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가장 맛있는 죽을 만들기 위해 일인다역(一人多役)을 마다 않는 <본죽> 최복이 대표. 그는 아동문학평론 신인상, 현대시문학가 출신답게 따뜻한 미소와 차분한 말씨를 지녔다.
최 대표는 “죽을 대중화시킨 비결”을 묻는 질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답했고, 죽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투정에는 “죽 한 그릇마다 제 영혼이 담겨 있습니다”라고 응수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그릇의 죽이 나오기까지는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그의 진득한 성품과 정직한 손맛에, 하나님은 1,200여개 점주 가정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본죽>을 선물로 주셨다.
‘글쟁이’였던 그가 생계 위해 일하며 얻은 뜻밖의 선물
-본래 죽은 주로 아픈 사람이 식사대용으로 먹는 음식으로 인식돼 왔는데, <본죽>은 그것을 대중화시키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생각의 전환이었던 것 같아요. 옛 문헌을 찾아보니 궁궐과 대가집에서 잣죽·흑임자죽·콩죽 이런 것들을 아침식사 혹은 식사대용으로 고급스럽게 먹던 풍습이 있었어요. 그런 것을 볼 때 죽이 못 사는 사람이나 아픈 사람만 먹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전통미를 살리면서 현대인의 입맛에 맞도록 변화를 줬습니다.”
-죽을 ‘슬로우푸드’라고 소개했던데 왜 그런 건가요?
“본죽은 매장의 조리과정을 과학화하고 단순화해서 5~10분 안에 손님에게 대접할 수 있게 했어요. 이것이 우리 노하우입니다. 그런데 사실 들어가 보면 짧은 시간 안에 나오게 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가령 호박죽을 만들 때 호박을 까고 쪄야죠, 파도 삶아야 하고 새알씨도 빚어야죠, 쌀가루도 갈아놔야죠. 새알씨 빚기 전 깊은 반죽을 해야 해서 반죽과 건조를 거쳐 물에 헹구고 냉동한 다음, 해동해서 사용합니다. 미리 준비하는 긴 과정들 때문에 ‘슬로우푸드’라 불러요.”
-조리과정이 까다롭다는 생각이 드는데, 조리 원칙과 제조과정을 설명해 주신다면.
“저희 프랜차이즈로서 레시피를 표준화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그 부분 중 ‘조화로움’이 맛을 내는 데 중요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맛을 내는 데 재료의 용량을 맞추는 것이죠. 조금만 흐트러져도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본죽 연구소가 항상 그 부분에 대해 개발하고 요리합니다. 제가 작년까지 연구소장으로 계속 일해왔었습니다.”
-그렇다면 용량을 맞춘 재료들을 매장으로 보내기 전 보관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저희 회사는 사옥보다 먼저 준비한 것이 물류센터일만큼 투자를 최고로 많이 했습니다. 가맹점 사장님들이 가장 좋은 음식을 만들게 하려면 가장 신선한 재료를 빨리 가져다 줘야 하잖아요. 물류 인프라가 가장 중요하더라구요. 그래서 저희가 일일배송을 실현한 거예요. 오늘 만든 것을 바로 갖다주는 거죠. 오래 냉장되면 신선도와 맛이 떨어지잖아요. 연구소가 맛과 전통을 살리는 레시피를 개발한다면 물류센터에서는 매장에 보낼 엄선한 재료를 1인분씩 정확한 양으로 계량화하는 거예요. 그러면 매장에서는 양을 조절할 필요가 없죠.”
-각 매장 사장님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매장 오픈 교육을 사장님께 직접 가르치고 노하우를 전수해요. 일주일간 매장에서 손님에게 죽을 쑤면서 노하우를 배우고요. 오픈 바이저가 동행해서 개점 후 3일 정도 제대로 하는지 봐주고 교육해줍니다. 이곳에서도 교육, 매장에서 1주일 교육, 오픈해서도 3일 정도 교육해서 맛있는 음식이 나가도록 하죠. 합리적으로 준비된 재료로 하게 하니 매장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본죽의 경영철학은 무엇인지요.
