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대표적 원로이자 멘토인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가 자전적 고백을 담은 <장난꾸러기 김명혁 목사의 막가파 이야기 모음(이레닷컴)>을 발간했다.

열한 살 때 마음껏 주일예배를 드리고 싶어 홀로 38선을 넘은 김 목사는, 온갖 고난과 연단 속에서도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일관한 신앙인이다. 결국 '순교자의 자손'이 된 그는, 신학교 교수이자 교회 목회자로 헌신했으며, 은퇴 후에는 이 땅의 작은교회들과 전 세계 선교지들을 다니며 낮은 자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기질도, 성격도 운명"이라고 할 정도로, 김명혁 목사는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그리고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긍정적·낙천적 기질과 성격을 통해 '절대 신앙, 절대 긍정'의 삶을 살고 있다. 제목처럼 책에는 어떠한 난관도 즐겁게(?) 극복했던 그의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김 목사는 이에 대해 "'장난꾸러기'이자 '막가파'로, 평생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즐겁게 살아왔다"며 "'막가파'라는 별명은 제자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털어놓았다.

특히 그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남한에 내려온 후 고교 3학년 때도 주말이면 전도를 나갔다고 한다. 결국 그는 교회를 개척했고, 100명 가까운 성도들을 모이게 한 데서도 '신앙의 막가파' 면모가 드러난다. "주일마다 학교에서 오라고 했지만, 학교에 간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결국 월요일마다 선생님들로부터 벌을 받았고, 정학까지 당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주일성수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경험은 훗날 김 목사가 주일시험 반대운동을 전개하게 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김 목사의 주일 성수관은 북한 시절 주일학교 교사들로부터 비롯됐다. 그는 "이인복·최병목·명선성 선생님들에게서 주일성수 신앙과 새벽기도, 순교신앙을 물려받았다"고 회고한다.

이외에도 김 목사는 책에서 한국교회 역사의 주요 인물들인 한경직·김치선·이성봉 목사와의 만남, 단돈 100달러로 떠난 미국 유학, 주일시험 반대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으나 주눅 들지 않고 주일 설교 준비를 했던 이야기, 여권·비자·비행기표·여행자 수표·카메라·성경·기행문이 든 가방을 도둑맞고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한 일, 뉴스를 보다가 마음이 끌려 강원도 감자 1,690톤을 북한에 보낸 스토리, 아프카니스탄 국경을 혼자 넘어간 사연 등을 전한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평생의 신앙 비결을 성경 인물들에 대한 고백으로 대신한다. "나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간 아브라함을 좋아하게 되었고, 막대기로 홍해를 가른 모세를 좋아하게 되었고,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아서 무너뜨린 여호수아를 좋아하게 되었고, 사자 굴과 풀무불 가운데로 두려움 없이 들어간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사망아 네까짓 것이 무엇이냐' 호령했던 사도 바울을 좋아하게 되었다."

김명혁 목사 등이 지난 1월 파키스탄 올세인트교회를 방문, 현지 교회 지도자들을 만나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모습. 올세인트교회는 과격파의 테러로 130여명이 생명을 잃고 17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던 곳이다.
김명혁 목사 등이 지난 1월 파키스탄 올세인트교회를 방문, 현지 교회 지도자들을 만나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모습. 올세인트교회는 과격파의 테러로 130여명이 생명을 잃고 17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던 곳이다.

또 "사실 나는 너무 얌전한 것보다 '장난꾸러기'를 좋아하게 되었고, 옳고 그른 것을 너무 철저하게 따지는 것보다 '대강대강' 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며 "최근에는 의인으로 살기보다 차라리 '죄인으로' 사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이는 "예수님께서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마 9:13)"이며, "사도 바울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고백했기 때문(롬 5:20)"이다.

그는 "앞으로 걸어갈 수도 있는 가난과 고난과 고통과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도 '막가파' 기질과 모험심,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가면서 즐겁고 기쁘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십자가의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욥의 고백처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주님께서 아시리라 믿는다"고 전하고 있다.

