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석, 연상호 작가가 연재하는 웹툰 ‘지옥’ 포스터
(Photo : 네이버 웹툰) 최규석, 연상호 작가가 연재하는 웹툰 ‘지옥’ 포스터

<지옥>이라는 제목의 웹툰(인터넷 웹사이트에 게재되는 이미지 형식의 만화)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넷플릭스가 드라마로 제작하겠다고 할 정도지요. 내용이란 어떤 초월적 존재가 인간을 끔찍하게 처벌하고, 그 장면이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시연’된다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몇 년 며칠 몇 시에 지옥에 가게 될 거라는 ‘고지’를 신으로부터 받은 자는 그 시간이 되면 갑자기 나타난 초월적 존재에 의해 몸이 갈갈이 찢긴 후 불태워지게 됩니다. 그가 도시든, 시골이든, 어디로 피하든지 말이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죄를 지은 자에게 징벌을 내림으로써 선하게 살 것을 촉구하는 신의 준엄한 가르침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두려움이 지배하는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집니다.

(Photo : 네이버 웹툰 ‘지옥’ 캡쳐)
(Photo : 네이버 웹툰 ‘지옥’ 캡쳐)

두려움을 넘어 광기에 사로잡힌 이들 중 일부는 민간단체를 구성하고, 고지 받은 사람들을 찾아내 대중 앞으로 끌어냅니다. 끌려온 이들은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죄를 자백하고 괴로워하며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요. 개중에는 자신과 남겨진 가족이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불명예를 피하고자 홀로 잠적하기도 합니다. 민간단체는 마치 자신이 징벌의 집행자라도 되는 양 행세하며, 자경단 비슷한 것을 구성해서 고지 받은 자를 색출해냅니다. 그가 잠적해서 홀로 최후를 맞이하려 하면 기어이 찾아내 대중 앞에 무릎 꿇립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맹신을 등에 업고 범사회적인 절대 권력이 되어 갑니다.

하지만 사실 고지의 대상은 그 사람의 죄와는 무관했습니다. 초월적 존재는 그 사람이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무작위로 고지의 대상을 선택했던 거지요.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가 고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 집단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합니다. 고지와 형벌은 그 사람이 살면서 지은 죄와는 무관한, 마치 자연재해와도 같이 임하는 것임을 말이지요. 물론 이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은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심판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하게 살 의지를 잃게 되어 세상은 더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로서는 집단 광기에 사로잡힌 사회를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반면에 민간단체는 진실을 은폐하려 합니다. 사람들이 죄에 따른 끔찍한 형벌을 두려워하면서 선하게 살아갈 테니 이를 계기로 선한 세상을 이뤄가자는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힙니다. 게다가 이들은 대중의 두려움으로부터 파생된 권력을 손에 넣게 됩니다. 방송, 경찰 쪽에도 힘을 쓸 정도의 절대 권력을 갖게 되지요. 주인공 집단의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를 유혈이 낭자한 폭력을 동원하면서까지 방해합니다.

이렇듯, 일견 염세적으로 보이는 이 작품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할 여러 가지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지옥>의 신은 괴팍하지만, 우리 주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지옥>에서 신은 그 사람이 죄를 지었든 안 지었든 상관없이 무작위로 심판을 합니다. 갖고 놀 장난감을 선택하듯이 말이죠. 심판의 시연과 당사자의 인생 간에는 아무런 도덕적 인과관계나 논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품 속 신은 아주 괴팍하고 포악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재미있어 하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자 모든 선의 원천이시며(욥기 34:10), 모든 죄를 미워하시는 분입니다(시편 5:5-6).

둘째, <지옥> 속 인간들과 달리 하나님은 인과법칙에 매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옥>에서 참혹한 시연을 목도하게 되자 사람들은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혀서 상황을 규명해보려는 이들에게 폭력을 가합니다. 심판을 당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럴만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죠. <지옥> 속 인간들은 자연적 인과법칙에 매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인과법칙에 의해 흘러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안목과 제한된 이해력으로는 우리 인생을 둘러싼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신뢰해야 합니다(예레미야 18:6).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쁜 일이 닥치는 이유를 때로 숨기심으로써,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쁜 일들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좋은 것들을 주시기도 합니다(시편 119:67-71).

