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림출판사에서 발행한 현대신학자 평전 시리즈의 <박윤선>을 쓴 김영재입니다.
저도 <목사의 딸>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딸이 사춘기 시절에 어머니를 여의신 불행한 일과, 이어서 형제자매들이 겪은 쓰라린 일들을 열거하는 대목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박윤선의 인품을 여지없이 비판할 뿐 아니라 업적을 폄하하고, 아버지의 신앙과 함께 그분을 낳은, 그분이 몸 바쳐 일한 한국교회의 신앙과 신학이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하는 말을 읽고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말하듯이 독서도 많이 했으며, 고등교육을 받고 건축사의 경력도 가진 지성인이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교양인이십니다. 슬하에 세 자녀를 둔 가정의 주부이실 뿐 아니라 미국에서 신학까지 하여 목회학박사 학위도 얻고 목사 안수까지 받고서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목회하시는 등,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의 인격과 신앙과 신학을 잘못되었다 하면서 매섭게 비판할 수 있는지 의아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어떤 인물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써야 할 경우, 그 사람을 매장하기로 작정을 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익명으로 쓰거나 마지못해 조심스럽게 쓰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아버지를 비판하고 폄하하는 글을 스스럼없이 파상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유물론이 지배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전체주의 사회에서 자녀가 권력의 강압을 의식한 나머지 아버지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고 들어 왔습니다만, 자유를 누리는 정상적인 사회에서 그러는 일은 유례가 없는 줄 압니다. 일제강점기에 처음에는 독립운동을 하던 많은 지도적 인물들이 일제의 탄압에 마침내 굴종하여 변절하고 만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해방이 되자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민족 반역자로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이나 자손들은 그 일을 가슴 아파할 뿐, 그들 중에 자신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다른 사람들처럼 돌을 던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들이 아버지와 일체임을 의식해서이고, 그것이 그들에게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고 의리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잘못을 자기들의 잘못으로 동일시하는 것이 도리이고,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박윤선은 1905년에 출생하셔서 40세가 되기까지 일제강점기에 온 민족의 아픔과 고초를 함께 겪으며 사셨습니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함으로 교회를 탄압하며 신학교를 폐쇄할 때, 박윤선은 다른 교수들처럼 망명의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봉천에서 박형룡 교수와 함께 신학교를 섬길 때 신사참배에 한 번 굴하고는, 사임하고 은둔하면서 주석 쓰는 일에만 매진하셨습니다. 그때 한시적으로 굴종한 사실은 박윤선에게는 늘 마음 아파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연약하여 실족했던 사실을 자녀는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함께 마음 아파해야 할 터인데, 비웃는 조로 말하고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박해 아래 감옥에서 순교하거나 굴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을 우리는 존경합니다만, 그러지 못한 이들을 비웃거나 정죄하는 일은 아무도 감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연약한 죄인이어서, 어느 누구도 박해를 견딜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견디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을 나무라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교회가 신사참배한 사실을 해방 후 공적으로 회개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회개운동은 부분적으로 한국 장로교회가 분열되기 전, 소위 고려측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자신이 먼저 회개함으로써 회개하는 집회를 주도하는 한 분으로 역할을 하셨습니다. 1946년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회개하는 집회에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유년주일학교의 큰 학생들이 어른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은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피하여 다녔으나, 신사참배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여기시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찬송을 부르며 회개할 때, 온 교회가 울음바다가 되었던 일을 저는 종종 떠올립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나는 죄인"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 것은 신사참배를 이기지 못해서였을 뿐 아니라, 그것이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한 사도 바울을 위시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속죄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다 깊이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란 루터가 한 말입니다만, 하나님을 더 알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면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더 의식하게 되고, 그래서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값지고 귀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가 덴버신학교와 교수님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을 가졌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이해하거나 전달하고 적용하는 일을 두고는, "오랜 기독교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의 교회 사역자들"과 한국과 같이 "기독교 역사가 짧은 데다 다종교사회에서 성장해 온 교회 사역자들"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압제와 고난 속에서 자라 왔으며 현재도 북한의 전쟁 도발과 위협 아래 살고 있는 분단국의 교회 목회자"와 "풍요와 자유를 누려온 미국교회의 목회자"가 말씀을 택하여 강조하고 적용하는 일에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흑인 목사들이 선호하는 말씀은 자유와 평등인 줄 압니다.