“저희 회사는 가치관 중심의 경영을 합니다. ‘행복을 돕는 사람들, 가맹점을 돕는 사람들, 소비자의 건강을 돕는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해서, 기업이 수익을 내는 건 기본이지만 그것보단 먼저 가치관을 따집니다. 우리 회사가 왜 존재하는지, 이 일을 우리가 왜 하는지, 어떻게 왔는지 그 정신을 붙들어요. 사장님 교육을 지금도 제가 직접 하고 있고, 가치관과 비전을 꼭 가르칩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가맹점 사장님들이 원칙을 잘 지키고 비전을 바라보며 왔기 때문이라, 가장 큰 자산이 사장님들이에요. 무척 감사하죠.
가맹점 사장님들 70~80%가 생계형이세요.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리며 노후 대책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죠. 이분들이 매장을 차리기 위해 재산을 털거나 빚을 지는 모습을 보면서, ‘꼭 성공해서 행복하게 살고 소비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그것이 우리 회사의 존재 이유이고 우리 직원들의 사명입니다. 우리만 잘 먹고 잘 사는 축복이 아니고 축복을 나누는 일을 하니, 직원들도 가맹점 사장님들도 자부심을 가집니다. 이것이 소비자 감동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의 원인인 거 같아요. 좋은 이미지, 좋은 기업, 좋은 음식, 이를 통해 매출이 향상되고 가맹점이 잘 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본사랑 재단은 저희 기업 수익의 10%를 사회봉사와 선교구제로 쓰고 있습니다. 기업과 봉사가 양 축이 되면서 성장하니, 나눔이 우리 기업의 문화를 개선시키고 이미지를 형성해 성장했습니다. 음식의 차별성도 있지만, 기업문화의 차별성도 있습니다.”
-<본사랑 재단>의 나눔활동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저는 대학로에서 가게 하나로 본죽을 시작했을 때, 가게 건너편에서 노숙자에게 밥을 주시는 교회 목사님을 만나면서 나눔에 처음 동참했습니다. 조금 소극적인 선교를 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가맹점 사람들과 기업의 가치관을 새기며 협력하려면 매개체가 있어야겠더라구요. 이렇게 탄생한 ‘본사랑재단’은 섬김·나눔·복음의 설립이념으로 선교와 구제를 조화롭게 하는 사단법인 재단입니다. 처음 가게 하나를 시작할 때는 노숙자의 식사를 돕던 정도에서, 나중에는 가게 하나를 드리게 됐고, 이제는 본사랑재단으로 선교와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순환의 고리가 되었던 거죠.”
-문학을 하신 점이 그러한 가치관을 갖고 사업하시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죽의 오랜 조리과정 역시 사람을 배려하고, 끈기있는 성격이 아니면 안 되니 말입니다.
“저는 경영에 문외한이었지만, 인문학을 하니 정서적으로는 풍부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을 존중하는 점이 씨앗이 되어 음식 만드는 데도 정성이 배어나오게 할 수 있었어요. 기업이 되어서도 사람을 존중하는 음식의 중요성은 잊지 않고 있어요.”
- 본죽을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아이템은 남편이 준 거였어요. ‘죽집 한번 해 봐라’ 추천해줬고, 시행착오 겪으면서 메뉴를 개발했습니다. 그때 제가 만들었던 15가지 메뉴가 지금도 매출의 80%를 차지합니다. 기업이 되고 신메뉴가 20개 나왔는데도 처음 메뉴가 전체 매출을 차지해요. 그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대학로에서 외진 골목, 그것도 2층에 1호점을 세웠어요. 현재 1,300개 매장을 통틀어 위치가 제일 상권과 떨어져요. 그런데 아직도 1호점은 그 자리에요. 주위 사람들은 ‘더 좋은 곳으로 옮겨라’, ‘그 건물 다 사라’는 얘기를 많이 해도 저는 처음 그 가게에서 장사할 때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고 유지하고 있어요. 첫 오픈을 앞둔 사장님들도 그곳에서 교육받아요. 그곳을 본 사장님들은 처음엔 다들 실망하세요. ‘뭐 이런 데서 해?’하는 반응이에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 여기에서도!’하는 희망을 오히려 얻기도 해요. 그래서 마음이 흐트러지면 그 곳에 가곤 하죠.