셋째, 비록 현실이 ‘지옥’ 같더라도 지옥은 현실세계가 아닙니다. 웹툰의 제목이기도 한 <지옥>이라는 단어는 중의적(重義的)입니다. 첫 번째 의미에서 지옥은 정체 모를 초월적 존재들에게 찢기고 불태워져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 참혹한 광경이 제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요. 두 번째 의미에서 지옥은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세계입니다. 진짜 지옥은 아니지만, 유사지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지옥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영혼이 육체와 분리됩니다. 불신자의 영혼은 즉시 지옥에 던져지어 극심한 고통과 암흑 가운데 갇히게 됩니다(마태복음 10:28). 최후에 있을 큰 심판을 기다리게 됩니다(히브리서 9:27). 그러니 이 땅에서 육신이 죽음을 맞거나 고통을 겪는 것은 비록 비참할지라도 성경이 말하는 ‘지옥’은 아닙니다. 웹툰 <지옥>은 ‘지옥’의 의미를 현세적인 것으로 축소 시킵니다. 무시무시한 초월적 존재들에게 죽임을 당한 이후 그 영혼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이 웹툰이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이 가르쳐주는 지옥에 대해 확인하게끔 합니다.

넷째, 심판에 대한 공포가 무조건 사람들을 선으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 속 악당들은 마치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넣으면 정확히 동전 가치만큼의 상품이 배출되듯이, 공포가 사람들에게 기계적으로 선을 강제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죄에 대한 형벌이 죄를 억지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처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스스로의 의지로 선 또는 악을 선택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신명기 30:19). 물론 우리 인간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죄성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선 보다는 악을 좋아합니다. 윤리와 규범보다는 본능을 추구하는 존재이기는 합니다(야고보서 1:14).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선을 향한 선천적인 감각도 있습니다. 인류의 도덕적 양심은 형벌적 정의와 함께 인간사회를 지탱해 왔습니다. 그러니 심판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선한 세상을 만들어낼 거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비관적입니다.

다섯째, 형벌이란 죄의 무게에 따라 적절해야 합니다. <지옥>에서 심판을 당하는 자들은 자신의 죄목이 무엇인지 모른 채 죽어갑니다. 형벌을 집행하러 온 존재들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벌을 받는지 말해 주지 않습니다. 당사자의 죄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그저 참혹하게 ‘시연’을 할 뿐이지요. 하지만 모든 죄가 죽을 죄는 아닙니다. 죄의 크기가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형벌이 죄보다 작을 경우 죄를 억지하는 기능을 상실할 수 있지만, 더 커도 곤란합니다. 죄보다 큰 형벌은 그 자체로 정의롭지 못함은 물론, 과도한 사적 복수가 되어버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죠. 구약의 율법이 죄의 경중 혹은 고의성에 따라 형벌을 차등적으로 규정하고 있음도 우리는 눈여겨봐야 합니다(민수기 35:20-25). 게다가 죄에는 개인의 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죄도 있습니다. 개인은 평소 선을 행하지만, 그가 속한 공동체의 목표나 역할이 죄로 연결되는 거라면 그는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악한 공동체로부터 빠져나올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본인이 공동체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의 형벌은 고의적으로 악을 행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과 똑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웹툰 <지옥>에는 기독교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에는 독자들로 하여금 기독교의 진리와는 다른 그릇된 가치관을 갖게끔 하거나 분별력을 요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를 가리켜 결코 작품의 흠결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중문화가 기독교인을 헛갈리게 한다면 이는 교회교육을 보강할 일이지 그들을 탓할 일은 아니겠지요. <지옥>을 비롯한 대중문화가 함의하고 있는 메시지들을 기독교의 진리에 비추어서 점검하고 올바른 기독교적 가치관을 되새김질한다면 우리의 신앙에 큰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노재원 목사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