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전 오늘, 그는 왜 죽임을 당하셨는가? “이는 창세 전에 하늘에서 결정되고 때가 차매 이뤄진,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설교가 스테판 차녹(Stephen Charnock, 1628-1680)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이유와 거기에 담긴 깊은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오늘 우리에게 분명하고도 풍성하게 말하고 있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Christ Crucified, 지평서원)’에서 그는 우리를 위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효력 있는’ 제물이 되셔서 ‘자발적으로’ 죽으셨는지를 이야기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고전 2:2)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죄인이 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진정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었기 때문에 공로가 될 수 있었다. 그 죽음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최고의 사랑이자 공의로운 행위에서 비롯됐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신 존귀하신 그리스도는, 스스로 즐거이 격심한 고난을 당하셨다. 그 형벌은 부끄러웠고 잔인하며, 가혹한데다 저주를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열매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혔고 율법을 폐했으며, 인간의 죄악이 해소됐고 마귀를 진멸했으며, 성화(聖化)가 동반되고 천국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그 분은 죄로 인해 고통받아 마땅한 우리를 능히 죽이실 수 있었지만 오히려 사랑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인간은 이 오직 죽음의 효력으로 위안을 얻고, 거룩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억제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을 향한 사랑마저 외면하셔야 했다.

정말 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소망과 결단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괴롭혔던 쾌락과 야망, 세속적 기질들을 억제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듣고도 그런 고통의 원인인 죄를 마음에 담아서는 안 된다.

유월절 양이 되시는 그리스도(고전 5:7)

유월절 양은 도살돼 피가 뿌려진 점에서 속죄제물이었고, 백성의 음식이 된 점에서 성찬의 기쁨이어서 그리스도를 상징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우리의 참된 유월절 양이신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되셨으므로 우리는 그처럼 크신 은혜에 합당하게 이 일을 기념해야 한다. 유월절 양의 비유는 그 분이 당하신 고난의 성격과 행하실 직무의 목적에 초점이 있다. 그 분의 낮아지심과 겸손함은 정말 비범하다. 그리스도가 정녕 당신의 유월절 양인지를 점검하자.

그리스도는 속죄제물이 되셨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이 속죄제물은 구세주를 상징하고, 그리스도는 이런 예표에 상응하는 실체이시다. 제물 자체에는 속죄하는 효력이 없다. 짐승의 피에서는 준엄한 공의와 온전한 거룩, 무한한 은혜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죄인에게는 깨끗하고 흠 없으며, 무한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속죄제물이 필요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제사장 직분과 관련해 반드시 속죄제물이 돼야 했고, 인성(人性)을 입고 친히 제물이 되셨다. 하지만 여기 그리스도의 수난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는 건 신성(神性)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아닌, 우리를 위해 희생되셨다. 구약에서 인간의 죄가 속죄제물에게 전염이 아닌 ‘전가’되듯, 우리 죄도 그리스도께 전가됐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께서 ‘죄’가 되셔서 형벌을 담당하셨다. 만일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지 않았다면, 그 분에게 내려진 형벌은 부당한 처사가 된다.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인간이 의롭게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허망해 보일지라도 그 죽음은 인간에게 온전한 의로움을 얻게 한다. 속죄제물인 그리스도는 참되고 직접적인 믿음의 대상이다. 그리스도께서 단지 하나의 ‘표본’으로 죽으셨다는 것은, 잘못된 견해다. 무엇보다, 속죄제물인 그리스도의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자신의 죄를 함께 떠올려야 한다.

자발적으로 죽으신 그리스도(엡 5:2)

그리스도는 ‘자발적으로’ 인간을 위해 속죄제물이 돼 고난을 당하셨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분이 당하신 고난의 동인(動因)이 됐고, 그리스도의 전 인격이 우리를 위해 희생되고 내주신 바 됐다. 그의 모든 행동은 인간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됐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속죄제물로 선택하셨다 해서 그 자발성의 가치가 약화되지 않고, 그 죽음이 필연적이었다 해서 자발성이 손상되는 것도 아니다. 그 분은 그리스도였기에 반드시 죽으셔야 했다.

