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예배와 교리와 치리는 '새 언약' 속한 문제
기독교인, 국가가 이 문제 개입하는 것 거부해야
하나님 자연법 존중 위해, 세상 법에 저항할 수도

기독교 정치학

데이비드 반드루넨 | 박문재 역 | 부흥과개혁사 | 584쪽 | 32,000원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늘 다종교·다원주의 사회를 살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 등 서양에서는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313) 이후 오랜 기간 '기독교 세계(Christendom)'가 이어져 왔다. 기독교는 1천년 넘게 서양 정치와 사회, 국가 제도의 근간을 이뤘고, 그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것은 사회와 공동체를 등지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계몽주의를 시작으로 과학혁명과 정치적 자유주의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서양은 '기독교 이후의 세계'를 맞이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인 데이비드 반드루넨(David VanDrunen)은 <기독교 정치학>에서, 기독교 세계 이후 '다원주의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내야 하는지 '개혁파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시작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세계 이후의 삶에서 새롭고 특별한 정치신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스스로 '좀 더 크고 대담하다'는 이 주장에 대해 저자는 "기독교 세계 이후 세계에 완벽하게 적합한 정치신학적 비전은 성경 자체에 이미 들어있기 때문"이라며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을 상정하고서, 그들이 그런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게 준비시킨다"고 말한다.

사실 저자의 말처럼 신약 성경 속 예수님과 제자들이 시작한 하나님 나라 운동은, 황제를 섬기는 거대한 로마 제국 속에서 겨자씨와 같이 겨우 출발한 상태에서 쓰여졌다. 장차 큰 나무가 될 테지만, 저자는 "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기존의 '기독교 세계(Christendom)'가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통합된 기독교적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밝힌다.

간단히 말해 성경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궁극적으로 도래할 '새로운 세계'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정치) 공동체 내에서 활동하며 그 공동체의 번영을 촉진시킬 뿐,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정치 공동체 안에서 일시적인 거류민이자 타향살이를 하는 나그네다."

하나님은 한편으로 보편적 통치를 수행하셔서 이 세계를 보존하시고 정부를 비롯한 사회 제도를 정하시며, 다른 한편으로 구속적 통치를 수행하셔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새 창조를 이루신다는 것이 초기 개혁파 신학에서 발전된 '두 나라' 사상이다.

이 땅의 정치 공동체, 시민 정부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합법적이라고 인정하셨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시적이고, 모든 사람을 위해 정의를 베풀도록 보편성을 주셨지만 거기에 따르는 책임도 부여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이것이 이원론 또는 이분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두 나라 전통을 따르면서, 특히 창세기 8장 21절부터 9장 17절까지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노아 언약'을 그 기초로 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노아 언약'은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것을 요구하고(창 9:1, 7), 식물과 동물을 먹는 것을 공인하면서 동물은 생명의 피와 함께 먹지 말라고 말하며(9:3-4), 살인자에 대해 응보의 정의를 집행할 책임을 부여한다(9:6). 여기서 출발한 조직이 바로 가족과 기업과 사법(법률) 제도이며, 이들은 노아 언약으로 위임받은 사명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일반 정치 공동체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저자는 베드로의 말을 빌어 "거류민과 나그네(벧전 2:11)"라고 제시한다. 이는 가나안에 도착한 아브라함과 그의 집, 이스라엘 민족의 바벨론 포로 시절 등 구약 성경에서도 나왔던 용어들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그 나라 안에서 거류민이자 나그네다. 그들에게는 이중의 시민권이 있어서, 하늘과 이 땅의 도성의 시민이다. 그러나 하늘의 시민권이 그들이 궁극적으로 충성하는 곳이므로, 이 땅에서의 그들의 시민권은 거류민이자 나그네로서 이 땅에서 잠시 거주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본향을 그리워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병든 것이다."

기독교 정치학 미국 국회의사당
▲미국 국회의사당. 이곳에서 대통령이 취임식을 갖는다. ⓒ픽사베이

이론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는 듯 하지만, 오늘날 코로나 상황과 관련해 관심을 가질 내용들도 풍부하다. 최근 일괄적인 비대면 예배 기조에 반발해 부산 세계로교회는 대면 예배를 선포하기도 했다.

먼저 예배에 대한 것이다. "신약 성경에 따르면, 교회가 어떻게 예배하고 가르치며 다스리고 치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국가의 관할 아래 있지 않고 교회 자신의 관할 아래 있다. 그런 문제를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은 교회가 임명한 자격 있는 지도자회다."

