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도 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큰 이유는 우리에게 호흡을 주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 보다도 죄로 인해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 조차도 모른체 살아가고 또 죽어 갑니다.

요즘 저는 말씀이 꿀처럼 달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고, 항상 말씀을 생각하고 사모하고 있는데, 그 이유중 하나는 요한복음의 참 의미를 깨닫고 있으며, 성경이 특히 복음서가 두루뭉술 당시의 사건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정확한 목적을 갖고 성령님의 영감으로 완벽하게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임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저 혼자 갖고 있는것이 너무나도 아까워서 요한복음의 일곱 표적에 대한 여러개의 설교 말씀을 정리해서 공유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글을 읽으시고 요한복음을 묵상하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실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을 네 부분으로 나누면 1장의 도입부와 21장의 결론 사이에 2장부터 12장 까지의 표적의 책과 13장 부터 20장 까지의 영광의 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 저는 요한복음의 일곱 표적에 대한 하늘의 비밀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 내용을 나누기 전에 저희는 먼저 표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드리는게 전체 글의 이해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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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에만 등장하는 표적 σημεῖον 이란 단어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표지판이라는 뜻 입니다. 예를들어 우리는 화장실이 어딘지를 나타내는 표지판을 자주 보는데, 그 표지판이 화장실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표지판은 화장실이 어디인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 입니다. 그래서 표지판을 보고 화장실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 입니다.

 

어떤 사람이 화장실을 찾다가 20m 더 가면 화장실이 나온다는 표지판을 보고 그 표지판에서 볼일을 본다면 비정상적인 사람 취급을 받을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서의 표지판은 무언가를 가리키고 싶은 것이었지 그 표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일으키신 표적을 공부하면서 그 기적 자체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그 표적이 얘기하고 싶었던게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표적들을 통해서 하고 싶으신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요한복음 1장 마지막절과 20장 31절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51>

이것들을 기록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31>

즉 우리는 요한복음을 읽으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생명을 얻을수 있어야 하며, 그 안에 포함된 일곱 표적 역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도 어떠한 암시를 받아 다음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듯, 예수님께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시며 2장의 표적의 책이 열립니다.

요한복음의 표적의 책에는 일곱개의 표적이 등장 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

가버나움에서 죽어가는 고관의 아들을 고치신 사건

베데스다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서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000명의 무리를 먹이신 사건

디베랴 바다에서 물 위를 걸으신 사건

실로암에서 났을 때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신 사건

베다니에서 죽은지 사흘 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

표적의 책은 일관성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 사건들 즉 표적들이 일어나면 사람들 특히 유대교인들의 오해가 나오고 그에 대한 예수님의 강해로 마무리 됩니다. 이를 통해 각 표적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본론으로 들어가기전에 살짝 힌트를 드리면 표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그 표적을 이 땅의 것으로 오해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표적을 하늘의 것으로 강해하시면서 이 표적이 영생에 대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이 땅에서의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것임을 확신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이제 요한복음의 일곱 표적에 대한 배경 지식을 설명해 드렸으니 첫번째 표적 부터 설명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의 첫번째 표적: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

예수님은 제자들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혼인 잔치가 한창 무르익을 쯤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 입니다. 유대인들의 결혼식은 보통 1~2 주간 잔치를 벌이는데, 포도주는 잔치의 흥을 돋우는 가장 중요한 물품 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면 잔치가 파장이 되버리고 잔치를 주최하는 쪽에서는 큰 창피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포도주가 떨어지게 된 것은 아주 당혹스런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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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알리며 그의 능력을 사용해서 무언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답변은 의외로 냉정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시키는대로 순종하라고 명하자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유대인들의 관례에 따른 돌 항아리 6개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하십니다.