그곳에서 제가 홀로 장사할 때는 하루 7~10그릇을 팔기 시작했어요. 하루 죽 200~300그릇을 팔게 됐을 때만 해도 기업으로 만들 거라는 비전은 없었고, 정신 없이 일했어요. 목숨을 건 거죠. 절박하면 그만큼 힘이 생긴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때 심정을 설명하자면 마치 새끼 손가락으로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어요. 이거 아니면 죽는 거요. 왜냐면 아이 셋이죠, 어머님 모시고 살죠, 남편은 사업이 망해서 친구와 호떡 장사하러 나가있구요. 가정 경제가 돌아가지 않아 뭔가 돌파구가 필요할 때이고, 저 역시 몸도 많이 아팠구요. 이 죽집이 하나님께 선물받은 건데 그때는 선물이란 생각도 못했어요. 먹고 살기 바빴으니까요. 그때 ‘하나님 믿는 사람이 남에게 돈 꾸러다니는 것이, 나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남들에게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강하게 자극되었어요.
6시에 출근해서 새벽시장에 나가 재료를 사고, 전단지를 돌리고, 점심 되면 재료를 준비하고 죽을 쑤고, 새벽 1, 2시까지 메뉴를 개발했어요.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다 보니 다리에 마비가 오고 손에 마비가 오더라고요. 전 음식 하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100~200그릇을 팔다가, 큰 손실을 겪으면서 물질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깨달았어요. ‘정말 좋은 데 썼으면 좋았을 것을……. 돈이란 이렇게 허망한 물질이구나’ 하구요. 그 당시 제가 실제로 ‘돈 많이 벌었네. 좀더 큰 집으로 이사가고 이젠 돈 걱정 없이 살아도 되겠다’ 했는데, 물질의 가치에 대해 알게 된 계기였어요.
가맹점을 오픈하면서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는 글 쓰는 일이 적성에 맞지, ‘이 일은 먹고 살기 위해 잠시 하는 일이다’라고 초반에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이 일이 기쁘고 평생 할 일이란 생각에는 못 미쳤어요. ‘자리잡히면 내 갈 길 가리라’ 이런 시점이었는데, 그런 일을 겪고 형편이 매우 어려운 사장님을 돕게 됐어요. 그 분은 남편과 아이 셋을 돌보는 처지라 저희 가게 옆에 ‘자리 하나를 내 달라’고 떼써서 어렵게 내줬는데, 그 분이 여러 면에서 형편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어요. 그 계기로 ‘아, 이 일이 누구에게는 생계구나. 이 일이 정말 소중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고 느꼈어요. ‘어떤 사람들에게 가업을 이루게 하는 이 일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구나’.
그 후 이 일이 국문학도로서 글 쓰는 것보다 더 기쁨이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가맹점마다 찾아가 많은 기도를 하면서 같이 오픈해주는 열정이 생겼습니다. 구체적으로 기업의 수익을 이렇게 써야겠다 하는 구상이 나왔습니다. 매장 하나의 수익은 오롯이 선한 일을 하는 데 썼습니다. 그리고 천안역·부평역·대학로에서 노숙인 600~700분께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형통할 때는 기뻐하고 곤고할 때는 생각하라”
-프랜차이즈로 <본죽>을 브랜드화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일부 매장의 잘못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네. 너무 마음 아파 회개기도하며 참 많은 눈물을 쏟았어요. 잘못된 몇 점포 때문에 나머지 사장님들까지 어려움에 빠졌고, 기독교 기업에 누가 된 것이 부끄러워 회개 기도도 했구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1, 2개월 만에 원상복구됐고, 올해 들어 가맹점을 새로 열지 않았음에도 매출이 상승했습니다. 그런 ‘화’(禍)가 복(福)이 되는 좋은 계기 됐습니다. 9년 만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한만큼, 빨리 오다 보니 관리가 소홀했습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옆을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하자가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그 계기로 ‘빨리 보다는 멀리, 성공보다는 행복, 계약보다는 약속, 나보다는 우리’ 이러한 중요한 가치로 방향을 분명히 하게 됐어요. 그래서 회사의 모든 시스템을 바꾸고 프랜차이즈 신규 오픈을 전면 중단하는 어려운 결단을 했습니다. 외형을 키우는 것보단 신뢰 면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키워나가길 원합니다. 현재 프랜차이즈 매장이 1,250개 정도입니다. 이전 슈퍼바이저 직책을 SM(StoreManager)으로 바꿔 매장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스토어매니저(SM)가 수시로 점주를 만나고, 매장 직원들까지 교육합니다. 그때 문제가 됐던, 계량되어 나온 1인분 죽을 2인분으로 만든 것도 결국 교육의 부재였으니까요. 지금은 부족한 부분들을 강화하게 되어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본죽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비전이 있으시다면.
