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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남편이 13년전 처음 교회에 나와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 같고 또 요즘 사업이 힘들다 보니 사람은 자기 운명대로 살아가게 되어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운명을 이미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자신의 열심이나 믿음과는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중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느닷없이 사백 년 동안 종살이를 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 하는 것도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것도 미리 다 정하신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다 정해진 것이라고 하는 데요. 성경대로 보면 우리의 인생이 다 정해졌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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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wer


1. 운명론과 자유의지론 어떤 사람은 신의 예정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인간의 모든 운명이 신(또는 사주팔자)에 의해 모두 예정되었고, 인간은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의하면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는 기계처럼 정해진 운명에 순응해 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사람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운명은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인간은 개인의 선택에 따라서 자신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이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2.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경적인 입장


1) 운명론은 성경적인가? 성경은 운명론을 지지하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성경은 운명론을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운명론자들은 인간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고, 인간은 그 운명을 거부하지 못하고 순응해야만 하는 기계적(수동적)인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운명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책임은 자유가 있을 때에 요구되는 것인데, 인간이 자유가 없다면 그 행위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은 존재에게 그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뜻을 따른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으며, 그 행위를 좆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자유의지론은 성경적인가?  그러면 자유의지론은 성경적일까요? 성경은 인간에게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자유 의지가 주어져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그 형상 안에는 자유의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기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좆는 존재가 아니며, 스스로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좆아 선악과를 먹지 않을 수도 있었고,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것을 먹을 수도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 의지는 하나님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은 제한적인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는 요소들 그러면 인간은 어떤 점에서 자유의지를 제한받고 있을까요? 제 생각에 인간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에 의해서 자유 의지를 제한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 자연법칙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그 만물이 존재할 수 있는 법칙(자연법칙)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만물은 이러한 자연 법칙을 따라서 운행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동시에 육신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역시 자연법칙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다고해서 15층 건물에서 뛰어 내리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그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거나 그 자리에서 죽게될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처럼 만유인력의 법칙에 적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법칙을 따라서 자신의 자유 의지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더 큰 재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전혀 다른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으셨고 도한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자연법칙을 넘어선 창조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에수님처럼 자연법칙을 벗어나서 마음대로 자유 의지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나. 양심 인간은 다른 만물과 다른 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만물과 다른 차원의 삶을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각자 하나님 안에서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마음 안에 양심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양심"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이웃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서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해줍니다 이러한 양심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제한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양심은 거짓말이나, 간음, 또는 살인을 행할 때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외칩니다. 우리의 양심은 우리가 자유 의지를 잘못 사용하지 않도록 제어합니다. 우리가 양심의 법칙을 좆아서 자유 의지를 행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평안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 양심은 우리가 선을 행하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양심은 우리가 선을 행하면 "참 잘했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양심을 어기고 악한 일을 하게되면 양심의 책망을 받습니다. 양심은 우리의 자유 의지가 남용되거나 오용되는 것을 막고,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도록 격려합니다. 우리 자유 의지는 이러한 양심의 법칙을 벗어나면 크게 고통을 받게 되고, 우리가 양심의 법칙을 좇아 행하면 그는 평화롭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다. 십계명과 율법  그러나 우리 양심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손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양심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무뎌졌고, 환경과 문화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보편적인 양심의 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계명과 율법입니다. 십계명과 율법은 부분적으로 무뎌지고 손상된 양심의 법을 완전하게 회복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우리가 인간답게 사는 길,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평화롭게 사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율법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십계명의 원리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십계명과 율법은 우리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어떻게 사용할 때에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유 의지가 율법의 법칙을 좆아 행할 때에 우리는 가장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라.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지만, 한 편으로 인간은 일정한 부분에서 역사를 섭리하고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섭리를 이루기 위해서 거대한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계획하고 그 뜻을 따라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거대한 강줄기를 바다로 이끄는 댐처럼, 도한 인간 역사를 자기 뜻에만 맞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미래 역사에 대해서 미리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단과 반역과 인간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주관과 섭리 안에서 살아가야 하며, 절대적인 자유 의지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간을 기계처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유 의지가 가장 바람직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 노력 100%와 하나님의 섭리 100%가 합쳐서 이루어진다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3. 복음과 성령은 운명론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1) 복음은 우리를 운명론의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우리의 자유 의지는 죄의 오염으로 인해 많이 부패해졌습니다. 우리가 율법의 법칙을 어기고, 자유 의지를 마음대로 오용하고 남용하면, 우리는 큰 재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의 법칙을 어기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살인이나 간음을 하면 우리는 심각한 보복이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 의지는 이미 크게 부패해졌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우리 의지는 선을 행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의를 행하기를 원하지만 우리 의지는 악을 행합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우리 의지는 미워하고 다툽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기를 원하지만 우리 의지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아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의가 없는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운명론은 우리가 조상의 죄로 인해 멸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죄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말합니다. 운명론은 우리 운명이 정해져 있으며, 우리는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우리의 운명을 극복할 수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패된 자유의지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2) 성령은 우리가 우리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부패해진 자유 의지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을 좆아 행하면 우리 의지는 선하고 올바르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좆아가면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온갖 하나님의 모습을 열매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운명론은 우리가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따라서 하나님과 같은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운명론은 우리에게 패배감과 정죄감을 줍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줍니다. 운명론은 우리를 기계처럼 만들지만,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적극적으로 고난을 받는 상속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운명론은 우리를 체념케 하지만, 성령님은 우리를 역사의 개혁자와 선구자가 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운명의 저주를 이미 벗어나서 성령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사는 새 역사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문화가 변하고, 가난이 벗겨지면 도움을 받던 나라가 남을 돕는 나라가 되고, 남에게 끌려 가던 나라가 남을 이끄는 나라로 변합니다. 이 일은 우리 나라를 보면 싑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수 쳔년 동안 남의 지배를 받고 수동적으로 끌려 갔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우리 나라는 세계 문화 변화의 주역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나라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살려고 하면 실패와 좌절감만 느끼게 되고,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기 시작하면, 우리는 즉시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출처:www.biblenar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