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많은 나라들은 물론이고 한국도 이제는 복음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예배 참석에는 소극적이며, 복음에는 냉담하고, 교회에서는 아예 행방불명된 성도들이 점차 늘어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소프트웨어 즉 사람을 세우는데 모든 열정과 헌신을 던질 때임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한국 교회들은 아직도 교육관 설립 및 선교지 센터의 개관 등 건물을 세우는데 집중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
크리스천이란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허다하게 많은 크리스천들이 여전히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불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고, 광야에서 방황하며,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을 동경하던 모세의 세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제는 먹고 마시는 것에 만족하는 세대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호수아 세대로 변해야 할 때이다.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 입성하고, 하나님께서 가증케 여기시는 이방신을 섬겼던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고, 거친 그 땅을 쟁취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으로 만든 바로 그 믿음의 세대들로 거듭나야 할 때이다.
코칭에서는 중요한 몇 가지의 핵심 철학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모든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피코치에게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가능성의 유무가 아니라, 피코치를 향한 코치의 믿음( Trust) 일 것이다. 즉 최고의 코치이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라는 피코치에게 숨겨져 있는 잠재력을 믿고 그가 스스로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적극적인 마인드와 자신감을 갖도록 인도해 주신 것이다.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신앙' 이란 '가능성' 이자 '경쟁력' 을 일컫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학벌과 재물과 명예를 구할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은 겸손한 자세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해내는 자들이다. 그러한 겸손과 책임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참된 '신앙'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왜 예수 그리스도가 위대하신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이 될 것이다. 그분의 위대함은 바로 가장 낮은 곳에 임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내가 무엇을 하고자 열심을 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실 일들을 꿈꾸고 발견한 뒤 겸허하게 그 일을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 코칭의 핵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분께 쓰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그 무한한 가능성을 보시고 그를 쓰시기 시작하신 것이었다.
분명하게도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자세는 코치가 피코치 즉 코칭을 받는 이들을 바라볼 때의 시각이어야 한다. 지금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세상에 지쳐 쓰러져 가고 있으며 또한 절망과 위기 가운데 있는 장년들도 도처에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가능성을 찾아 쓰고자 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시각으로 코치 또한 피코치를 사랑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코칭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가? 아직도 모세의 세대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여호수아의 세대를 걷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라. 여호수아 세대들이 가졌던 그 불같은 열정이 당신에게도 여전히 있는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 여호수아의 세대처럼 비전과 목적을 가지고 그 약속의 땅을 향하여 달려 갈 자신감이 있는가? 만일 오늘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 (여1:9)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 세대처럼 당신을 그 열정의 세대로 부르신다면, 당신은 어떠한 답변을 하나님께 들려 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