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망교회 안인권 목사
(Photo : ) 새소망교회 안인권 목사

구원받기 전보다 구원받은 후의 삶에서 치열한 갈등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치열한 전투를 피해서 편안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적에게 항복하면 된다. 구원받은 후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원수(사탄)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받는 순간 천국으로 직행하지 않는 이상 영적 싸움이 치열한 현장에 있게 된다. 구원받는 순간 우리의 소속과 신분은 어둠의 나라의 시민에서 빛의 나라의 시민으로 바뀌고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뀐다. 신분과 소속이 바뀐 후에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살아야 하는 장소는 여전히 같은 장소이다. 삶의 현장은 지금도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다. 사탄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변함없는 현실이다. 결코 영적 진공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나 명심할 사항은 우리가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의 자녀들을 방관하지 않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항상 함께하고 계시지만 동시에 사악한 존재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챤들이 이 명백한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마귀의 치열한 공격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특히 중요한 공격 목표는 기도이다. 기도를 극렬히 방해하는 이유가 있다. 기도의 위력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를 소홀이 하는 이유가 기도의 위력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악한 세력과 싸우기 위해 어떤 무기를 준비하고 있는가? 인간이 스스로 갖출 수 있는 어떤 무기도 마귀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다. 세계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총동원해도 마귀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기도에 대해 잘못된 억측을 하고 있는 것이 있다. 첫째, 우리는 대부분의 기도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기도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조급한 시대풍조 때문이다. 컴퓨터 앞에서 모든 것을 해결되는 초스피드 시대의 문화는 속도 경쟁문화이다. 순식간에 NEED가 해결되는 것이다. 순식간에 가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불과 몇 분 이내에 얻지 못하면 즉시 바꾸어 버린다.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찍이 오늘 날 만큼 기다림이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것이 되어버린 적이 없었다. 이로 인해 달라진 인간관계 양상은 필요에 의해서 알고 있는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이다. 깊은 인간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대화는 필연적으로 간결하고 사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전념을 다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관계의 비용이 이윤을 초과하는 지점에 이르면 관계를 포기한다. 과연 우리의 하나님 관계는 어떠한가? 하나님 관계 역시 관계 의 비용 범위 내에 한정되어 있는가?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삶을 맞추어가는 것이 구원받은 삶이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삶을 맞추는 과정은 기나긴 과정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관계비용이 이윤을 초과하는 지점도 존재하지 않으며 포기하거나 물러나는 것이 옳은 때도 없다. 영원토록 이 관계 안에서 하나님나라에 반대하는 적대적 사이에서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한다. 이 싸움은 단 시간에 끝날 싸움이 아니다. 하늘나라 갈 때까지 싸워야 할 싸움이다. 그러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주님이 인내를 강조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우리는 대부분의 기도에 엄청난 에너지와 전투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 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충돌하지 않고 편하고 자유롭게 거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이해하는 가 그리고 얼마나 굴복하고 있는가? 우리 내면의 죄의 본성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에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나 자신의 거부 반응과 싸우는 내적 전쟁이야말로 보이는 적과의 싸움보다 더 강력한 싸움이다. 하나님의 뜻 앞에 굴복하기 위해서는 자아 죽이기에 성공해야 한다. 기도의 치열한 씨름은 '인간과 하나님의 갈등 해결과정'에서 출발한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는 딜레마를 극복해야 하는 매우 치열한 씨름을 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의 충돌을 극복한 후에 또 부딪혀야 하는 싸움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세상문화와 사회제도에 정면으로 모순되기 때문이다.우리는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안락하지 않다. 우리는 세상풍조에 대하여 원수의 유혹에 대하여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공격하되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 그들의 공격에 실 컨 두드려 맞고 더 이상 못 참겠다는 식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로는 승리하기 어렵다. 치밀한 준비와 결사적인 자세로 전투에 임해야 한다. 언제나 선제적인 공격이어야 한다.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만 싸움의 당시자는 나 자신이다. 나는 관객이 아니다. 현장에서 부딪혀 싸우는 당사자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결연한 자세를 하나님께 보여 드려야 한다.  우리가 싸우지 않는 전쟁은 하나님도 싸우지 않 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