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0주년을 맞는 올해는 북한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았던 시기였다. 남한으로 입국한 탈북민의 숫자도 어느덧 3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교회들도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억하고 기도했던 다니엘처럼 이 땅에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의 물결이 높아지는 시기였다고 생각이 된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통일을 준비하고 남과 북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우리의 준비는 갈 길이 멀다. 특히 남한에 먼저 들어온 북한이탈주민들을 대하는 남한 사회의 모습을 볼 때, 정부의 몇몇 정책의 변화를 넘어서 우리의 사고방식부터 근본적으로 조정과 변화가 필요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글에서는 탈북민들의 사회 적응 실태에 대해 살펴보고 특히 '사람의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남한 사회 각 분야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그리고 특별히 이 가운데서 믿는 이들이 취해야 할 행동과 자세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지난 15일 탈북(무연고) 청소년들과 함께 성탄예배를 드렸다.(참고사진) ©한목협 제공
'남한 사회는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고 더 나아가 통일 한국을 대비한 준비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남북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지내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여러 가지 요소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의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남한 주민들의 인식을 볼 때 아직은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발간하는 통일의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보고서 기준으로 응답자 중 탈북민들을 친근하게 느낀다고 대답한 비율(약 43.3%)보다 친근하지 않다(약 56.6%)라고 응답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고학력자일수록 친근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낮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을 동네 이웃, 사업 상대자나 결혼상대자로는 꺼려진다고 응답한 비율도 각각 10.5%, 39.6%, 47.3%로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지원 확대에 대해서도 동의(50.1%) 와 동의하지 않음(49.8%)으로 거의 반반의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위 연구 자료의 수치들은 아마 탈북민들이 보시기에는 섭섭하고 속상한 수치일 수 있다. 아직 많은 남한 주민이 통일 시대를 준비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탈북민과 남한 주민 사이에 느끼는 어색함과 낯섦의 정도가 아직 상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동네 이웃인 것에 비해 사업 상대자나 결혼 상대자로 꺼려진다고 응답한 비율이 상당히 높다. 아직 탈북민들을 낯설고 이질적인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보고서에서 특히 인상적인 내용 중 하나는 '경제적 문제를 고려한 질문에서는 부정적인 응답의 비율이 유지되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국민이 북한이탈주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과거와 달리 경제사회적 상황에 근거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덧붙여 소득이 낮을수록,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북한이탈주민들을 취업경쟁의 대상으로 이해하거나 북한이탈주민들을 선택적으로만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그들을 수용하지 않기를 바라는데, 이는 이들이 경제상황의 악화에 의해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앞에서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탈북민들에 대해 친근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던 것을 생각해 볼 때, 경제적인 문제가 탈북민들을 대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갈등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탈북민 힐링캠프 기념 사진.(참고사진) ©한교연 제공
그렇다면 탈북민들이 느끼는 남한 사회는 어떨까? 남북하나재단에서 조사, 발간한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민들 중의 67.6%가 남한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남한 생활에 만족하는 이유로는 '북한에서의 생활에 비해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서'라는 응답이 42.3%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이어 '내가 일한 만큼 소득을 얻을 수 있어서'가 40.7%, '감시와 통제를 받지 않아서'가 27.1%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남한 생활에 불만족하는 이유로는 54.7%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꼽았고 41.9%는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그리고 '나의 능력과 하고 싶은 일 간의 차이가 심해서'라는 응답과 '남한사회 문화 적응이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각각 28.4%와 27%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무시를 받은 경험에 대한 질문에는 25.3%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으며, 차별의 이유에 대해서는 '말투, 생활방식, 태도 등 문화적 소통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라는 응답이 68.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남한 사람들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전문지식과 기술의 부족' 등이 각각 42.6%, 19.2%로 그 뒤를 이었다.