개혁주의 전통을 이어받고 그것을 표방하는 한국장로교회가, 네덜란드교회를 개혁주의가 잘 발전한 나라 교회라고 하여 그대로 모방하거나 배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1960대 중반의 이야기입니다만, 네덜란드 주민의 50%가 주일예배에 출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곳 교회의 목회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 즉 성화를 주로 설교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다원종교사회에서 아직 기독교인이 소수인 한국교회의 목회자는, 회개하고 주께로 오라는 복음주의적인 설교를 여전히 많이 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개인을 대하여서도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달리 말씀을 선택하고 적용해야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는 가정을 심방할 때 그 가정의 사정을 알고 적절한 말씀을 택하여 권면하거나 위로합니다. 덴버의 교수님들은 소녀 시절부터 안고 있는 저자의 문제를 두고 상담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많이 이야기한 줄 압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유로움을 맛보고 누리게 되었다고 하는 저자의 간증은 귀하고, 그러한 경험은 하나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유는 죄에서의 자유로움이고, 세상의 염려와 근심에서 해방되어 누리는 자유입니다. 저자가 얻어 누리는 자유가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유로움을 얻은 그리스도인은, 마귀와 우상을 섬기며 돈을 사랑하고 육의 정욕을 따라 사는 데서 멀리 벗어나 성령을 좇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사주 보고, 점치고, 날 잡고 하는 옛 풍속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하면, 아직도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유하며 억압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자유로움을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롬 8:38,39)"을 확신하는 가운데 누리는 자유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온갖 핍박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전도자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루터 역시 교황에게 출교를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회를 개혁하고 복음을 드러내는 일에 충실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지체 높은 사람이나 그 무슨 권세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돈의 유혹과 세력에도 초연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모든 것에 당당해질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전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 하면 신학을 한 사람들에게는 낯익은 제목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먼저 설교하고 발표한 글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거기서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물 위에 있는 자유로운 주인이며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사에 섬길 자세를 갖춘, 각 사람에게 예속된 종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물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을 받지 않는 자유인이면서, 동시에 누구에게나 봉사해야 하는 모든 사람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첫 문장은 갈라디아서 5장 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를 해석한 말씀이고, 두 번째 문장은 5장 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는 말씀을 다시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은 종의 자세로 형제를, 즉 만인을 섬기는 자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 7장을 보면 성경은 "우리가 죄의 종에서 해방되었으니 이젠 자유인이다.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자"고 말씀하지 않고,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8)" 하는 말씀처럼 시종일관 의의 종이라면서 섬기는 삶을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고 말씀합니다.
그는 고린도후서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이는 우리가 다 익히 아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어서 직분을 맡은 자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 산다는 것을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된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한다"는 것은 우리 목회자들이 흔히 간과하는 말씀입니다.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마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9)" 하고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후 4:12)"고 말씀을 합니다. 말씀의 사역자인 바울은 종으로서 교회를 위하여,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향유하도록 하기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종으로 섬긴다고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쉬라고 하시지 않고, 계속 새롭게 져야 할 멍에를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옳게 이해하고 한 것인 줄 압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향유하는 당연한 자유와 권리를, 형제와 이웃을 위하여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죄의 종으로 살지 않고 의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고기를 먹는 문제를 두고 바울은 먹을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가졌으나 자기가 고기를 먹음으로 약한 형제가 시험에 들게 된다면, 자기는 고기를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고전 8:13, 롬 14:13-23).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유를 누린다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은 섬기는 자유, 남을 배려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취약했던 부분을 폭로할 뿐 아니라, 그분을 낳고 그분이 섬기던 교회와 그분에게서 배운 많은 목회자들을 존중하지 않고 근심하게 하는 것은, 섬기는 종으로서 누리는 자유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무용론을 말하는 안티노미안들이 말하는 자유보다 훨씬 위험한 사상이요 자세입니다. 그것은 남을 배려하고 남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라는 성경이 가르치는 자유가 아니고, 방종입니다. 언론의 자유를 빙자하여 특종 기사에 혈안이 되어 사회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을 개의치 않거나, 진실을 말한다면서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고, 한 사람의 생명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이기적이고 몰지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는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는 자유입니다.
