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장로교회 담임 한병철 목사
(Photo : ) 중앙장로교회 담임 한병철 목사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할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대해 오히려 향수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어느 연구조사에 따르면 독일군의 공습 때 살아남은 런던 시민의 60%가 이제는 그 시절을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의 공동체 의식과 애국심이 폭탄과 V-2 로켓의 공포까지 몰아낼 정도로 강했던 것입니다. 한국의 노인들은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이야기를 하고, 미국의 노인들은 2차 대전과 대공황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 고생스러웠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노인들의 모습에는 짙은 그리움이 배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부부들이 과거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폭풍우 속을 함께 견뎌온 시간들이 그들 부부들을 지탱해준 원동력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위기 없는 결혼 생활은 없습니다. 아름다운 부부는 이런 순간을 견뎌내지만 약한 부부는 갈라섭니다. 폭풍우를 함께 달릴 때만 깊은 관계를 얻을 수 있고, 한계점에 이르러서도 끊어지지 않았을 때 비로소 강한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불가사의한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리아 산을 오르는 아브라함,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려운 피부를 기왓장으로 긁어대는 욥, 광야를 헤매는 엘리야, 딴 일을 달라고 애원하는 모세 등 이들 영웅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싶은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그들은 이를 갈며 등을 돌릴 것인가, 아니면 믿음으로 한 발짝 내딛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섰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다행히도 믿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이 믿음의 거인으로 기억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순간에도 믿음을 굳게 붙잡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진정한 강함은 바로 이런 시험을 통해서만 생기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오래 살면 지나온 삶이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역사도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모든 상처와 실망이 영원한 사랑과 신뢰 속에서는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10년 전에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10년 후를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한다고 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고통스럽고 낙심될 일들이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귀결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의 위기와 고통에 짓눌려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믿음의 길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고통과 시련이 나를 강하게 만들고, 지금의 위기가 깊은 관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오래지 않아서 확인하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