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기 시작하고 그 커다란 은혜와 그 은혜를 받지 못한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를 깨닫고 저는 어떻게 하나님을 전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턱대고 전하기도 했고, 돈으로 신앙을 사려는 우를 범하기도 했고, 또 객관적인 증거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전하려고 하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최고 지성들의 강의, 글, 토론 등을 보며 느끼는 점들은 이 들이 하나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 믿기 싫어한다는 것 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증거에 의해 또 본능에 의해 이 세상에 창조주가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그 창조주를 성경의 하나님과 연결시키기를 거부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경우에 너무도 질서 정연한 우주를 보며 이 세상에 분명히 창조주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그 창조주가 성경의 하나님 같은 인격적 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최대한 하나님을 믿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제발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절대자가 하나님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 절대자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나 성당에 나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절대로 그 하나님이 성경에서 얘기하는 하나님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낸 하나님의 이미지를 그려내고는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날까요? 성경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이 되고 싶어 선악과를 먹은 인간들

사람들이 왜 창조주 하나님을 믿기 싫어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죄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의 시작은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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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 <창세기 3:5>

 

창세기 3장에는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탄이 어떻게 하와를 유혹하냐면, 선악과를 먹었을 때, 하나님처럼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고 말하고, 하와도 선악과가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여서 이를 먹고 아담에게도 줍니다.

죄의 원인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대신 사탄의 말을 더 신뢰한 것에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피조물로써 하나님을 주인삼아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했던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나님의 유일한 명령을 불순종한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되고 싶다는 말은 어떤 의미 일까요? 그것은 스스로 있는 자이신 하나님,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처럼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어 이 세상을 자신의 선악 판단대로 다스리고 싶다는 의미 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신 하나님을 믿기 싫어 합니다.

나의 죄를 들키기 싫어서 하나님을 믿기 싫어!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그 것은 죄악으로 가득한 내 삶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너무도 거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하나님이 없다면, 이 세상에 죄악이나 부끄러운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이 사실인 세상에서 모든 목적은 생존이며, 내가 사람을 죽이건, 물건을 훔치건, 뇌물을 주고 받아 부를 쌓건 생존만 하면 되는 것이 무신론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죄책감이란 것이 있습니다. 양심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어쩌면 자랑거리가 될 만한 나의 도덕 의식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것이 되어 버립니다.

포르노를 보는 것도, 학창 시절 주먹을 좀 써서 많은 친구들 위에 군림한 것도, 다른 사람들의 무지를 이용해서, 혹은 나의 권력을 이용해서 돈을 벌거나 이득을 본 것도 사람들 앞에서는 호기를 부리고 자랑할 수 있을만한 것이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 선이며 거룩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자기 행위를 책망 받을까 염려하여 빛을 미워하고 또 빛으로 나아오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요한복음 3:19~20>

그래서 내 삶을 너무도 거북하게 만드는 하나님이란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해 버립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나아와 자신의 죄를 해결하려하는 대신 나를 죄인되게 만드는 기준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합니다.

법 없이 살만한 착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기 싫어 하는 이유

그런 일은 꼭 우리 생각에 음란하고 수준 낮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만 일어나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보기엔 성인 군자 같고, 착하고,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사람들에게서도 일어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 입니다. 이들은 당시에 가장 청렴하고 율법적인 삶을 살며 많은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하고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하나님이 기뻐할 만한 모범적인 삶을 살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에게서 청천 벽력과 같은 소리를 듣습니다.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찌 너희가 지옥의 정죄를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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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우리가 뱀이라고? 우리가 지옥에 간다고? 나처럼 착하게 살던 사람이 왜? 나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 왜?

 

하지만 마치 재산을 1,000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일반적인 세상에서는 부러움을 살 만한 큰 부자이지만 빌 게이츠 앞에서는 돈 자랑을 할 수 없듯이, 사람들 앞에서는 의로워 보이는 바리새인들도 예수님 앞에서는 초라한 죄인에 불과했고, 빛 이신 예수님은 그들의 어두움을 하나 하나 드러내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도덕 기준은 인간이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우리들은 내가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간음을 해도 실제로 행하지만 않으면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도덕 기준은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이며, 음란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쳐다만 봐도 간음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 높은 기준에 비춘 인간은 모두 비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그런 높은 기준을 들어 자신들을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버립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죄를 해결하려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는 존재를 없애 버립니다.

하나님을 믿기 싫어하는 죄인들과 그런 죄인들에게 얼굴을 가리시는 하나님

하지만 이는 어리석은 행동 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을 없앨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하고 싶으면 스스로를 드러내면 되지 않냐고 물어봅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수 있지만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면 그 날에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올라 내가 그들을 버리고 내 얼굴을 그들에게 숨길 터인즉 그들이 삼켜지며 그들에게 많은 재앙과 고난이 닥치리니 그러므로 그 날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들이 우리에게 닥치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기 때문이 아니냐? 하리라.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저지른 모든 악행으로 인하여 내가 그 날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신명기 31:17~18>

오히려 거꾸로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하고 음란하고 폭력적이며 하나님의 법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죄를 지으면 그 모든 악행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숨기시겠다고 말하십니다.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이 세상에 주인이 되어 살아보려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살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생명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탄과 싸워야하고 결국 그들의 종이 되어 살아야 하며 사탄에 속아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악과 저주가 가득하고 불행과 눈물로 얼룩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모든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죄악 가운데 살아서 일어나는 일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안에 없기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는 것 입니다.

그게 이 세상 아닙니까? 지금 신명기의 말씀이 정확하게 이 세상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렇게 잔혹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것을 핑계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은 하나님께 있지 않고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죄를 극도로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죄가 있는 인간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기 싫어하고 하나님은 죄로 가득한 인간에게 얼굴을 숨기십니다.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 - 예수 그리스도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구원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죄가 너무 커서 하나님을 인정하면 너무 불편하신 분들도 나는 죄 없이 깨끗하게 살아서 하나님이 필요 없으신 분들에게도 유일한 구원의 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들춰내시는 것은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기 위함이지 우리의 죄로 우리를 심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부끄럽다고 옷을 벗지 않으면 수술을 할 수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를 내어보내지 않으면 나의 죄를 씻감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예수님을 보내신게 아닙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예수님을 보내신 겁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4~17>

예수님을 믿는 것이 쉽다고 얘기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고통 스러운 일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인간이 나의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나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던 사람이 내 삶의 주인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고민되는 일이겠습니까? 나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고 자기 부인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하지만 유일하게 그것에만 생명이 있으며 그것에만 자유가 있습니다. 나의 모든 죄의 짐을 예수님께 맡길수 있다는 것이, 내가 내 죄에 대한 댓가를 치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 것을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하는 산이 있는데 그것이 나의 죄를 하나님께 내어 놓는 것 입니다.

그것을 위해,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http://fingerofthomas.org/%EC%82%AC%EB%9E%8C%EB%93%A4%EC%9D%B4-%ED%95%98%EB%82%98%EB%8B%98%EC%9D%84-%EB%AF%BF%EA%B8%B0-%EC%8B%AB%EC%96%B4%ED%95%98%EB%8A%94-%EC%9D%B4%EC%9C%A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