“‘낮은 자를 들어 큰 자를 부끄럽게 한다’는 말처럼, 저는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 아니지만, 하나님께 맡겨서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는 기업의 모델을 세상에 보이고 싶습니다. 경영·경제 공부하려고 유학 갔다 온 사람은 ‘자신’(自身)이 너무 많잖아요. 저는 워낙 백지라서 오로지 하나님께 매달리고 지혜를 구하니, 저를 간증거리로 쓰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기독교 기업으로서 본을 보이는, 영향력 있는 도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프랜차이즈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는 모델이 되길 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세계적인 외식브랜드를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과 국가 위상을 높이길 원합니다.
기아들에게 가장 적합한 음식이 죽이래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게 본죽의 ‘궁극적인 사명이구나’ 하구요. 그래서 간편하게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 죽이 되는, 팩으로 포장된 ‘본사랑 죽’이 탄생했어요. 작년에 이 죽을 완성해 네팔에 가져다 줬어요. 24가지 영양소가 들어 있는, 기아들을 위한 전문 죽입니다. 우리가 직접 나누기도 하지만, 선교단체나 기업에도 공급하려고합니다.”
최 대표는 “죽을 대중화시킨 비결”을 묻는 질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답했고, 죽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투정에는 “죽 한 그릇마다 제 영혼이 담겨 있습니다”라고 응수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그릇의 죽이 나오기까지는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그의 진득한 성품과 정직한 손맛에, 하나님은 1,200여개 점주 가정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본죽>을 선물로 주셨다.
‘글쟁이’였던 그가 생계 위해 일하며 얻은 뜻밖의 선물
-본래 죽은 주로 아픈 사람이 식사대용으로 먹는 음식으로 인식돼 왔는데, <본죽>은 그것을 대중화시키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생각의 전환이었던 것 같아요. 옛 문헌을 찾아보니 궁궐과 대가집에서 잣죽·흑임자죽·콩죽 이런 것들을 아침식사 혹은 식사대용으로 고급스럽게 먹던 풍습이 있었어요. 그런 것을 볼 때 죽이 못 사는 사람이나 아픈 사람만 먹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전통미를 살리면서 현대인의 입맛에 맞도록 변화를 줬습니다.”
-죽을 ‘슬로우푸드’라고 소개했던데 왜 그런 건가요?
“본죽은 매장의 조리과정을 과학화하고 단순화해서 5~10분 안에 손님에게 대접할 수 있게 했어요. 이것이 우리 노하우입니다. 그런데 사실 들어가 보면 짧은 시간 안에 나오게 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가령 호박죽을 만들 때 호박을 까고 쪄야죠, 파도 삶아야 하고 새알씨도 빚어야죠, 쌀가루도 갈아놔야죠. 새알씨 빚기 전 깊은 반죽을 해야 해서 반죽과 건조를 거쳐 물에 헹구고 냉동한 다음, 해동해서 사용합니다. 미리 준비하는 긴 과정들 때문에 ‘슬로우푸드’라 불러요.”
