칼뱅주의 도입기'로 보면서 "중요한 논점은 1910년대가 아니라 1880년대부터 칼뱅주의가 도입됐고, 그것은 근본주의적이 아닌 온건하고 포용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 근거로는 1881년 존 로스(John Ross)와 이응찬이 만주 심양문광서원에서 한글로 된 첫 개신교 문서로 스코틀랜드연합장로교회가 사용하던 성경 요리문답서를 한국 상황에 맞게 조정한 초신자용 문답서 '예수셩교문답'을 출판했고, 1885년 4월 내한한 언더우드 선교사도 초기부터 '칼뱅주의 교회 설립'을 추진했으며, 그는 1888년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장로회 교리를 가르쳤던 점 등을 들었다. 마페트는 한국 선교회가 '칼뱅주의 신조를 믿는 정통파 장로교인들로 구성된 조화로운 단체'라 평가하기도 했다.

옥 교수는 "1880년대부터 도입된 칼뱅주의를 선교사들은 '정통 칼뱅주의'라 불렀다. 그러나 로스(스코틀랜드장로회), 네비어스(프린스턴 구학파), 언더우드(미국 화란개혁교회), 마페트(미국 중서부 복음주의), 게일(캐나다 반고교회 세대주의) 등이 다양한 칼뱅주의를 소개했다"며 "그것은 천년설에서 사소한 차이를 용납하면서 감리회와도 연합할 수 있는 포용적인 칼뱅주의였다. 선교지에서 소수 선교사들이 선교를 개척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 "장로회 선교사들 중 선교학적 논쟁이 1893년 '하나님/하느님' 번역 문제로 점화됐고, 이후 제사 허용, 첩을 가진 자의 세례, 기독교 신문의 성격, 대형 세브란스 병원의 설립 등을 놓고 토론했다"며 "이 논쟁들은 서울과 평양 간의 신학적·문화적 성향 차이를 드러냈지만, 동시에 초기 한국 칼뱅주의의 다양성과 통합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1901-1919년은 '보수적 칼뱅주의의 발전기'였으나, 1920년부터 10년간은 '자기방어적·내부분열적 근본주의'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3·1 독립운동으로 많은 장로회 지도자들이 투옥되고 해외로 망명하면서, 교회는 지도력 빈곤 상태에서 분쟁으로 무력해졌고, 신학의 빈곤은 신학교를 시대에 뒤진 근본주의로 몰아갔던 것이다.

옥성득 교수는 "총독부는 소위 문화 정치로 신사상과 신종교운동의 문을 열어주고 청년들에게 향락을 제공하여 반정부 에너지를 내부 분쟁으로 돌리게 했다. 그 배후에서 경찰과 군대를 증강하고, 검열 제도를 강화해 언론을 길들이고, 교육 규칙으로 선교 학교를 통제했다"며 "기독교인들은 김익두 부흥회에서 일어나는 기적적 치유에 흥분했으나, 기독교를 유산계급과 미국제국주의의 앞잡이로 몰고 반기독교운동을 전개하는 사회주의에 수세로 몰리면서, 보수적 칼뱅주의는 자기방어적인 근본주의로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옥 교수는 "평양 장신이 1902년의 교육과정을 크게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고수한 것은 실책이었다. 일본어 서적이나 영어 서적을 과감히 도입하여 사회주의, 진화론, 물질주의 등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신학적 사고 능력을 길러주어야 했었다"며 "1915년 전후 일본조합교회가 공격했듯 19세기 말 신학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사회주의가 장악한 여론에 방어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시대를 역행하게 됐다. 결국 1920년대 신학교의 신학적 지체가 근본주의를 수용하고, 1930년대에 바르트주의를 부정하도록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1920-30년대 신학의 핵심 주제는 종교론이었다. 1920년대는 사회주의와 진화론이 기독교를 '제국주의 앞잡이요 미신'으로 규정하고 반종교론 운동을 전개하며 기독교를 위협했다면, 1930년대는 총독부가 '신사참배는 국가의례에 참여하는 국민의 의무'라고 주장하는 국가신도 비종교론으로 기독교를 훼절시켰다"며 "미국에서는 1910년대 자유주의에 대항한 근본주의가 형성돼 성경과 그리스도의 신성 방어에 나섰고, 평양 신학교도 근본주의를 지지했다"고 했다.

1920년대에는 다양한 교회 분규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는 "밖으로 사회주의와 대결하던 교회는 내부 분열로 힘을 잃었다. 교회 분규의 핵심은 회중주의 대 노회주의의 갈등이었다. 전자는 개교회와 평신도의 자유를, 후자는 노회와 목사의 교권을 내세웠다"며 "1910년대 초 시작된 교회 분열이 선교사의 권위주의에 반발한 자유교회 운동이었다면, 1920년대 교회 분열은 한국인 목사의 권위주의와 부정과 지도력 결핍에 대한 평신도의 반발이 추가돼 치열하게 전개됐다"고 분석했다.

