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안감리교회 정삼숙 사모가 「두 자녀를 잘 키운 삼숙씨의 이야기」(나침반출판사)를 출간했다.
성안감리교회 정삼숙 사모가 「두 자녀를 잘 키운 삼숙씨의 이야기」(나침반출판사)를 출간했다.

한국 어머니의 자식 교육열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모든 자녀들이 부모의 바람대로 성장할 수는 없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것도 해주지 못한 ‘빵점 엄마’지만, 철저한 가정교육과 신앙교육으로 두 아이를 예일대 전액 장학생으로 키운 어머니의 비결이 무엇일까? 이 책은 그 비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두 아이가 소위 말하는 미국 명문대 장학생이 되었지만 저는 신앙교육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우리 집 살림은 두 아이를 미국에 유학 보낼 만큼 넉넉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10여 년간 우리는 학비를 내지 않고 두 아이를 공부시키고 있습니다. 이 책은 ‘나처럼 이렇게 하면 됩니다’가 아닙니다. ‘나는 이렇게 했더니 되더군요’라는 차원에서 읽어 주셨으면 해요. 이 땅의 많은 크리스천 자녀들이 영향력 있는 글로벌 리더로 자라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기도 하남 성안교회(담임 장학봉 목사) 정삼숙 사모가 최근 두 자녀를 믿음으로 키운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두 자녀를 잘 키운 삼숙씨의 이야기」(나침반출판사)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100% 신뢰하며 그분께 자녀를 온전히 맡기는, 한나와 같은 ‘드림의 법칙’으로 두 아들을 성공적으로 키워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삼숙 사모는 남해 쪽 땅끝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오게 됐고, 연세대학교 음악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녀는 교회에서 반주자로 성실하게 섬기다가 교회 개척을 준비 중이던 장학봉 당시 전도사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 장학봉 목사는 힘 있는 설교로 부흥회와 방송선교사역 등 많은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남편은 저를 ‘빵점 엄마’라고 불러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것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죠. 저희 아이들은 거의 새 옷을 입어보지 못했고, 유치원 졸업장도 없으며, 일반 학원에 다닌 적도 없다시피 했어요.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찾아간 것도 졸업식 날 딱 한 번 뿐이었고, ‘공부해라’, ‘숙제해라’라는 잔소리도 안 했지요. 그런데도 저는 아이들을 결코 싸구려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어요.”

지금 남편은 자랑스럽게 미래를 준비해 나가고 있는 두 아들을 보며 그녀에게 무척 고마워하고 있단다. 연년생인 두 아들 장성찬(25) 군과 장희찬(24) 군은 모두 예일대 대학원 전액 장학생으로 학업 중이기 때문이다.

그간 정 사모의 자녀 양육법을 책으로 펴내자는 제안이 자주 있었지만, 혹시 자랑으로 여겨질까 봐 이리저리 사양을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나침반출판사의 김용호 대표가 “책을 통해 제2의 장성찬, 장희찬’이 생길 수 있다면 그것도 중요한 사명이 아니겠느냐”며 강력하게 권유하고, 그녀도 기도하는 가운데 이 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하신 일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이 땅의 부모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성찬 군(오른쪽)의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 졸업식에 참석한 정삼숙 사모(왼쪽)와 희찬 군(가운데).
성찬 군(오른쪽)의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 졸업식에 참석한 정삼숙 사모(왼쪽)와 희찬 군(가운데).

첼로를 전공한 성찬 군은 예원중학교를 수석 입학했으며,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코스를 2년 월반해 3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그 후 줄리어드 음대 석사, 예일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거쳐 지금은 노스웨스턴 음대 박사 과정을 하고 있으며, 그간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공부했다. 성찬 군은 지금 동급생들에 비하면 3년 이상 빠르게 학업을 하고 있지만,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면서 부모를 안타깝게 했던 아이였다고 정 사모는 전한다.

동생 희찬 군은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성적이 늘 하위권을 맴돌아 학습부진아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런데 장학금과 생활비·개인레슨비를 받으며 미국 브룩힐 고등학교에서 공부했고, 이스트만 음대를 거쳐 지금은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장학금과 생활비를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

희찬 군은 고등학생 1학년 때 브룩힐 고등학교로 유학을 갔을 때, 그 학교의 설립자이자 전 교장이 그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적극적인 후원을 자청하면서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 정 사모는 두 아들들이 원래 우수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겼더니 하나님께서 아이들에게 놀라운 재능과 능력을 주시고 만남을 통해서 큰 복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저렇게 두 아들을 다 번듯하게 키울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87년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을 지을 때까지 10여년 동안 19번 이사했고, 사택도 25번 옮기는 불안정한 환경이었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서만큼은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다.

“세상적인 교육 이론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비밀들이 성경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 디모데후서 3장 15절 말씀에도 있듯이, 말씀이야말로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저는 말씀훈련만큼은 혹독하게 시켰어요. 어떤 교재 없이 성경 그 자체를 많이 읽혀서 말씀에 가까워지게 했어요. 성경은 일반 책과는 달리, 그 자체로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는 놀랍고 위대한 능력이 있거든요.” 아이들이 성경을 잘 읽고 외우면 시상을 해서 동기유발을 했으며, 삶에 대한 적용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정 사모는 가정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가정예배가 때우기식이 되거나 아이들을 들러리로 세워서는 안 됩니다. 저희는 아이들이 가정예배를 인도하게 했어요. 아이들을 ‘성찬 목사님!’ ‘희찬 목사님!’ 하고 불러 주고 ‘아멘! 아멘!’ 하면서 정말 진지하게 아이들을 인정해 주었어요. 가정예배가 끝나면 그날 나눈 말씀을 가지고 대화를 많이 했어요. 이렇게 하면 가정이 말씀 중심으로 서고 화목해질 수밖에 없어요.”

정 사모만의 드림의 법칙 중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과외비였다고 한다. 이것은 성찬 군이 죽음의 고비를 넘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으로 시작한 헌금인데, 아이들의 미래와 교육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헌금을 했다는 것이다. “어떤 엄마도 자녀를 싸구려 학원에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텐데요. 저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대신 하나님께 맡기면서 싸구려로 헌금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면서 옷을 사거나 화장품을 사는 일은 금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많았어요.”

그녀는 “공격적인 드림은 하나님의 공격적인 응답을 만든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이들이 10여년간 유학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10억 가까운 지원금을 받으며 학비를 들이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그러한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 아이들을 교육하는 엄마가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우는 엄마라고 한다. 두 자녀의 성숙한 믿음과 헌신하는 삶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두 자녀를 통해 허락하신 아름다운 경험들과 열매들을 많은 어머니들과 나누고, 많은 어머니들이 거룩한 한나가 되는 일에 자신과 자신의 책이 쓰임받기를 소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소망대로 책이 출간된 지 한 달여 만에 3쇄 인쇄에 들어갈 정도로 반응이 뜨거우며, 각 교회의 어머니기도회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여, 이제는 사모의 사역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 부모 교육 강사로서의 사역까지 감당하게 되었다.

많은 어머니들이 “우리 아이가 사무엘처럼 되길 원한다면 자신이 먼저 한나 같은 어머니가 되라”는 이야기에 큰 도전을 받고 있다고 한다. 세상적인 교육법에 휩쓸려서 좌절하고 고민하던 어머니들이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녀들을 키우겠다고 결단하는 모습들을 곳곳에서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놀라고 감사하고 행복한 요즘이라며 그녀는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