-조리과정이 까다롭다는 생각이 드는데, 조리 원칙과 제조과정을 설명해 주신다면.
“저희 프랜차이즈로서 레시피를 표준화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그 부분 중 ‘조화로움’이 맛을 내는 데 중요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맛을 내는 데 재료의 용량을 맞추는 것이죠. 조금만 흐트러져도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본죽 연구소가 항상 그 부분에 대해 개발하고 요리합니다. 제가 작년까지 연구소장으로 계속 일해왔었습니다.”
-그렇다면 용량을 맞춘 재료들을 매장으로 보내기 전 보관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저희 회사는 사옥보다 먼저 준비한 것이 물류센터일만큼 투자를 최고로 많이 했습니다. 가맹점 사장님들이 가장 좋은 음식을 만들게 하려면 가장 신선한 재료를 빨리 가져다 줘야 하잖아요. 물류 인프라가 가장 중요하더라구요. 그래서 저희가 일일배송을 실현한 거예요. 오늘 만든 것을 바로 갖다주는 거죠. 오래 냉장되면 신선도와 맛이 떨어지잖아요. 연구소가 맛과 전통을 살리는 레시피를 개발한다면 물류센터에서는 매장에 보낼 엄선한 재료를 1인분씩 정확한 양으로 계량화하는 거예요. 그러면 매장에서는 양을 조절할 필요가 없죠.”
-각 매장 사장님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매장 오픈 교육을 사장님께 직접 가르치고 노하우를 전수해요. 일주일간 매장에서 손님에게 죽을 쑤면서 노하우를 배우고요. 오픈 바이저가 동행해서 개점 후 3일 정도 제대로 하는지 봐주고 교육해줍니다. 이곳에서도 교육, 매장에서 1주일 교육, 오픈해서도 3일 정도 교육해서 맛있는 음식이 나가도록 하죠. 합리적으로 준비된 재료로 하게 하니 매장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본죽의 경영철학은 무엇인지요.
“저희 회사는 가치관 중심의 경영을 합니다. ‘행복을 돕는 사람들, 가맹점을 돕는 사람들, 소비자의 건강을 돕는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해서, 기업이 수익을 내는 건 기본이지만 그것보단 먼저 가치관을 따집니다. 우리 회사가 왜 존재하는지, 이 일을 우리가 왜 하는지, 어떻게 왔는지 그 정신을 붙들어요. 사장님 교육을 지금도 제가 직접 하고 있고, 가치관과 비전을 꼭 가르칩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가맹점 사장님들이 원칙을 잘 지키고 비전을 바라보며 왔기 때문이라, 가장 큰 자산이 사장님들이에요. 무척 감사하죠.
가맹점 사장님들 70~80%가 생계형이세요.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리며 노후 대책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죠. 이분들이 매장을 차리기 위해 재산을 털거나 빚을 지는 모습을 보면서, ‘꼭 성공해서 행복하게 살고 소비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그것이 우리 회사의 존재 이유이고 우리 직원들의 사명입니다. 우리만 잘 먹고 잘 사는 축복이 아니고 축복을 나누는 일을 하니, 직원들도 가맹점 사장님들도 자부심을 가집니다. 이것이 소비자 감동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의 원인인 거 같아요. 좋은 이미지, 좋은 기업, 좋은 음식, 이를 통해 매출이 향상되고 가맹점이 잘 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본사랑 재단은 저희 기업 수익의 10%를 사회봉사와 선교구제로 쓰고 있습니다. 기업과 봉사가 양 축이 되면서 성장하니, 나눔이 우리 기업의 문화를 개선시키고 이미지를 형성해 성장했습니다. 음식의 차별성도 있지만, 기업문화의 차별성도 있습니다.”
