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미국 가톨릭주교회의(USCCB)가 추진 중인 성추문 방지대책 투표를 연기하도록 지시했다고 USCCB 의장 다니엘 디나르도(Daniel DiNardo) 추기경이 12일(이하 현지시간) 밝혔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에 따르면, 디나르도 추기경은 이날 미국 볼티모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지난 11일 이같이 통보받았으며 교황청의 지시에 실망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황청의 주장에 따라 성추문 위기와 관련된 2가지 행동 방안에 대해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성추문 방지대책을 만들어 행동에 돌입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허사가 됐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이번 주 열린 USCCB에서 제시된 대책안은 교황청이 반대하거나 수정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도록 지난달 30일 최종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논의된 대책 가운데 성추문이 발생했거나 성추문 행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경우 주교회의에 긴급전화를 거는 방안을 비롯해 성추문으로 사임하거나 현직에서 배제된 주교들을 대상으로 한 행동 규범 등이 담겨 있다.
교황청이 투표 연기를 주문함에 따라 이번 주에는 투표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USCCB는 교황청의 결정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최근 카톨릭교회는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걸쳐 아동 성학대 문제가 불거지면서 홍역을 앓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펜실베이니아 대배심이 1,30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가톨릭 내부에서 아동들을 상대로 한 성추문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을 담고 있었다. 지난 수 십년 간 약 301명의 사제들이 1,000명이 넘는 아동들을 성적으로 학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조쉬 사프리오 주 검찰은 "사제들이 어린 소년, 소녀들을 강간했다. 그리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들은 모든 것을 숨겼다"고 말했다.
이같은 보고서는 워싱턴D.C 대주교인 시어도어 맥캐릭(Theodore McCarrick) 추기경이 아동 성학대에 관여했다는 '신뢰할 만하고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나오면서 직위를 상실한 지 몇 주 만에 나왔다.
디나르도 추기경은 이날 자리에서 성적으로 학대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여러분들의 필요에 깨어있지 못하고, 민감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 내가 실패한 부분에 있어서 깊이 사죄한다. 우리 구주의 말씀은 매우 분명하다. '너희에게 말한 것을 모두에게 말한다. 보아라!' 우리의 약함 속에 우리는 잠들어 있었다. 지금 우리는 철야를 앞두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