기독교 예배와 교리와 치리는 온 인류에게 주신 '노아 언약'에 속한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새 언약'에 속한 문제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국가가 그런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보편적인 법적 요구와 양심적인 종교적 반대 사이의 불가피한 갈등 해법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법 적용의 면제를 다룬 미국 연방대법원 주요 소송들이 폭력에 대한 처벌처럼 대부분이 그 사법적 제한에 동의할 내용보다는, 필수적이지 않고 사람들 간의 견해 차이가 더 두드러지는 복지·교육·의료 서비스 영역에 집중돼 있다고 하면서다.

저자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더 많은 것을 행하고 규제하려 할수록,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딜레마에 그만큼 더 격렬하게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그 두 가지 선택지는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너그럽게 면제함으로써 다원주의적 사회를 유지하고 사람들 간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 약자들을 저항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공적 생활의 여러 측면으로부터 물러나게 만들거나 자신들의 양심적 종교적 확신을 희생하게 만들어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 공동체의 다원주의적 성격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아 언약'이 제시하는 전제, 정치 공동체는 종교적 정체성과 상관없이 가능한 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한다면, 적절하게 완화된 야심을 지닌 제한적 정부를 유지하는 게 옳다는 결론이 나온다"며 "정부가 교육의 교과과정을 설계하거나, 포괄적 의료 서비스 체계를 확립하는 것같이 상당히 야심찬 결정을 필요로 하는 일들을 수행할 근거는 불충분해 보인다. 노아 언약이 오직 사람들 간의 폭력이라는 관점에서만 정의를 수호할 것을 명령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나 편의적 예시 이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나아가 법과 정부가 정의를 촉진하기보다 도리어 불의를 자행할 때, 국가 권위에 불복종하거나 법령에 저항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부 기관과 관리는 오직 법이 허용한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인 권위를 갖고, 법은 오직 자연법 즉 하나님의 법 테두리 안에서만 권위를 갖는다"며 "따라서 사람들은 더 높은 권위인 법을 존중하기 위해 정부의 행위에 불복종하거나 저항해야 할 수도 있고, 가장 높은 권위인 하나님의 자연법을 존중하기 위해 법에 불복종하거나 저항해야 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외에도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전통에 관한 고찰을 비롯해 정부의 권위와 법의 권위, 노아 언약이 탄생시킨 가족과 경제, 정의와 권리를 추구하는 사법 제도에 관한 구체적 측면, 자연법 등을 '노아 언약에서 기원한 정치 공동체'라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일관되게 조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의 <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새물결플러스)>, 로드 드레허의 <베네딕트 옵션>, <교회의 정치학(이상 IVP)>을 쓴 스탠리 하우어워스 등 '기독교 세계 이후' 대안을 제시한 여러 저작과 신학자, 일반 학자들의 주장들을 소개하며 자신의 주장과 비교함으로써 논지를 강화한다.

청와대
▲우리나라 대통령 집무실인 청와대. ⓒ크투 DB

책에 대해 백금산 목사(예수가족교회)는 "정치사상의 역사 가운데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성경적 정치사상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아주 체계적이고도 철저하게 논증한 작품"이라며 "정치철학사에 있어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뿌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연구서 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백 목사는 "<기독교 정치학>은 성경신학적 측면에서 성경 전체 이야기의 줄거리와 구조를 제공해 주고, 조직신학적 측면에서 성경 전체 교리를 요약해 주기도 하는 성경의 언약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 정치학의 토대로서 성경의 언약들 중 '노아언약'을 기초로 한다"며 "단편적 성경 본문의 자의적 해석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조망해 주고, 성경 전체의 뼈대와 핵심이 되는 언약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개혁파 안에 다양한 정치신학적 견해가 있지만, <기독교 정치학>은 고전적인 두 나라 신학에 기초한 정치신학을 최고도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개혁파 정치신학의 불후의 명작"이라며 "이 책이 발간된 것은 한국 정치학 서적의 발간 역사나 한국 교회의 정치신학 발간의 역사에 있어 한 획을 긋는 아주 의미 깊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 책이 대한민국 교회와 목회자, 기독교인에게 성경적 정치관을 깊고 넓게 형성시켜 주는 전환점이 되기를 소망한다"며 "<기독교 정치학>을 성경적 정치학 교과서로 공부한 한 세대가 형성되면, 하나님 나라와 대한민국의 이중국적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대한민국의 자유시민답게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저자 데이비드 반드루넨 교수는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시카고 로욜라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통장로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이자 정식 허가를 받은 변호사로, 나이도 비교적 젊은 '엄친아'다.

저서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기> 등이 있으며, 정치신학 시리즈 <자연법과 두 나라>, <언약과 자연법(이상 부흥과개혁사)>를 펴냈다. <기독교 정치학>은 정치신학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니, 1-2권도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