김 목사는 실제로 고난이 적지 않았다. 사랑하는 부모와 어릴 때 이별하고, 어린 아들 철원이는 불치병으로 세상을 일찍 떠났다. 그러나 쓰라린 슬픔과 아픔이 보석이 되는 것도 경험했다. "내가 경험한 슬픔과 아픔은 나로 하여금 십자가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다. 또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다. 슬픔과 아픔까지, 아니 핍박과 죽음까지 감사와 기쁨의 제목이 될 수 있다."

김명혁 목사는 신의주제일교회와 평양서문밖교회에서 목회하다 공산당에 의해 투옥된 부친 김관주 목사 밑에서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다. 만 11세 되던 해인 1948년 8월 가족들을 두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홀로 38선을 넘어 서울로 넘어왔다. 그 후 한경직, 명신홍, 김치선 목사 등 많은 믿음의 선진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목회의 길을 걸었다. 한경직 목사의 조언으로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B.A)를 수학한 후 용산 총회신학교에서 1년 공부한 후 미국 필라델피아 훼이스신학교(B.D)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 후 웨스터민스터신학교(Th.M)와 예일대 신학원(S.T.M.), 아퀴나스 신학원(Ph.D)에서 역사신학을 전공한 후 풀러신학교, 튀빙겐대 등에서 연구와 학문활동을 이어갔다.

한국에 돌아온 김 목사는 후암교회 교육목사를 시작으로 총신대 강사, 조교수, 부교수, 영안교회 담임목사, 강변교회 담임목사, 합동신학교 부교수·교수·교장을 거쳐 한기총 공동회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합동신대 명예교수, 한복협 회장, KWMA 공동회장 등을 맡고 있다. 강변교회 은퇴 후에는 주님이 부르는 곳이면 작은교회든 외딴 섬이든 외국이든 달려가 복음을 즐겁게 전하는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다. 또 한국 사회의 건강성 회복과 평화적 통일을 위해 범종교계 지도자들 모임을 이끌고 있다.

추천사 모음

방지일 목사에게 새해 선물을 건네는 김명혁 목사.
방지일 목사에게 새해 선물을 건네는 김명혁 목사.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목사): "김명혁 목사님! 그 모험, 그 아슬아슬한 때의 그 슬기, 그 아이큐, 어디서? 자신감 있게 사시는 그 신앙의 양상, 그대로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임마누엘에 사시는 그대로입니다. 위대한 모험가, 할 말이 없습니다."

민경배 박사(백석대 석좌교수): "김명혁 목사님의 세계 여러 나라들에 대한 선교여행 글들은 거기서 누적된 풍부한 경험과 사상을 정밀과 체계로 엮어내어, 향후 반드시 체계화되어야 할 '한국의 선교신학'의 기본 자료가 될, 아주 실용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손봉호 교수(서울대 명예교수): "하나님께서 김명혁 목사를 한국 교회와 사회에 보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솔직하여 꾸밈이 없고 순수한 데다 담대하여 도무지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천성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은사입니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원로목사): "개혁자, 화해자, 조정자로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 범종교계의 교류협력과 사회통합과 세계평화를 위해 지평을 넓혀 가시는 행보는 숨가쁘게 따라다니는 후배들에게 선구자의 자리를 차지하시고 계십니다."

전병금 목사 (강남교회 담임목사): "우리 한국교회의 자라나는 세대가 김 목사님의 '막가파식' 신앙을 물려받을 수 있다면, 김 목사님이 좋아하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다니엘과 바울처럼, 진취적이고 담대한 주님의 일꾼들을 더 많이 배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김명혁 목사님의 '막가파 이야기 모음'이 청소년들과 청장년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김명혁 목사님은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따르는 학자요 목회자요 선교사요 한국 교계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진실로 소탈한 분이며 어린아이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 "김명혁 목사님이 쓰신 자서전을 읽으면서, 한국 근대 역사를 피부로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평양에 부어주신 성령의 역사 이후 일어난 한반도 복음화의 중요한 물줄기에 김명혁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가족의 사랑과 정(情)도 내려놓는 결단은 자신의 가족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그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순종한 행동이었습니다. 인위적이고 정치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려는 수많은 사람들과 달리, 순수하고 신앙적인 노력 만으로만 미래를 열어가신 모습들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