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김세윤 박사에게 묻다

 

김세윤 | 두란노 | 268쪽

바울 신학의 대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세계적인 신학자 김세윤 박사의 책이다. 김 박사는 텍스트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광폭 해석과 일단의 비평에 경도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 그 역시 봉착했을 문제에 대한 가없는 천착에서, 학자와 크리스천의 경계 파괴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신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그의 면모를 드러내는 일화가 있어 잠시 소개한다. 그 일화엔 개인적으로 얽힌 부분이 있어 나름 애틋한 정서와 맞닿아 있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와 대면할 기회가 영영 사라진 것 같았던 근 20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오늘 그를 대신해 마주한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을 대하는 심정이 예사로울 수 없는 이유와도 연관이 있다. 

대학생 시절 난 강연을 하러 들른 그를 한 선교단체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내가 몸담고 있던 선교단체의 창설 멤버로, 줄곧 그 정체성과 방향을 제시해 온 원로 중의 원로였다. 그가 신학자로 크게 발돋움한 뒤로 단체의 일에 깊이 관여하지 못하게 된 여러 사정이 빚어졌고, 그것 때문에 늘 빚진 심정이었다는 그의 자발적 의사로 강연이 이뤄졌다. 그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출국하기 전에 잠시 말미를 얻었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성사된 강연이었음에도, 강연장으로 쓰인 선교단체 본부에 수십 명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몰렸다. 수더분한 얼굴에 뺨 밑을 덥수룩하게 덮은 수염이 인상적인 모습으로 그가 강연장에 들어섰다. 

간단히 자기 소개를 마친 그는 복음의 기본 진리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갔다. 밀도와 비중이 순도 100%를 자랑하는 그 강연은, 마치 지방을 쏙 뺀 질 좋은 고기 같았다. 성경 연구와 복음 전도에 잔뼈가 굵은 헌신자들 중 누구도 강연 내내 한 치라도 시선을 돌리거나 한 마디라도 말을 놓치지 않았다. 난 그 자리에서 핵심을 관통하는 논지와 논지를 풀어가는 그만의 방식에 더해, 학자연하지 않은 풍모와 유연하지만 강직한 언행 등에 두루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후 난 그의 책을 대부분 구입한 것은 물론이고, 몇 권을 여러 번 읽고 발표했다. 선교단체를 나온 뒤로 그와 대면할 기회를 놓친 것이 무척 서운하다. 

이 책,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이 그 강연의 연장선상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의 강연장이 학자가 무슨 논문이나 이론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었던 만큼, 강연이 끝난 후 여러 질문과 답이 자연스럽게 오갔었다. 때론 웃음 섞인 농담 비슷한 것에서 신학 언저리에 걸쳐 있는 복잡 미묘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질문과 답의 주제가 광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 역시 이 시대 크리스천들이 보았거나 안고 있을 문제는 물론, 겪었을 법한 질문들을 큰 범주에 두루 담은 점에서, 강연장을 달군 그날의 열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날의 장면이 오늘 책의 지면과 겹쳐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책은 믿음과 신앙, 그리스도인과 세상, 목회자와 한국교회, 고난 등 네 가지 범주 아래 묶일 만한 질문들을 각각 3개에서 12개까지 담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 몇 가지를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몇몇 교회나 사역자들은 방언이나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체험을 강조합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때 봉은사에서 땅밟기를 하던 청년들의 이야기로 시끄러웠습니다. 기독인들의 땅밟기, 어떻게 봐야 하나요? 진정한 의미의 영적 전쟁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기독교인들의 현실 정치 참여'에 대해 갑론을박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울의 '정치신학'을 통해 바라본 기독교인의 정치와 현실 참여를 평해 주시겠습니까?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을 위한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이 말하는 고난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지난해 책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김세윤 교수(오른쪽)가 여러 신앙적 질문에 답하던 모습.
▲지난해 책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김세윤 교수(오른쪽)가 여러 신앙적 질문에 답하던 모습.

예로 든 질문을 살펴보면 그 성격이 꽤나 근본적임을 알 수 있다. 저자의 학자적 위치로 보나 그가 체험한 선교활동과 경륜에 비춰도 수위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거나 문제화한 제반 현상에 궁금증이 비등해질 때마다 저자가 특정 매체의 질문을 받고 답한 내용들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어, 시의성이 높은 점 또한 눈에 띄게 발견된다. 위의 세 번째 질문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교회가 바울의 뒤에 서서 인권 증진과 정의·평화 실현을 위한 사회·정치적 운동에 관심을 갖지 말고 구령사업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비판적이다. 당시 로마의 노예제에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던 바울이 인종과 신분, 성 차별 등의 불의를 극복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평화공동체에 집중한 것은,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를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당시 교회가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기엔 지극히 일천한 사정 등이 사회 문제에 발 벗고 나서지 못한 현실적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교회가 바울 신학을 섣불리 재단하는 것에 불편한 심중을 드러낸 저자는, 이제라도 복음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예수와 바울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 외에 초자연적인 체험이나 영적 전쟁, 성 정체성에 대한 저자의 관점과, 신학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가 있다. 저자가 이중 계명이라 부르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저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충돌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는 게 전혀 낯설지 않다고 말한다. 

당연해 보이는 진술이지만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에 있어 경중 없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데, 대표적인 예로 이중 잣대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정치적 독재나 불의한 사법제도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죄악에는 눈감으면서, 동성애의 죄악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동성애자들을 적대하게 만드는 경우가 그것에 해당한다. 

문제는 그런 이중잣대가 양산되어 왔다는 것이다. 교계 내부에 비성경적 판단과 자의적 기준이 득세함에 따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별개라는 관념이 독소처럼 퍼져, '신앙생활 따로 사회생활 따로'로 대표되는, 이름 뿐인 크리스천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것은 유감이다. 더욱이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는 가 닿지 않은 채 모양 내기에 급급한 종교인을 자주 목격하는 건 고역이다. 저자는 그 점을 매 질문에 대한 답에서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저자의 답변이 활자와 행간을 뚫고 나오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대분류된 범주 아래 포진한 각각의 질문들은, 앞서 살핀 대로 믿음과 신앙, 그리스도인과 세상, 목회자와 한국교회, 고난 등 그 층위가 다양하지만, 반드시 해당 층위에 포커스를 맞춰 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내게 주어진 질문으로 치환해 답을 찾아가 보는 게 여러 모로 도움이 될 듯하다. 그럼으로써 주의를 환기하면 당장 직면한 문제는 물론이고, 기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지만 언제고 한 번은 해야 할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 필요한 각각의 포지션을 구축하기가 쉬워진다. 문제란 일의적 수준에서 멈추기도 하지만, 본류에서 지류가 갈라져 나오듯 복합적인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원 글을 대폭 손질하는 등 독자의 편의에 더 다가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저자의 말이 기우에 불과할 만큼, 글의 순도가 높아 고무적이다. 이는 논쟁적 질문을 비켜 가지 않고, 직접적인 답변을 이어가며 의미를 궁구한 저자의 노고 때문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매체에 흩어진 글들을 재출판하도록 허락해 준 관계자 분들 덕에, 이 책을 읽는 맛을 제대로 보았다. 

감사한다. 바른 신앙의 길목을 지키는 이정표 같은 글이다. 일독을 권한다.

/김정완 크리스찬북뉴스(http://www.cbooknews.com) 편집위원, 네이버 파워 블로거, 평신도 사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