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교에서 눈여겨볼 것은 설교의 탁월함이 아니다. 내가 어느 지점을 넘어서고 있으며 어떤 자리에서 짚고 일어섰는가를 봐 주었으면 한다."(박영선 목사)

한국교회의 대표적 명설교가 중 하나인 박영선 목사 은퇴 기념 논문 증정 예배 및 세미나가 '약함으로 심고 강함으로 살아나리라 -박영선의 설교와 성서학의 대화'를 주제로 14일 오전 서울 남포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많은 교인들과 지인들이 예배당을 가득 메웠다.

행사의 주제는 이날 박 목사에게 증정된 논문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교단을 망라한 16명의 신학자들이 박 목사의 신앙과 삶, 설교를 고찰해 이 논문집에 담았다. 1부 예배에 이어 2부에 진행된 세미나는 바로 이 16개의 논문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먼저 예배는 김정우 교수(총신대)의 사회, 왕대일 교수(감신대)의 기도, 민영진 박사(대한성서공회 전 총무)의 설교, 윤영탁 교수(합동신대 명예교수)의 축사, 이달 교수(한남대)의 축도로 드렸다.

설교한 민영진 박사는 "설교자가 하나님에게서 와야 하는 메시지의 전송이 중단된 상태에서 단에 오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설교가 지닌 모든 문제가 바로 이때부터 생긴다"며 "말씀 전달자가 말씀 생산자·공급자 노릇을 할 때부터 그는 이미 메신저가 아니"라고 했다.

이어 "하나님은 또 메신저가 메시지를 전달받아야 하는 최종 수납자 편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최종 수납자들이 메신저에게 돌아와 메시지를 받아야 할 것을 제시하신다"며 "설교자의 위치가 어디여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런 모범을 실천해 온 분이 바로 박영선 목사님"이라고 했다.

박영선 목사가 참석한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진영 기자
박영선 목사가 참석한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진영 기자

"박영선 목사는 시대를 일깨우는 스승"

이후 세미나에선 박영선 목사의 삶과 목회를 비롯해 믿음론·성령론·기도론, 창세기부터 구약의 예언서, 신약의 복음서와 서신에 이르기까지 그가 했던 설교 등을 본격 탐구했다.

그 중 '구원에서 성화까지, 박영선의 삶과 목회'를 제목으로 발표한 왕대일 교수(감신대)는 "박영선 목사는 신학자다. 신학을 목회로 풀고 목회를 신학의 도구로 삼은 목회자"라며 "박영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으레 설교자다. 하지만 그는 설교자이기 이전에 신학자"라고 했다.

왕 교수는 "그는 설교자에게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신학을 꼽는다. 신학의 깊이와 삶의 폭을 강단의 언어로 조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신학교에서의 신학이 아니다. 목회 현장에서의 신학이다. 교수이기에 감당하는 신학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져야 하는 삶의 책임으로서의 신학"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박영선 목사의 신학은 목회 현장의 신학이다. 그는 성화를 신학자의 서재에서 확인하는 기독교 유산으로만 두지 않는다"며 "그의 성화는 목회자들이 씨름하는 목회 현장에서, 교인들이 땀 흘리는 삶의 자리에서 실천되는 기독교 신앙의 복음이다. 그에게 구원론은 기독교 신앙의 들머리가 되고, 성화는 기독교 신앙의 이정표가 된다"고 역설했다.

왕 교수는 "많은 교회들이 여전히 성장을 원칙과 방향으로 삼으려는 현실에서, 성화를 목회의 본질로 삼자고 부르짖는 그의 사역은 어찌 보면 이질적"이라며 "그러나 성화를 목회의 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성화를 목회 개혁의 이정표로 삼아왔다는 점에서, 박영선 목사는 시대를 일깨우는 스승"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 '박영선의 믿음론'을 제목으로 발표한 이달 교수는 "박영선 목사는 평생에 걸쳐 믿음에 관해 많이 설교했다"며 "그가 믿음에 대해 고민하고 문제를 삼았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교회가 믿음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박영선 목사에게 믿음이란 "하나님이 은혜와 선물로 시작하신 것"으로, "우리는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 하나님의 믿음에 대해 인간의 반응이 당연히 요구된다. 믿음은 두 인격 사이의 관계이며 인격적인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 요체가 돼야 한다. 신자는 세상에 속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무대로 믿음의 싸움을 지속해야 하며, 그 방법은 십자가, 즉 자기 희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그는 믿음의 문제에 관해 성경을 붙들고 치열하게 사고했고, 설교한 대로 살고자 노력했다"며 "그의 설교는 힘이 있고, 성도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역설했다.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가 각각 왕대일·이달 교수. ⓒ김진영 기자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가 각각 왕대일·이달 교수. ⓒ김진영 기자

나의 목회는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이 논문집은 '나의 신학, 설교 그리고 목회'라는 박영선 목사의 글로 끝난다. 박 목사는 이 글에서 "성경을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과, 일하시는 방법의 위대함을 특정한 장면 속에서 확인하는 것"이라며 "어떤 정황에서나 하나님이 무한히 담으시는 가치와 신비를 볼 수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고 있는 청중은 자기 시대와 사회와 개인의 독특성을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 승리라는 보편성 속에 묶어 감사할 수 있다"고 했다.

박 목사는 "나의 목회는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교인들에게 이상을 심어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각자의 선택, 책임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려고 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약자들은 그들을 돌보는 하나님을 자기 편으로 삼아 보복을 원하고,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보상이라는 논리로 자신들이 부를 신앙의 승리로 설명한다"면서 "이런 생각 속에서는 하나님이 의도하시고 약속하신 신앙과 교회의 본질이 외면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영혼의 갈증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라며 "우리는 하나님을 알 때에만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방해하는 현실적 조건이란 없다. 있고 없고, 높고 낮고, 강하고 약하고, 잘나고 못난 것의 구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신앙이 그렇듯 설교도 여정과 같아서 아직도 내 설교를 완성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설교는 그 여정의 대목마다 확인한 증언이라고 할 것"이라며 "그러니 내 설교에서 눈여겨 볼 것은 설교의 탁월함이 아니다. 설교를 보며 내가 어느 지점을 넘어서고 있으며 어떤 자리에서 짚고 일어섰는가를 보아 주었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