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 지상에 남겨주신 선물이 하나 있다면 그의 피로 사신 교회입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이며, 제도적이며, 교파적이고 교리적인 그런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교회인 것입니다" - 고(故) 하용조 목사
고 하용조 목사님은 교회에 대해서 항상 두 가지를 질문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는 '교회는 정말 주님의 꿈이시고, 이 시대의 희망과 대안이 되고 있는가?' 였고, 다른 하나는 '이상적인 교회는 존재하는가?'였습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살면 세상이 살고, 교회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오늘날 교회가 무너지기 때문에 레즈비언, 게이, 포스트모더니즘, 종교다원주의 등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하 목사님은 "교회가 새롭게 둑을 세우면 그것은 숫자도 아니고, 제도도 아니다. 중국에 있는 처소교회와 북한에 있는 지하교회처럼 살아있는 교회, 순교하는 교회, 생명을 거는 교회들이 몇 개만이라도 있으면 죄악의 물결을 막을 수 있다"며 "교회는 이 시대의 유일한 희망이고 대안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치적 절망과 경제적 난관, 교육의 부재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대안은 교회뿐이다."라고 역설하셨죠.
하용조 목사님은 또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제도적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그 분이 외롭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것처럼 과연 로마를 변화시켰던 교회의 실체가 존재하는가? 그 모델은 사도행전적 교회입니다."
"어떤 지역에서 목회를 하든,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든, 그것이 캠퍼스건, 노동자의 세계건, 또 선교지건, 시골이건, 도시이건 어디든 간에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교회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가르켜 사도행전적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역사상 실체였습니다."
정말 이런 교회가 예수께서 이땅에 세우신 교회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지난 2004년 교회갱신협의회 제9차 영성수련회 집회에서 전하신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를 토대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지향해야할 '사도행전적 교회'의 특징을 정리했습니다.
1)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교회 (행 2:1~4)
오순절날 성령이 임했던 것처럼, 그런 성령의 역사가 실제로 경험되고, 이야기되고, 그 역사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많이 하면 사람이 보이고,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보인다고 말씀하시는 하 목사님. 그리고 너무 똑똑하면 골치만 아프고, 교회는 똑똑하기보다 성령 충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2) 예수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 (행 2:42~47)
교제하고, 떡을 떼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가진 것을 나누어주고 하는 것을 경험하고 느끼는 그런 공동체, 그런 관계의 형성, 그것이 제자훈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든, 일대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든, 큐티라는 표현을 사용하든 간에 그런 게 중요합니다.
3) 기적을 체험하는 교회 (행 3:1~10)
병든 자가 일어난 것도 기적이지만 예수를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예수 믿는 것도 기적 아닐까요? 교회에는 날마다 이런 기적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세례받는 수가 날마다 더하더라.' 예수 안 믿던 사람이 믿고, 세례 안 받은 사람이 받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변하는 그런 간증들이 매일 있는 것이죠.
4) 고난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 (행 4:1~4)
사도행전의 주제가는 '고난'이며, '흩어지는 것'이죠. 예루살렘교회도 흩어지고 깨졌는데요. 이게 교회라고 하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정면돌파하죠. '고난 중에 성장하는 교회', '고난 중에 성숙해지는 교회', 고난 중에 부흥하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오히려 교회의 최대 위기는 '안정권에 들어섰을 때'라는 말을 명심해야 겠습니다.
5) 소유를 나누어 쓰는 교회 (행 4:32~37)
초대교회가 능력이 있었던 것은 물질의 유혹을 넘어섰기 때문이죠. 우리가 돈에 얼마나 예민한지 세상보다 더 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돈 가지고 사람을 후려치고 조종합니다. 세상에서 먹는 것 가지고 사람 조종하는 게 제일 치사하고, 돈 가지고 사람부리는 것은 웃기는 거죠. 그건 사도행전적 교회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명하고 전통이 있고 멋있어도, 권력다툼이 일어나고 재물의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사도행전적 교회가 아닙니다.
6) 순결과 거룩을 꿈꾸는 교회 (행 5:1~11)
교회의 본질은 거룩이며, 정직이며, 순결입니다. 이런 교회가 사도행전적 교회이고, 그런 교회가 능력이 있죠. 물질을 이길 수 있고 명예와 세상의 권력을 이길 수 있는 그런 힘은 어디서 오는가? 순결의 힘이며, 정직의 힘이죠.
7) 영적 지도자를 세우는 교회 (행 6:1~7)
진정한 사도행전적 교회는 몇몇 사람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을 나누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이 리더십을 나누지 못하는 부분에서 '빨간등'이 켜져 있죠. 그래서 리더십 싸움이 생기고, '목사가 독점하느냐, 장로가 독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 번 잡으면 절대 놓지 않습니다.
8) 이방인을 가슴에 품는 교회 (행 10:17~23)
교회의 본질은 끼리끼리 노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가슴에 품는 것이며, 다른 민족을 가슴에 품는 것입니다. 나와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형제가 되는 것이죠. 진정한 사도행전적 교회는 문화와 언어와 모든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라 할 찌라도 가슴에 껴않고 하나가 되는 교회입니다. 특히 한국교회는 탈북자들을 잘 품어야 합니다.
9)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교회 (행 13:1~3)
사도행전을 끌고 간 것은 안디옥교회로, 바나바와 바울이 첫 선교사로 떠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이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하는 얘기로 꽉 차있다면 우리 교회도 전도 이야기와 선교 이야기로 꽉 차야 합니다. 선교사님이 가고 들어오고, 이야기 듣고, 교인들이 선교에 미치고 하는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적 교회입니다.
10)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는 교회 (행 28:30~31)
바울과 2년 동안 성경 공부했던 사람들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집으로 돌아갔을까요, 아니면 성경공부로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불덩어리'가 되어 어디에 가든지 성령의 역사와 그 기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순교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초대교회요 사도행전적 교회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이 사도행전적 기준에 얼마나 부합되세요? 교회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사도행전적이냐? 두 세 사람이 모였다 할지라도 그것이 시골에 있건 서울에 있건, 선교지에 있건 오지에 있건 간에 우리의 설교와 가르침,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삶과 가치관, 우리 교회 공동체의 목표가 사도행전적 목표와 비슷하다면 그건 사도행전 29장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어떠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