▲‘본사랑죽’을 먹는 네팔 소년 |
“저는 대학로에서 가게 하나로 본죽을 시작했을 때, 가게 건너편에서 노숙자에게 밥을 주시는 교회 목사님을 만나면서 나눔에 처음 동참했습니다. 조금 소극적인 선교를 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가맹점 사람들과 기업의 가치관을 새기며 협력하려면 매개체가 있어야겠더라구요. 이렇게 탄생한 ‘본사랑재단’은 섬김·나눔·복음의 설립이념으로 선교와 구제를 조화롭게 하는 사단법인 재단입니다. 처음 가게 하나를 시작할 때는 노숙자의 식사를 돕던 정도에서, 나중에는 가게 하나를 드리게 됐고, 이제는 본사랑재단으로 선교와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순환의 고리가 되었던 거죠.”
-문학을 하신 점이 그러한 가치관을 갖고 사업하시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죽의 오랜 조리과정 역시 사람을 배려하고, 끈기있는 성격이 아니면 안 되니 말입니다.
“저는 경영에 문외한이었지만, 인문학을 하니 정서적으로는 풍부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을 존중하는 점이 씨앗이 되어 음식 만드는 데도 정성이 배어나오게 할 수 있었어요. 기업이 되어서도 사람을 존중하는 음식의 중요성은 잊지 않고 있어요.”
- 본죽을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아이템은 남편이 준 거였어요. ‘죽집 한번 해 봐라’ 추천해줬고, 시행착오 겪으면서 메뉴를 개발했습니다. 그때 제가 만들었던 15가지 메뉴가 지금도 매출의 80%를 차지합니다. 기업이 되고 신메뉴가 20개 나왔는데도 처음 메뉴가 전체 매출을 차지해요. 그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대학로에서 외진 골목, 그것도 2층에 1호점을 세웠어요. 현재 1,300개 매장을 통틀어 위치가 제일 상권과 떨어져요. 그런데 아직도 1호점은 그 자리에요. 주위 사람들은 ‘더 좋은 곳으로 옮겨라’, ‘그 건물 다 사라’는 얘기를 많이 해도 저는 처음 그 가게에서 장사할 때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고 유지하고 있어요. 첫 오픈을 앞둔 사장님들도 그곳에서 교육받아요. 그곳을 본 사장님들은 처음엔 다들 실망하세요. ‘뭐 이런 데서 해?’하는 반응이에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 여기에서도!’하는 희망을 오히려 얻기도 해요. 그래서 마음이 흐트러지면 그 곳에 가곤 하죠.
그곳에서 제가 홀로 장사할 때는 하루 7~10그릇을 팔기 시작했어요. 하루 죽 200~300그릇을 팔게 됐을 때만 해도 기업으로 만들 거라는 비전은 없었고, 정신 없이 일했어요. 목숨을 건 거죠. 절박하면 그만큼 힘이 생긴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때 심정을 설명하자면 마치 새끼 손가락으로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어요. 이거 아니면 죽는 거요. 왜냐면 아이 셋이죠, 어머님 모시고 살죠, 남편은 사업이 망해서 친구와 호떡 장사하러 나가있구요. 가정 경제가 돌아가지 않아 뭔가 돌파구가 필요할 때이고, 저 역시 몸도 많이 아팠구요. 이 죽집이 하나님께 선물받은 건데 그때는 선물이란 생각도 못했어요. 먹고 살기 바빴으니까요. 그때 ‘하나님 믿는 사람이 남에게 돈 꾸러다니는 것이, 나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남들에게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강하게 자극되었어요.
6시에 출근해서 새벽시장에 나가 재료를 사고, 전단지를 돌리고, 점심 되면 재료를 준비하고 죽을 쑤고, 새벽 1, 2시까지 메뉴를 개발했어요.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다 보니 다리에 마비가 오고 손에 마비가 오더라고요. 전 음식 하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100~200그릇을 팔다가, 큰 손실을 겪으면서 물질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깨달았어요. ‘정말 좋은 데 썼으면 좋았을 것을……. 돈이란 이렇게 허망한 물질이구나’ 하구요. 그 당시 제가 실제로 ‘돈 많이 벌었네. 좀더 큰 집으로 이사가고 이젠 돈 걱정 없이 살아도 되겠다’ 했는데, 물질의 가치에 대해 알게 된 계기였어요.
