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특강을 TV를 통해 시청했습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뜨고 있다는 유명 교육학 강사의 강의였습니다. 강사는 ‘보는 것이 마음의 크기를 결정한다’라는 주제로 열강을 토해냈습니다. 그의 강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인생의 크기는 마음의 크기와 비례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크게 만드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마음을 크게 만드는 방법은 큰 것을 보게 만들면 된다. 당신의 자녀들에게 큰 것을 보여주라. 그들의 미래 활동반경을 좁은 땅 한국으로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할 수 있는한 세계가 넓음을 인식시키라. 가능하면 어릴 때부터 세계를 돌아보게 만들라. 여건상 그것이 어렵다면 세계지도라도 늘 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라. 좁은 동네를 보며 성장하는 사람과 세계를 보며 성장하는 사람은 생의 결과가 그 차원을 달리할 수 밖에 없다.” 의미있는 말이라 생각되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인식론 심리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통해 동일한 답을 얻습니다. 사물의 존재여부는 인식의 여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존재하는 사물이 있었다할지라도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인식되어지면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식은 보게 될 때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치는 보이는 곳까지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사실은 생각을 통해 인식한 것을 데이터화 함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이유로 무엇을 보느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속사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면서 그들의 활동반경을 가나안땅으로 제한시키지는 않았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록 생활의 본거지가 가나안땅이었지만 그들을 당시 세계문명의 중심지였던 이집트로 끌어들이기도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430년간 거주하게 하시면서 선진의 문명을 접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세계열강의 강한 도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바벨론, 앗시리아, 페르시야, 마게도니아, 로마제국들의 침략과 포로생활로 이어지는 숱한 곤경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깊이 묵상해 보면 그것은 큰 것을 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커다란 배려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받음은 세계와 역사를 위한 선택이었기에 좁은 마음이 아닌 큰 마음의 소유가 전제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큰 마음을 유지하려면 크고 넓은 곳을 볼 수 있어야만 했었습니다.
현대를 일컬어 기술의 폭발적 향상시대라고 합니다. 과거 100년에 걸쳐 일어났음직한 기술향상이 요즘은 몇개월 단위로 만들어집니다. 이런 배후에는 인터넷과 무선전화의 보급이 큰몫을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실시간으로 세계를 조명해 볼 수 있는 인터넷과 무선전화는 인식의 한계를 넓히는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식의 범위가 넓어지니까 폭발적인 기술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보는 것이 마음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가설이 정설이 될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내용입니다. 그렇기에 크고 넓은 것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생존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예수 믿는 신앙인들에게는 생존은 보장되었음을 확신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이 생존이 아닌 사명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꾸 먹고 사는 것에 관련된 생존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우리의 마음이 너무도 좁아지게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마음이 좁아지니까 하나님의 뜻까지도 놓쳐버리는 실수를 범할 수 있겠다라는 우려의 마음도 생깁니다.
이번 주는 마음을 좀더 넓히고자 하는 취지로 지구본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 사무실 책상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세계 각 나라가 담겨진 지구본을 보면서 “세계는 넓다. 그리고 할일은 많다”라고 외쳐보았습니다. 매일 생존의 문제에만 사로잡혀 정작 바라보아야 할 사명은 도외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라는 복잡한 생각에서 그리 해 본 것입니다. 넓은 마음의 소유자가 되길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