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Photo : )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삼았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7, 21)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옷이 가지고 있는 역할과 의미는 매우 넓다. 우선적으로 옷은 자신의 몸을 감출 수 있는 수단이다. 그리고 추위와 더위 등과 같은 자연의 변화 혹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적 도구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옷이 날개라는 속담처럼, 옷은 자신을 남에게 돋보이게 하는 치장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옷의 유행은 그 주기가 빠르고 짧아 거의 매 계절마다 새로운 유행이 나오기도 하는 것 같다. 삶의 필수품이면서 동시에 유행의 대명사가 된 옷의 문화는 아마도 인간이 지니고 있는 문화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성경에 처음으로 언급된 옷의 문화는 오늘날처럼 다양한 역할로 시작되지 않았다. 범죄 한 인간이 자신의 수치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감추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옷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즉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자신이 벌거벗고 있음을 알고 급히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는데, 그것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옷이었다. 아마도 에덴동산에 있는 나무들 중에서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가장 단단해 보였고 또한 잎사귀도 넓어서 옷을 만들어 입기에 적합하였던 것 같다.

무화과는 성서시대 이스라엘에서 중요한 과일 작물 중의 하나였다. 열매 자체에 당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쉽게 말려 보관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말린 무화과 열매는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일이 나지 않는 계절 동안 좋은 대용식품 역할을 하였다. 무화과 열매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대표적인 일곱 가지 작물에 포함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선사하는 귀중한 선물로도 널리 사용이 되었다(신 8:8). 주로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는 비교적 건조한 지역에서 재배되는 농작물이기도 하다. 완전히 자란 무화과나무의 높이는 3미터 내지 5미터 정도이며, 손바닥 모양의 크고 거칠며 잎맥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는 잎사귀를 가지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만들어 입은 옷은 치마였다. '치마'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고르'는 허리 주변만을 가리는 짧은 앞치마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들이 만들어 입은 치마는 정상적인 옷이기보다는 간신히 수치스러운 부분만을 가리는 임시방편용이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완벽한 옷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루 이틀 지나면 곧 말라버릴 보잘 것 없는 나뭇잎 치마였다. 수치를 가려보려는 인간의 노력이 그처럼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것임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들이 만들어 입은 치마는 하나님 앞에 드러난 본질적 수치를 덮어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수치스러운 부분을 가렸다. 그러나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앞에서는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어버렸다(창 3:8).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범죄에 대한 판결을 내리신 다음 그들을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다(창 3:21). 여기에서 '옷'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케토네트'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원피스로서 허리부분을 허리띠로 묶어 입는 겉옷이다. 더구나 재료가 잘 찢어지지 않는 견고한 가죽으로 지은 옷이었다. 지금도 가죽옷은 옷 중에서 가장 튼튼한 것이기 때문에 진품의 가죽옷은 고가품이 되고 있다.

성경에 처음으로 언급된 옷 이야기는 범죄의 수치심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드러내준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신 구원계획은 얼마나 온전하며 영속적인가를 보여준다. 인간의 노력이 불완전한 일회용이라면, 하나님의 회복은 완벽하고도 영원한 것이다.

여름의 무더운 열기가 한 풀 꺾인 요즈음 옷가게 진열대에는 벌써 가을 옷들로 가득 차 있다. 옷이 날개인 것은 분명하다. 계절감각에 잘 맞는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으면 한결 돋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 입은 옷은 하루 이틀 만에 말라버릴 무화과나무 잎사귀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손수 지어주신 가죽옷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가죽옷은 세상의 어느 직조업자도, 어느 디자이너도, 어떤 염료로도 만들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옷이다.

한결 상쾌함을 느끼는 이번 가을에는 계절에 맞는 새 옷으로 단장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가죽옷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더욱 새로워질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