위 연구 결과들은 남과 북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 2가지 주요 과제를 꼽자면 먼저 소득과 취업 등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이질적인 문화와 가치관과 이로 인한 편견 등 사회적 인식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경제적인 적응을 살펴보자. 탈북민들의 취업 및 소득 등의 경제 문제는 이들의 남한사회 정착과 정체성 형성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통일 전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의 사회 적응에 대한 한 연구에 따르면 독일 통일 이전 탈동독 주민들은 서독에서 성공적으로 일자리를 얻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으며, 이러한 경제적 적응의 성공은 이들의 시급한 욕구들을 잘 충족시켜주었고 사회 통합의 기틀을 제공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경제적 적응과 심리적 적응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한 논문에서는 탈북민의 취업 여부가 그 사람의 현재 생활 및 남한생활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자존감과 정체성에서도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경제적인 적응은 성공적인 사회 적응과 통합을 돕는데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탈북민들의 경제적 적응 상태는 어떨까? 계속적으로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남한에서의 탈북민의 경제적 적응 상태는 아직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엔 부족한 부분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남북하나재단이 10월 발표한 '북한이탈주민의 경제활동과 고용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 임금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2014년 147.1만 원으로 223.1만 원을 받는 일반 국민에 비해 약 76.0만 원 정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된 일자리의 형태는 기존 남한 주민에 비해 단순노무 종사자의 비율이 30.7%, 서비스 종사자의 비율이 22.4%, 기능 종사자의 비율이 12.4%로 높게 나타난 반면, 전문가나 사무종사자의 비율은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평균 근속 기간은 23.8개월로 남한 평균 67개월보다 짧았다. 일용직의 비율도 19% 수준으로 남한의 6%대에 비해 높다. 탈북자들의 소득이나 경제적 여건은 매년 조금씩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탈북자들의 경제적 적응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위와 같은 경제적인 차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동독에서도 비교적 높은 지위에 있었던 탈동독 주민에 비해 탈북민들은 굶주림 등 경제적 이유로 탈북한 경우가 많고 북에서 잘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습득한 기술이 있어도 남한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다수의 탈북자가 단순 노무직과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고 있으며, 전문성을 축적하기 힘든 상황이다. 다행인 점은 여러 가지 직업 교육, 자격증, 또는 대학을 통한 교육의 기회를 잘 활용하는 탈북민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인 문제가 중요한 더 큰 이유는 현재 남한이 처한 경제 상황과 관련이 깊다. 현재 남한은 4%대에 가까운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청년 실업률이 10%대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경제성장률은 약 3% 중반대로 예상되고 있다. 본격적인 저성장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탈북민들에게 적절한 직장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한 주민과 탈북민 사이의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앞서 언급한 통일 인식 조사에서도 탈북자들에 대한 경제적인 경쟁관계에 대한 우려의 반응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모든 이들을 만족시키고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정부에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경제적인 문제는 수치가 눈에 보이고 정책적으로 대응이 가능하지만, 문화적 이질감의 극복 문제는 쉽게 다루기 어려운 문제이다. 많은 남한 주민들이 탈북민들을 친근하지 못한 존재로 인식하고, 탈북민들은 여러 편견과 차별이 존재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를 타개하지 못한다면 통일 이후의 갈등과 혼란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일 수 있다.
5일 오후 인천 IS한림병원에서 민주평통 의료봉사단이 인천 지역 탈북민 100여 명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진행했다.(참고사진) ©민주평통 제공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지만, 분명 문화적으로 완전히 다른 체제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였기 때문에 탈북민과 남한 주민들이 느끼는 문화적 이질감은 굉장히 클 수밖에 없다. 탈북민들이 경험하는 문화적 충격과 충돌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김석향 교수는 논문을 통해 탈북민들이 경험하는 문화 충돌은 언어의 이질화나 영어 사용 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연구에 따르면 탈북민들은 북에서 배운 국가에 충성하는 것에만 집중되어있던 의무와 권리의 개념에 익숙하고, 또 성분이나 지위, 장애 여부로 사람에 대한 가치를 매기던 북한의 가치관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남한 사회는 개인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회인데다가 겉으로는 사람의 가치에 차등을 두거나 노골적으로 차별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북한과는 다른 여러 가지 사회적 요소 안에 차별적 요소가 숨어 있어 탈북민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여러 가지 문화적, 사회적 차이가 큰 충격을 야기하고 탈북민들의 삶에 분명하게 영향을 주고 있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어찌 보면 70년 동안 전혀 다른 정치체제와 사회 속에서 지낸 두 부류의 사람들이 단지 언어가 같다는 근거로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우리가 남한과 북한이 문화가 다르다는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이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와 접근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즉 아직은 상호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우리도 모르게 일방적으로 탈북민들에게 남한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처럼 탈북민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효과적인 정책일지 모르지만, 이후 통일 시대를 생각해본다면 적절한 방법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어떤 정책 제안이나 대규모 사회운동, 대형 프로젝트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 믿는 사람 개개인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3~4)고 말씀하시는 성경의 권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돌보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이다. 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의 약 35%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간 많은 사역자와 성도의 노력의 결실임과 동시에 교회가 그들의 삶을 돌볼 큰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이들을 특별대우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예수님 안에 한 형제로서 해야 할 마땅한 바를 실천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겸손(빌 2:5~11)을 본받아 탈북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고 교제하고 삶을 돌보고 사랑하는 우리의 작은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가지 이질적인 요소로 인해 탈북민들을 돕고 섬기는 일은 남한 성도들에게도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탈북민을 이해하고 돕는 작은 노력이 교회 안에서 이어진다면, 탈북민들의 사회 적응을 돕는 것은 물론이요 이 사회에 교회가 통일을 비추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더욱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오픈도어선교회 북한선교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