선교사의 권위주의에 대항해 한국인의 자유교회 분립운동이 시작됐고, 교회 분규와 노회 치리에 교인들이 항의하기도 했으며, 강력한 반(反)선교사 운동도 진행됐다. 이에 1927년 1월 북장로회 한국선교회는 반종교운동에 대해 <신학지남>에 '종교 변호 선언서'를 발표하고 9개 항목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선언문을 계기로 한국 장로교회와 신학교는 근본주의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기독교와 사회: 이웃을 사랑하되 중생이 사회 발전의 근본이다 ②성서와 신앙: 영감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신앙의 기초이다 ③과학과 기적: 성서의 모든 기적과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 ④예수의 인성과 신성: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믿는다 ⑤그리스도교의 처세: 견고한 지식 위에 생활한다 ⑥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다 ⑦기도의 능력을 믿는다 ⑧타종교와 달리 그리스도교는 초자연적 종교로 천상천하에 유일하다 ⑨신조: 요리문답과 신앙고백서의 가치를 믿는다.

옥 교수는 "이후 1930년대 보수적 칼뱅주의는 '전투적 근본주의'로 불완전변태를 이룬다. 초기 성령의 능력으로 유지했던 신학적 유연성을 상실하고, 미국 근본주의의 영향으로 공격적인 근본주의가 자리잡았다"며 "장로교회 지도자들은 1920년대의 위기를 지나 감리교회에 비해 10배 가까운 규모로 성장하자 미래 전망을 상실했다. 안일주의의 착시에 빠져 교회 개혁을 미루다 1937년 중일전쟁 지지, 1938년 신사참배 굴복, 1941년 태평양전쟁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친일 기독교로 타락했다"고 설명했다.

옥성득 교수는 논의를 정리하면서 미래를 위한 과제도 제시했다. 첫째 과제는 '역사적 자료에 근거한 신학적 상상력의 창조'이다. 그는 "교회사는 당면 문제의 기저에 쌓여있는 완고한 다층적 이유들을 드러내어 우리를 절망시키지만, 동시에 시대마다 생산한 예언자적 반성과 치열한 토론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미래를 전망하게 한다"며 "과거는 외국처럼 낯선 공간과 같고 미래처럼 유동적인 시간이다. 그 시공간에 들어가 신학 지형의 계보를 만들고 전체 이야기를 보여주는 지도를 그리면서 통합적인 신학적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둘째로 '1980년대 이후 반종교론과 1990년대 후 종교다원론, 2020년대 북한선교의 과제를 보더라도, 현재 가장 중요한 신학 작업은 종교론'이라고 전했다. 그는 "장신 신학에 타종교신학, 종교철학, 비교종교학 연구와 강의가 시급하다"며 "해방 이전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종교론이었다. 신학(변증론)과 비교종교학(험증론)은 유물론, 휴머니즘, 진화론, 종교다원주의의 도전에 대답하는 신학이다. 1920년대 신지식과 신사상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을 때, 신학교는 정체성과 적합성의 긴장 속에서 온유하게 응답하는 신학적 자세를 상실했다. 그 결과 신학의 경직과 교인의 유출과 교회 분쟁을 낳았다"고 했다.

셋째로는 '중심에 서는 신학'에서 '변두리에서 섬기는 신학'으로의 전환을 언급했다. 그는 "중심은 통전성을 줄 수도 있지만, 변두리와 바닥에 대한 민첩성과 과감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며 "1920년대 후반부터 박형룡은 중심에 서는 신학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나, 중심이 중앙이 되고 교권을 가지면 기회주의나 대중주의는 배격할 수도 있지만, 좌우를 외면하는 보신주의와 자기신념을 강화시키는 안전지대로 도피하여 무자비하게 타인을 배제하고 비난하는 겁먹은 근본주의로 타락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심은 고정된 공간인 중앙이 아니라, 성령이 새 일을 개척하는 유동적인 변방이며 깊은 곳이다. 좌우, 동서, 남북, 주변과 아래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처하고 과감하게 노출하는 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쪽으로 그물을 내리는 섬김이 필요하다"며 "낯선 새 목소리를 내는 무종교인, 비교회인, 여성, 소수자, 북한 동포가 바로 그물을 던져야 할 다른 곳이다"라고 제언했다.

이 외에도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첫날 금주섭 박사(WCC/ CWME 총무)가 '변혁적 제자도로의 부르심', 이원중 교수(日 도시샤대)가 '장신 신학에 대한 질의: 일본 기독교의 역사와 현장에서' 등이, 둘째날 김창환 교수(美 풀러신학교)가 '장신 신학과 공적 신학: 사회 변혁을 위한 초점과 촉매제', 신재식 교수(호남신대)가 '한국 신학 안에서의 장신 신학', 윤철호 교수(장신대)가 '장신 신학, 어디로 가야 하는가?' 등을 각각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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