가맹점을 오픈하면서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는 글 쓰는 일이 적성에 맞지, ‘이 일은 먹고 살기 위해 잠시 하는 일이다’라고 초반에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이 일이 기쁘고 평생 할 일이란 생각에는 못 미쳤어요. ‘자리잡히면 내 갈 길 가리라’ 이런 시점이었는데, 그런 일을 겪고 형편이 매우 어려운 사장님을 돕게 됐어요. 그 분은 남편과 아이 셋을 돌보는 처지라 저희 가게 옆에 ‘자리 하나를 내 달라’고 떼써서 어렵게 내줬는데, 그 분이 여러 면에서 형편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어요. 그 계기로 ‘아, 이 일이 누구에게는 생계구나. 이 일이 정말 소중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고 느꼈어요. ‘어떤 사람들에게 가업을 이루게 하는 이 일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구나’.
그 후 이 일이 국문학도로서 글 쓰는 것보다 더 기쁨이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가맹점마다 찾아가 많은 기도를 하면서 같이 오픈해주는 열정이 생겼습니다. 구체적으로 기업의 수익을 이렇게 써야겠다 하는 구상이 나왔습니다. 매장 하나의 수익은 오롯이 선한 일을 하는 데 썼습니다. 그리고 천안역·부평역·대학로에서 노숙인 600~700분께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형통할 때는 기뻐하고 곤고할 때는 생각하라”
-프랜차이즈로 <본죽>을 브랜드화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일부 매장의 잘못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네. 너무 마음 아파 회개기도하며 참 많은 눈물을 쏟았어요. 잘못된 몇 점포 때문에 나머지 사장님들까지 어려움에 빠졌고, 기독교 기업에 누가 된 것이 부끄러워 회개 기도도 했구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1, 2개월 만에 원상복구됐고, 올해 들어 가맹점을 새로 열지 않았음에도 매출이 상승했습니다. 그런 ‘화’(禍)가 복(福)이 되는 좋은 계기 됐습니다. 9년 만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한만큼, 빨리 오다 보니 관리가 소홀했습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옆을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하자가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그 계기로 ‘빨리 보다는 멀리, 성공보다는 행복, 계약보다는 약속, 나보다는 우리’ 이러한 중요한 가치로 방향을 분명히 하게 됐어요. 그래서 회사의 모든 시스템을 바꾸고 프랜차이즈 신규 오픈을 전면 중단하는 어려운 결단을 했습니다. 외형을 키우는 것보단 신뢰 면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키워나가길 원합니다. 현재 프랜차이즈 매장이 1,250개 정도입니다. 이전 슈퍼바이저 직책을 SM(StoreManager)으로 바꿔 매장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스토어매니저(SM)가 수시로 점주를 만나고, 매장 직원들까지 교육합니다. 그때 문제가 됐던, 계량되어 나온 1인분 죽을 2인분으로 만든 것도 결국 교육의 부재였으니까요. 지금은 부족한 부분들을 강화하게 되어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본죽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비전이 있으시다면.
“‘낮은 자를 들어 큰 자를 부끄럽게 한다’는 말처럼, 저는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 아니지만, 하나님께 맡겨서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는 기업의 모델을 세상에 보이고 싶습니다. 경영·경제 공부하려고 유학 갔다 온 사람은 ‘자신’(自身)이 너무 많잖아요. 저는 워낙 백지라서 오로지 하나님께 매달리고 지혜를 구하니, 저를 간증거리로 쓰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기독교 기업으로서 본을 보이는, 영향력 있는 도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프랜차이즈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는 모델이 되길 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세계적인 외식브랜드를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과 국가 위상을 높이길 원합니다.
기아들에게 가장 적합한 음식이 죽이래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게 본죽의 ‘궁극적인 사명이구나’ 하구요. 그래서 간편하게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 죽이 되는, 팩으로 포장된 ‘본사랑 죽’이 탄생했어요. 작년에 이 죽을 완성해 네팔에 가져다 줬어요. 24가지 영양소가 들어 있는, 기아들을 위한 전문 죽입니다. 우리가 직접 나누기도 하지만, 선교단체나 기업에도 공급하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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