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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권의 복음서가 있는 것은 초대교회 때부터 고민거리였습니다. 왜 복음서가 네 권이 있어야 하는가? 그래서 초대교회의 어떤 목사님, 어떤 신학자는 복음서가 네 권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땅에 보면 동서남북 네 방향이 있지요. 또 하늘에 보면 요한계시록에 네 생물이 나옵니다. 사자, 사람, 소, 독수리 이렇게 네 생물이 나옵니다. 땅에도 네 개의 방향이 있고 하늘에도 네 생물이 있으니까 당연히 복음서는 네 권이 있어야 된다.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때 일어난 어떤 이단들, 그러니까 왜 복음서가 다섯 권이면 안되냐? 여섯 권이면 안 되냐? 하는 이단들을 막아주는데 굉장히 좋은 도움을 줬지요. 그런데 이렇게 복음서가 네 권이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불편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 네 권의 복음서를 하나로 만들어버리자.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요한복음까지 들어있는 내용을 연대적으로 배열해서 그냥 하나의 성경으로 만들어버리려 했던 그런 분도 있었지요.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렇게 성경을 하나로 묶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는 네 권의 복음서가 그대로 주어져 있는 것이지요.

네 권의 복음서가 있다는 것은 초대교회 신자들에게만 고민이 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보면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좋은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왜냐하면, 네 권의 복음서를 읽다 보면 조금씩 순서가 다른 것도 나타나고 때로는 마찰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는데 기독교를 공격하는 분들은 "봐라. 너희들이 믿고 있는 정경이라고 하는 네 권의 복음서가 이렇게 서로 순서도 다르고 또 마찰도 일으키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느냐?" 라고 공격을 했습니다. 아마 지금도 기독교에 대하여 공격하는 분들 가운데는 이런 점을 심각하게 공격하면서 기독교의 문제점을 제기하려는 그런 분들도 아직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러면 왜 네 복음서가 필요하고 또 네 복음서가 조금씩 다른 것들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같은 형체를 가지고 인간으로 30년 이상을 사셨는데 그것은 정말 인류의 역사 가운데 다시 반복될 수 없는 가장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일이라는 것은 한 초, 한 초, 일 분, 일 분, 한 시간, 한 시간이 모두가 다 귀중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렇게 귀중한 사건을 책으로 기록하게 되면 반드시 어느 부분은 넣게 되고 어느 부분은 빠지게 되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 서기자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할 때는 때때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 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상, 또 교회를 지키려는 믿음 이런 것들이 작용하면서 큰 덩어리의 예수님 이야기 가운데서 본인들이 설명하기 좋은 부분들을 조금 더 집중적으로 설명을 하게 되니까 마태복음에는 마태복음식의 조금 더 집중된 설명이 있고 마가복음은 마가복음대로 조금 더 집중된 설명이 있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 네 가지 복음서를 갖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예수님의 놀라운 그 사건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조금 더 상세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이점을 얻게 된 것이지요.

만일에 복음서가 한 권밖에 없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일분일초마다 일어난 그 놀라운 사건들을 다 보여줄 수가 없는 문제가 생기고 마는 것입니다. 네 권의 복음서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친밀하게 더 세밀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얻게 됐다 이런 말이지요.

저 자신이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마태복음을 읽고 나서 마가복음을 읽으면 너무나 흡사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꼭 이게 필요할까? 생각하지만 마태복음을 읽고 놓친 부분을 마가복음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이점이 있고 또 마가복음을 읽다가 누가복음을 읽으면 또 이야기가 반복돼서 이것이 필요할까? 생각하지만 마가복음을 읽고 누가복음을 읽으면 마가복음에서 놓친 부분을 다시 또 발견하기 때문에 이점이 있고 그것은 누가복음을 읽고 요한복음을 읽을 때에도 같이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렇게 네 개의 복음서가 있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조금씩 더 다져주는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더 세밀하게 볼 수 있는 점층적이면서 완전해지는 그런 이점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는 반드시 네 권이 있어야 되고 줄 거나 더 많으면 우리의 믿음에 해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네 권의 복음서를 주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주어진 것이다. 이렇게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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