딸의 아버지 박윤선은 태생적으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나머지 그 밖의 것은 잊어버리기가 일쑤인 분임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열정과 믿음을 가지셔서, 맡은 사역을 위하여 전력으로 질주하신 분입니다. 역사는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 점에서 박윤선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러 세우신 분입니다. 종으로서의 자유를 향유하기 위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안녕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자녀들과 즐길 수 있는 욕구와 당연한 권리와 자유를 희생하고 죽기살기로 기도하시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교회의 종으로 섬기는 삶을 사신 것입니다. 그렇게 사신 분을 두고 율법주의에 얽매여 있었다거나 아직 자유로움을 몰랐다고 평가하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오해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무엇인지 온전히 알지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오랜 유교적인 전통 문화에서 살아왔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유교적인 전통과 가르침을 부정하거나 배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기독교와 상통하는 윤리적인 가르침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존해야 합니다. 교회에 권위주의 혹은 교권주의가 팽배한 것을 반드시 유교적인 영향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중세의 긴 세월을 지나면서 교권주의로 굳어졌습니다. 샤머니즘과 같은 민속신앙이나 우상을 섬기려는 경향은, 우리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본능적인 종교심입니다. 구약의 선지자의 외침은, 그런 신앙에서 창조주요 구원의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역사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개혁교회와 전통을 존중하고 그것을 가르치신 박윤선 목사님을 두고 유교적인 권위주의와 샤머니즘을 못 벗어났느니 하고 말하는 것은, 어이가 없는 오해요 단죄입니다. 스스로 복음주의 신학자라는 분들이, 아버지의 가정생활에 대한 딸의 이야기를 동정한 나머지, 구체적인 논증도 없는 오해에서 비롯된 신학적인 편견까지 그대로 받아들여, 보수주의와 율법주의 혹은 샤머니즘적인 것을 동일시하며, 박윤선이 한국 보수주의 교회로 하여금 그런 신앙을 갖게 했다는 점에 동의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위대한 신학자임을 인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신학자라는 사람이 교회를 섬기지 않고 교회를 방관하거나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그냥 학자일 수는 있어도 신학자일 수는 없습니다.
박윤선은 성경 말씀에 충실하기 위하여 평생을 바쳐 성경을 주석했고, 많은 목회자들에게 계시의 말씀인 성경 말씀에 충실한 설교를 하도록 가르치고 열정을 불어넣으며 자료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한국교회에 개혁신학과 전통의 기초를 놓았으며, 교회 쇄신을 주창하고 실천한 개혁주의 신학자입니다.
박윤선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유익을 얻은, 한국교회에 속한 지체의 한 사람으로,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그 때문에 아버지와 정겨운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희생이 되신 자녀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아울러 감사의 마음을 가집니다. 저자인 딸은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므로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셨으며, 아버지가 보다 완벽한 분이기를 소원하는 마음에서 아버지의 신학마저 왜곡되게 이해하시는 줄 압니다. 공인으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신 분들과 순교자의 자녀들 중에는 불만과 소외감을 가지는 이들이 많았으나, 나중에 그들이 장성하여서는 사생활을 희생하신 아버지를 이해하고 돌아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딸의 아버지 박윤선의 뜻과는 다르게 살아온 자녀분들도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와 눈물로 화해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이미 성경 말씀을 통하여 자유로움을 얻은 따님께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자유의 의미를 더 터득하셔서 아버지 박윤선을 옳게 이해하는 자유로움의 경지에 이르시기를 빌며, 아버지를 낳으시고, 아버지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종의 사역을 감당하고자 하는 후배들을 낳은 한국교회,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신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시고 종으로 섬기신 한국교회와 부족한 우리 모두를 귀하게 보아 주시고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간절히 소원합니다.
김영재 교수(합신대 은퇴교수, 기독교학술원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