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복지사 김해영 씨. ⓒ신태진 기자
(Photo : ) 국제사회복지사 김해영 씨. ⓒ신태진 기자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숨지 마, 네 인생이잖아」의 저자 김해영 국제사회복지사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해영 씨는 아프리카 보츠와나 '굿 호프' 직업학교에서의 삶과, 인생의 고난 가운데 끊임없이 도전하며 얻은 값진 깨달음을 담담하게 전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말로 다 표현 못할 고통을 겪어야 했다. 첫째인 그녀가 딸이었다는 이유로, 태어난 지 3일 만에 아버지가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척추가 손상돼, 키는 134cm밖에 못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한 달 만에 아내와 다섯 남매를 남겨두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가 남긴 것은 '7만2천원'이 전부였다.

"쓸데없는 가시나, 너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이야". 정신질환을 앓던 어머니는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이유 없이 그녀를 때렸고, 그녀의 온몸은 멍투성이가 됐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지 6개월 후, 그녀는 칼을 들고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어머니를 피해 가출했다. 월급 3만원의 가사도우미가 그녀의 첫 직업이었다.

그녀는 전문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하고 기계편물 기능사 3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직업학교의 최영숙 선생은 그녀를 장애인 소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따뜻하게 대해줬다. 그녀는 크리스천인 최영숙 선생의 격려로 기독교 신앙을 시작하게 됐다.

김해영 씨는 1985년 10월, 콜롬비아에서 열린, 제2회 세계장애인기능올림픽에 참가해서 금메달을 땄다.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도 합격했고, 산업훈장도 받았다. 사회에서 대접받는 기술자가 됐고, 어머니와 동생들도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대학입시도 잘 준비되고 있었다. 이전 어느 때보다도 그녀의 삶은 가장 빛났다.

그런데 이 시기, 김해영 씨는 한 기독교 잡지에 실린 거창고등학교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굿 호프' 직업학교에 편물 교사로 지원하게 된다. <거창고교의 직업학교 십계명>을 보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살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김해영의 인생을 바꾼 거창고교의 십계명은 다음과 같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 2.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 3.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 4.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 5.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 6.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 7.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 8.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 9.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 10.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김해영 씨는 이 길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의 '굿 호프' 직업학교는 보츠나와 그루터기 선교부가 세운 직업학교다. 김해영 씨는 이곳에서 일하면서도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애착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고, 교장에 임명되어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그녀는 미국 나약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학사·석사 과정을 마쳤고, 현재는 국제사회복지 전문가로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마음의 키는 기린보다도 더 크다. ⓒ신태진 기자
(Photo : ) 그녀의 마음의 키는 기린보다도 더 크다. ⓒ신태진 기자

그녀는 인터뷰에서 "인생에 닥친 고난은 하나님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려고 마련해 놓은 선물이며, 인생의 결핍은 하나님을 잊지 말고 살라는 숨은 메시지"라고 전했다. 다음은 김해영 씨와의 일문일답.

-'배움의 삶'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살아간다고 한다면 인간과 동·식물은 큰 차이가 없다. 인간은 살아가되 배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불행'은 사람을 강력하게 만드는 인생의 자산이라고 이해한다. 모든 삶의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달으려고 노력했다. 하루하루에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깨달아가는 것은 그저 교실에서 배우는 세계와는 다른 것이다. 고난과 어려움, 행복 그 모든 삶 속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과정이 인생이다."

-한국의 교육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선 교육에 대한 인식이 수동적이다. 교육을 학교나 선생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스스로 자신을 가르쳐나가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또 정형화된 교육시스템 속에서 학생들의 사고가 획일화되어 있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인정이 안 된다. 당연히 창의력과 현실 적응력이 떨어진다. 학생들도 뭔가 신선한 질문을 안 한다. 또 자기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자연히 학생들의 자존감도 매우 낮아지게 된다."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 사회복지사들의 자살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는가.

"사회적 인식이 삶의 소중함과 인격적인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어떤 틀을 만들고 거기에 끼워넣는다. 역사 가운데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것이다. 성별, 인종, 학교, 재산 등 틀을 제거하면 당연히 자살은 줄어들게 되어있다. 여러 틀을 제거한 본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울대생도 대기업 사원도 스스로 죽는 것이다. 잘하는 90%가 있는데, 여러 틀 때문에 10%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자존감이 낮은 생각을 하게 하는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통적인 학교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교육시스템의 부정적 영향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이다.

사회복지사가 자살하는 것은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는 다른 이를 대변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인데, 자기도 스스로 돕지 못한다면 자격이 없는 것이다."

-장애인과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

"뉴욕에서 8년을 살았다. 뉴욕은 인간에 대한 문화적 척도가 날카롭고 상당히 발전되어 있다. 뉴욕에 있다가 한국에 왔는데, 문화적 의식이 20년 정도 뒤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프리카나 미국에서는 내가 키가 작고 장애인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대접을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냥 김해영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자꾸 이상하게 대한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인사도 안 하고 지나간다. 그러다가 내가 교장이고 컬럼비아 출신인 것을 알면 대접이 달라진다.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상대를 보는 위치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 그냥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물론 영향이 있지만 전체는 아니다. 저 사람이 나를 특별히 이상하게 여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편견에서 벗어나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생이 잘 풀리던 때에, 어떻게 자신을 비우고 아프리카로 떠날 수 있었나.

"표면적으로는 헌신이나 희생으로 보이지만, 나는 이러한 용어들을 쓰지 않는다. 나는 이전 경력을 포기한 적이 없다. 더 나은 장으로 가져간 것 뿐이다. 헌신이나 희생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었다. 내가 그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깨달음과 행복이 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교장도 됐고,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초도 놓였다. 그 일로 훈장까지도 받게 됐다. 내가 만약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일을 했다면 하나도 못 땄을 것이다. 단지 내 작품이 마음에 들 때까지 만들었기 때문에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모두가 떠나고 아프리카에 홀로 남았을 때에도 기쁘게 일했다. 누가 대학도 안 나온 28살 여자한테 학교 운영을 맡기는가. 그 자리에서 더 많이 배우고 성숙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결과부터 이야기하고 과정을 끼워넣는데, 과정이 진행되다 보니까 결과가 생긴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하루를 마치며 최상의 만족감을 느낀다."

-한국교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너무 형식에 치우치면 내용이 허술해지는데, 그때 교회가 욕을 먹는 것이다. 옷차림새가 사람의 본질은 아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이 취하지 않는 내용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교회의 옷도 있고, 세상의 옷도 있고, 어정쩡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러든지 저러든지 해야 한다. 교회가 힘이 있으려면 언행과 삶이 일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