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기독교 수도원 운동의 기원은 이집트의 안토니(Anthony)를 말하게 됩니다. 수도원 생활의 근본적인 원리를 영적인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예수님 당시에도 팔레스타인에는 광야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공동체인 쿰란 공동체 엣세네파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세속화되고 타락해가는 것에 반하여 경건을 추구하는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안토니는 성경의 재물이 많으므로 주님을 따르지 못했던 부자 청년에 대한 기록을 통해 크게 도전을 받고 285년경 그의 부유한 모든 생활을 저버리고 광야로 나아가 극기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는 하루에 빵, 소금 그리고 물로 한끼를 먹고, 잠은 조금만 자며, 많은 시간을 기도 생활로 보냈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생활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그와 같이 살려는 이들이 광야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그 후 4세기에는 이미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정해진 규칙없이 진행되던 공동체가 군인 출신의 파코미우스(Pachomius) 라는 이름의 인물이 이집트에서 나타난 후 이때부터 수도원에 모이는 사람들이 확실히 정해진 규칙 아래서 공동의 수도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곳의 수도원 등 중에는 여성들을 위한 수도원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이런 운동과 비슷한 시기에 팔레스타인 지역과 시리아에서도 금욕적인 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중 기둥성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시몬 스타일라이트 (Simeon Stylite) 는 높은 기둥 위에 올라가 수 년 동안을 살기도 했습니다.

4세기에 지금의 터어키 땅인 소아시아반도의 내륙인 갑바도기아지방의 도시 가이사랴의 바실(Basil of Caesarea in Cappadocia)은 당시 유명한 그리스의 아덴 대학교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자신의 생애를 헌신하고자 결심한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이리스(Iris)의 아름다운 강변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바실은 수도원 생활의 관리와 신학적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는데, 그의 수도 생활에 관한 저서들은 수도원 생활의 조직, 관리, 그리고 원리에 대해서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Eusebius Hieronymus)라고도 불리는 제롬(Jerome)은 수리아지방의 광야에서 은둔생활을 하다가 후에 베들레헴에 수도원들을 설립하고 수도원에 머물면서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성경과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벌게이트(the Vulgate version) 역본입니다. 지금의 프랑스인 유럽의 고올(Gaul)에서도 이 당시 수도원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5세기가 될 무렵에는 고올의 남쪽 해안 지방에 수많은 수도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 그리고 당시 많은 수도원을 설립한 요한 캐씨안(John Cassian)은 이집트의 수도원을 여러 번 방문한 후 발간한 수도원 생활의 교육 지침서로 알려진 그의 책은 서구에서 널리 읽혀지며 중세까지 큰 영향을 끼치는 책이 되었습니다.

이런 기독교 초기의 수도원 운동은 교회가 세속화되며 영적인 활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에 영적인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으며, 제롬이나 어거스틴과 같은 학자들을 배출하는 학문적인 연구의 중심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퍼져나간 수도원 운동은 선교적인 사명도 감당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