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역사를 잡초로 비유하면 과한 것일까. 밟고 또 밟아도 죽기는 커녕 더욱 번져버리는 잡초처럼 핍박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부흥하고 번성하는 기독교, 그 오묘한 역설의 현실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 역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난 10일 우연히 만나게 된 C국 P선교사(뉴비전교회 파송선교사(구 산호세제일침례교회))도 “죽어야 산다”는 선교사의 역설적인 진리를 강조하고 있었다.

손꼽히는 기독교 박해국인 C국 선교만 16년째인 그는 핍박으로 총 22번을 이사하고 체포 당한 기억만도 셀수 없이 많지만 스스로를 “하나님의 ‘꿈꾸는 자’” 라고 자랑스레 소개했다. 짙은 눈썹과 깊은 눈매를 가져 언뜻 보기에도 ‘야심가’인 P선교사. 핍박 속에도 멋진 선교 열매를 맺은 그의 선교비결을 들어봤다.

P선교사는 C국이 이 시대 마지막 선교의 바톤을 이어 무슬림을 전도할 사명을 가진 나라라고 확신한다. 이것이 그가 16년 핍박 속에서도 사명을 놓칠 수 없었던 이유이자 ‘비전’이다.

1970년대 문화혁명, 극심한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면서부터 알 수 없는 부흥을 경험하고 있는 C국. P선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C국은 하나님의 강권적 성령의 역사하심과 폭발적 부흥으로 매주일 각 교회에 새롭게 오는 성도만 1백여명이 넘고 예배 1시간 전에 가지 않으면 예배당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P선교사는 “지난 2천년 동안 각 시대별로 하나님이 쓰시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들의 특징은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교회가 부흥되고 헌신자와 사명자, 순교자가 나오기 시작하며, 회개운동이 일어난다는 것 등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C국이다”고 했다. 또 그는 “C국 만의 끈질긴 민족성이 무슬림 전도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무슬림 전도의 소망도 내비쳤다. 이것이 바로 그가 지난 16년 핍박을 이기고 선교에 전념할 수 있었던 비전이자 원동력이다.

모든 하나님의 역사가 그러하듯 P선교사의 처음 역시 미약했다. 처음에는 농촌사역으로 시작했다. 그 다음은 도시선교, 현재는 캠퍼스 내 ‘지도자 양육’ 선교를 하고 있다. 그는 현재까지 소수민족 사역, 공장 사역(노동자 대상), 목회자 연장교육, 장년주일학교 교사양육, 신학대학원 개설 등 다양한 사역을 진행했으며 현재는 권력계층, 부유계층, 지식계층, 교회지도자계층을 공략해 때때마다 교수의 모습, NGO의 모습, 목회자의 모습으로 선교를 진행하고 있다.

P선교사는 제자훈련을 통해 18명의 제자를 양육했으며 현재까지 총 13명의 대형교회 목회자를 배출하는 뿌듯한 결실도 맺었다. 이뿐 아니라 중국 내 신학과 대학원 과정을 최초로 개설, 현재 34명의 목회자가 신학과정을 통해 꿈을 키워가고 있으며, 미국과의 교류도 활발히 진행해 미국 현지 교수들만 70%로 구성돼 있다.

지난 16년은 말 그대로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핍박 속에서 더욱 번성하는 선교역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비전’, 그리고 “죽어야 산다”는 그의 선교철학 때문이었다.

“선교사는 민족을 향해서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그 선교지가 살아납니다. 내 인생이 죽어야 하고 내 자아가 죽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내가 죽어져야 선교를 살릴 수 있습니다.”

P선교사는 선교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고 묻는 기자에게 “선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에 내가 있는 것, 그 곳에서 쓰임받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선교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P선교사가 말하는 “죽어야 산다”는 선교철학을 듣는 순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는 사도 바울의 진한 고백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