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50 대 남성입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즐겨 듣는 한국어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출근 시간과 딱 맞추어 틀면,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 분께서는 보통 목사님들이 말하지 않는 부분들을 말씀해 주셔서, 듣는 저로 하여금 마음을 후련하게 해 줄 때가 있었습니다. 기존 교회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라, 시간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은근히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자신은 헌금을 걷지 않는 교회를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저는 그 말에 솔직히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정말 다른 목사님들과 다르시네… 그런 교회 나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정말 그 분이 그런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헌금을 걷지 않는 교회가 가능할까? 젊으신 분 같은데, 이 분이야말로 헌금이나 물질에 초월하신 분인가?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유 목사님 생각은 어떠세요?

A: 며칠 전 어느 모임에 초대 받았습니다. 기독교 모임이 아니었기에, 저희들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목사로서 그런 자리는 결코 자주 오는 찬스는 아닙니다. 식사도 즐겁고 이어지는 프로그램도 즐거웠습니다. 그 중에 저의 소개를 하게 되었는데, 상담하는 목사라고 하니까 궁금했던 참에 물어 보셨던 것 같습니다. 슬쩍 지나가는 한 마디였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물질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물질의 위력은 참으로 대답합니다. 세상적인 말로 우리가 잘 산다는 개념 속에는 돈이 많다는 것으로 거의 정의를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정확한 말은 될 수 없습니다. 몇몇 소수의 무리를 제외하고는 이민자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바입니다. 시간당 계산되는 미국 생활은 한 시간이라도 더 일을 할 수 밖에 없도록 우리를 유도합니다.

시간을 따져가며 버는 물질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어쩔 때는 십일조 헌금이 부담스러워 울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이민자들의 삶 속에서 이 지역에 헌금을 걷지 않는 교회가 생긴다니 얼마나 귀가 솔깃한 이야기겠습니까? 하지만, 참으로 위험천만한 말씀을 그 목사님께서는 하십니다.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분의 신학과 삶의 배경과 사상이 어떤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말씀 한 마디에는 많은 위험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 분이 알든지 모르든지… 헌금에 관하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부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난해서 그러셨겠습니까? 하나님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헌금으로 인하여 세상의 질서를 잡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헌금 중에 십일조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보면,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게 받으셨는지 말씀에 기록되어 믿는 모든 자에게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누가 복음 21: 1-4) 또 사도 행전 2: 44, 45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나눔으로써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었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숫자가 더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헌금을 통해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역의 일부분입니다. 더 예를 들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12 지파에게 각각 기업을 분배하게 되었는데, 레위 지파는 여호와께 봉헌된 자로 택정되었습니다. (민수기 3: 12-13, 41, 45) 그러므로, 그들은 곡물과 가축의 십일조를 그 대신 기업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레위기 27: 30-33)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이렇게 살도록 하나님게서 정해 좋으신 것입니다.

한편, 신약의 바울 사도는 장막을 만들면서 사역했던 사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 속에 살다가 중간에 하나님께서 택한 사도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바울이 장막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을지라도, 그 수입원으로만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사람들의 헌물로 인하여 그의 사역이 넓혀져 가는 것을 신약 성경의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헌금을 걷지 않는 교회를 만든다’는 그 이야기는 성경과는 무관한 교회의 모형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힘든 이민자들의 마음을 이해해서 돈을 아껴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겠지만, 하나님 중심의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통해서 성도님들이 받을 축복이 차단된다면 어떻게 이것을 책임지겠습니까? 그 분이 과연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대신 책임질 수 있단 말입니까? 헌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의 일부분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믿는 자로서의 지켜야 할 도리인 것입니다. 세상의 달콤한 소리에 귀 기울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는 건강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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