인간에 의해 폭력적인 죽임을 당하셨지만 그 자발성은 흐려지지 않았고, 고뇌하시면서 죽음을 피하고 싶은 듯한 태도를 보이실 때도 그 분은 사실 진심으로 이 죽음을 열망하셨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뜻을 굽히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으며, 철저히 순종하셨다. 그는 기꺼이 자신을 내놓으셨고, 일평생 이러한 자발성을 분명히 보이셨으며, 죽음의 순간 보여주신 모든 행동들이 그 분의 자발적인 죽음을 증명한다.

그리스도는 제물이셨기 때문에, 공의의 측면에서 자발적으로 죽으셔야 했다. 완전무결한 속죄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 그처럼 힘든 조건들을 선뜻 받아들이시고, 우리의 몫인 십자가에 못 박혀 치욕스러운 죽음을 당하셨다. 그 사랑은 너무나 놀랍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죄악을 버리고 그 분께 자발적인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효력 있는 속죄 제물이 되시는 그리스도(엡 5:2)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 봉헌된 이 속죄제물은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향해 감미로운 향기를 풍겼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이 속죄제물을 반드시 받으셔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고 난 후에는 하나님께서 이 속죄제물을 받으실 의무를 지게 됐다. 이런 언약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율법에 따라 죄인에게 직접 그 빚을 갚으라 요구하시고, 형벌을 내리셨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자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기쁨을 느끼셨다. 이 속죄제물은 죄의 유입으로 깨진 하나님의 평안을 회복함으로써 큰 기쁨이 됐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극히 온전하신 신성이 이 속죄제물로 영화롭게 됐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이 제물이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감미롭고도 향기로우며, 인간을 위한 속죄의 효력이 있음을 입증한다. 이 속죄제물은 봉헌 전부터 이미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누구든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효력이 나타난다.

이 속죄제물은 그리스도의 존귀하심과 속죄제물의 정결함으로 효력을 발휘했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순종과 겸손, 믿음의 은혜가 나타났다. 이는 율법에 따른 충분한 속죄제물이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했다. 그러나 인간이 이를 불신한다면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행위이며, 이 제물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거부하고 자신이 하나님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된다. 이를 거부하는 인간은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여기서부터 죄의 사함은 시작된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정죄받지 않고, 이는 양심의 평안을 누리고 필요한 복을 기대하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가? 이 속죄제물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통해서다. 인간은 이 속죄제물만 붙들고, 끊임없이 이를 자신의 삶에 적용함으로써 속죄의 근거로 내세워야 한다. 인간은 날마다 죄를 짓기 때문에 속죄제물을 날마다 적용해야 한다.

저자 스테판 차녹은

스테판 차녹은 1628년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1642년에 케임브리지의 임마누엘 대학에 입학한 후 진정으로 회심을 경험한다. 런던 서더크에서 목회했으며, 1649년 옥스퍼드의 뉴칼리지에서 대학원 특별연구원이 돼 학문적 재능과 인격을 인정받으면서 토마스 굿윈, 존 하웨 등 청교도 영적 거목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 1655년에는 아일랜드 주지사 헨리 크롬웰의 전속 목사로 발탁됐고, 더블린 거주 동안 수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뜨겁게 말씀을 전하면서 탁월한 설교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다 1660년 찰스 2세의 왕정복고로 다른 수많은 청교도 목사들과 함께 목회 사역을 금지 당한다. 그리하여 1675년 금지령이 철회될 때까지 약 15년간 연구와 집필에 힘썼으며, 여러 번 네덜란드와 프랑스 등을 방문하면서 복음 사역을 계속한다. 이후 목사직이 복귀돼 크로스비홀 교회에서 토마스 왓슨 목사의 협동 목사로 일한다. 그는 1680년 53세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복지를 묵상하며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다. 그가 남긴 방대하고도 중후한 신학 저술들은 당시 청교도 사회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신학의 견고한 기둥으로, 신앙의 큰 산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책에 실린 내용은 그의 전집 제4권 ‘하나님을 아는 지식(The Knowledge of God)’에 수록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속죄에 관한 부분이다. 차녹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구약의 예표와 언약을 어떻게 성취하였는지를 진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