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빙 다빈치

 

낸시 피어시 | 복있는사람 | 536쪽 | 30,000원

"바보야, 문제는 세계관이야!"

최근 한 초등학생이 쓴 '학원 가기 싫은 날' 등 이른바 '잔혹 동시' 논란은, 이 책 <세이빙 다빈치(Saving da Vinci)>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의 피할 수 없는 결과물이다. 오늘날의 세계관에 의하면, 우리는 이 시(詩)의 선악(善惡)과 미추(美醜)에 대해 이야기할 내용이 없다. 사실과 가치를 분열시켰기 때문에, '사실 아닌 것'에 대해선 모든 기준은 파괴돼 버렸다. 그에 대한 판단은 '사적 영역'에 속한다. 결국 무엇이든 가능하지만, 그 무엇도 가능하지 않은 사회가 되어 버렸다.

"서구 사회는 성경적 세계관이 폭넓게 제시했던 도덕적 합의를 더 이상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합의 위에 세워진 여러 특별한 자유와 민주제도들이 사라져 간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일반 상식으로 여겼던 많은 것들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그것은 기독교가 남긴 서구의 독특한 유산의 산물이다."

성경적 세계관에 의하면, 오늘날의 예술과 문학은 마치 '타락 후, 인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에 대한 보고서 같다. '세상에 속해 있지만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신앙이 아니라,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고자 하는' 신앙인들의 '이원론'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느낄 수 있다.

<세이빙 다빈치>는 이러한 현실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세계관 실전 교과서'이다. 딱딱한 이론 위주가 아니라, 영화나 음악, 건축 등 실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콘텐츠들을 통해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실제로 도덕·윤리나 음악·미술 교과서에서 중·고교 시절 배웠던 내용과 용어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갖가지 예술과 철학 사조의 근본 뿌리로 올라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기독교는 서구 문화에서 거의 2천 년 동안 주류 세계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많은 교리들은 거의 상식으로 여겨진다. 방 안의 벽지처럼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볼 때 기독교 세계관의 회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는 기독교 세계관 자체를 인식하고 되살려 성경적 뿌리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책 1부에서는 점증하는 세속주의의 전 세계적 위협과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린다. 특히 현대 세속주의의 핵심 개념인, 언급했던 '사실과 가치의 양극화'에 집중하고, 낙태나 안락사, 유전공학과 인간 배아 파괴의 근저에 인간에 대한 이원론적 견해가 자리잡고 있음을 폭로한다. 이러한 견해들은 바로 동성애와 트렌스젠더리즘, 그리고 '원나잇(훅업)' 문화 등을 이끈다.

'세속주의로 가는 두 갈래 길'이라는 2부에서는 이 이원론의 역사적 연원을, 예술과 문화를 통해 '특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구체적으로 탐구한다. 현대사에서 평행선을 달리는 계몽주의(사실 중시)와 낭만주의(가치 중시)를 거슬러 올라가면, 현대 세계를 형성하는 여러 세계관에 대한 놀랍고도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경험주의·합리주의·자연주의·유물론, 실존주의·마르크스주의·포스트모더니즘·해체주의·뉴에이지 영성, 표현주의·초현실주의·추상주의 등 여러 개념들이 손에 잡힌다. 그리고 이것들에 나타난 세속적 개념들을 알아보고, 저항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특히 오늘날 기독교가 '안티 과학' 쯤으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근대 과학의 시작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말미암았다는 데서 용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각 사조를 대표하는 미술 작품들을 풍부하게 제시함으로써 이해를 돕고 가독성을 높인다.

책 속 한 장면. ⓒ복있는사람 제공
책 속 한 장면. ⓒ복있는사람 제공

1960년대 이후 백악관으로 달려간 우파에 비해, 좌파는 영문학과로 진격하기 시작해 그들의 급진적 사상을 젊은이들에게 심어 주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그 사상들에 근거해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비단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최근 '인권'이 강조되면서 종교(기독교) 교육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그 이전 1990년대부터 투철한 신념을 가진 여러 교사들은 '무신론·세속주의 세계관'을 학생들에게 은연 중에 강조해 왔다.

저자는 대학을 '세계관을 심고 육성하는 장소'로 정의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학은 경제적 가치를 최고로 삼는 '취업 사관학교'가 됐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취업과 돈이 복음(福音)이요 대전제(大前提)가 돼 버렸다. 어쩌면 심고 육성할 세계관이 사라져 버렸기에, 돈이 그 자리를 대신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속한 서구사회와 달리, 기독교 역사가 기껏해야 130년밖에 되지 않는 우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의 뿌리가 없는 상황에서 신앙이 유교·무속과 섞일까 걱정해야 하고, 책에 등장하는 갖가지 세속주의 세계관의 결과물들이 뒤섞여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기독교 내부에서 잇따라 터져나오는 '실천의 실패'는 신앙 자체에 대한 회의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상명령' 대로 땅끝까지 복음만 전하면 다 되는 것일까. 저자는 "궁극적인 목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만,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복음은 단순하지 않다"며 "오늘날 세계화된 세속 문화는 성경의 메시지를 고려할 수조차 없도록 미로처럼 복잡한 정신적 장벽들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세계관 분석의 목표는 그 장벽을 허무는 것(고후 10:4-5)"이라고 세계관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신의 요새를 허물고 사람들을 그릇된 사상에서 해방시킬 임무를 맡았고, 이 과정을 '예비 전도(pre-evangelism)'라 부르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벽이 일단 허물어지면, 교육을 받은 사람이건 못 받은 사람이건, 도시 사람이건 농촌 사람이건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원론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부터 '상대의 전략'을 알 필요가 있다. 더구나 사랑(전도)하려면, 상대를 잘 알아야 한다. 저자가 많은 분량을 할애해 '그들'의 역사를 상세히 설명하는 이유이다. 그들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세속주의가 들어오지 못하게 우리가 더 두꺼운 요새를 쌓는 '고립주의 전략'은 궁극적으로 역효과를 낳는다. "고등학생 시절에 (신앙의) 의심을 표현할 기회가 있었던 학생일수록, 영적·신앙적으로 더욱 성숙했다"는 것은 연구 결과로 증명됐다.

저자 낸시 피어시. ⓒ복있는사람 제공
저자 낸시 피어시. ⓒ복있는사람 제공

무엇보다 이러한 정보들을 장착한 다음, 세속주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선 안 된다. 그리스도인도 문화에 기여함으로써, 이전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창조의 '온상'이 돼야 한다. 저자가 마지막 '바흐 변증학교'를 통해 강조하는 것도 그것이다. 교회는 풍부한 상상력과 시각화 능력으로 성경의 진리를 표현해 내는 특별한 예술가들을 길러냈던 지난날의 평판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부정적 저항에 몰두하는 자세를 넘어서고, 교회 안팎에서 진정한 창조성을 억압하는 세력들에도 맞서야 한다. 기독교 도서나 음악, 미술·건축, 영화제작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들이 참으로 아름답고 신명나고 강렬한 드라마인 '하나님의 진리', 그 자체가 우주 역사의 흥미진진한 줄거리인 성경의 교리를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책은 특히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들이 주의해서 먼저 읽어보거나, 학교나 TV, 인터넷에서 각종 지식과 문화들을 무비판적으로 빨아들일 청소년 자녀들과 함께 읽어야 한다.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하는 교회학교 교사들이나 다음세대 사역자들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저자 낸시 피어시(Nancy Pearcey)의 전작인 <완전한 진리(Total Truth)>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