 

처음에 마리아가 잔치의 포도주가 급해서 포도주에 집중할 때는 예수님께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하시지만 마리아가 포도주가 아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에 즉 예수님께 집중하자 예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 입니다. 우리의 수 많은 기도 역시 잔치집에 포도주처럼 세상의 필요나 나의 즐거움, 기쁨, 소원 성취에 집중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기도 제목들에 대해 무슨 상관이 있냐고 대답하시지만 우리의 관심이 나의 소원이 아닌 예수님에게 집중 될때에 예수님은 비로소 말씀하기 시작하신다
는 것 입니다. 바꾸어 얘기하면 우리는 이 세상의 삶에서 나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공급과 은혜를 단순히 이 세상의 것으로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이심을 인지하는 증거로 사용해야 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항아리 6개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요한은 그 항아리를 유대인의 결례에 따른 돌 항아리임을 굳이 밝힙니다.

유대인들은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 그리고 식사하기 전에 손과 몸을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이는 율법도 아니고 장로들의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돌항아리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이 돌항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결론 지어지지 않은 형식 주의에 빠진 생명력 없는 유대교를 상징하는 것 입니다. 물도 없는 정결 예식 항아리, 복음과 상관없이 종교 행위를 열광적으로 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입니다.

지금 요한은 여러가지 장치를 통해서 구원을 설명하고 있는데 결혼식을 예수님과 성도의 혼인 잔치로, 잔치 주관자를 인간의 능력이나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종교의 대표 유대교로, 포도주는 기쁨, 잔치, 희락을 상징합니다. 지금 요한은 포도주가 없는 상황을 빗대어 유대교를 진정한 기쁨을 상실한 잔치집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 입니다.

다른 말로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집을 형식만 남아 있는 유대교 즉 종교로 비유하고 있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는 결혼식장에 포도주나 만들려고 즉 너희에게 이 세상의 즐거움을 주기위해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을 주기위해서 왔으며 십자가에서 너희에게 내 보혈을 주기 위해서 왔다."고 외치고 계시는 것 입니다. 그 잔치집이 참 기쁨을 회복한 잔치집이 되기 위해서는 생수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 그분의 보혈 즉 포도주가 있어야 진짜 잔치집이 될 수 있음을 즉 예수님과 연합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이 이 사건의 진짜 메세지 입니다.

요한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오해하는 두 사람을 등장 시키는데 그 둘은 니고데모와 수가성의 여인 입니다. 이 둘은 굉장히 상반된 삶을 살았는데, 니고데모의 경우 유대인 중에서도 가장 엄하게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파에 엄청난 교육을 받고 지금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그것도 유대 최고의 가문에 엄청난 부자인 사람, 거기에 성품도 겸손하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던 가장 훌륭한 사람의 대표로 등장하는 반면 수가성의 여인은 유대인들이 개취급했던 사마리아인에 그 사마리아인 중에서도 왕따를 당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고, 가난했으며, 남편을 다섯 이나 바꿀 만큼 처참한 삶을 살았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과 동거중인 도덕적으로도 형편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사람 취급을 하지도 않는 가장 천한 사람의 대표로 양극단의 두 사람을 등장시켜 그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와 예수님의 강해를 통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전하고 싶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요한은 니고데모의 등장 전 예수님의 성전 철결 사건을 소개합니다. 씻을 물이 없었던 유대인의 관례에 따른 돌 항아리처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아닌 돈벌이의 장소로 전락한 성전을 보신 예수님은 분노하시며 장사치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십니다. 그리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나온 제사장들이 표적을 요구하자 이 성전을 헐면 사흘 안에 그것을 일으켜 세우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제사장들이 이를 물리적인 성전으로 이해했지만 예수님은 영적인 의미로의 성전 즉 자신의 몸의 부활을 표적으로 보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물이 포도주로 변한것이 단순히 혼인 잔치를 즐겁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영생을 위한 예수님의 복음을 표적하셨듯이 영생을 주시기 위한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신 것 입니다.

그 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으며 이 기적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그들을 맡기지 않으셨다는 표현을 통해 그들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아님을 암시하며 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를 등장시킵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께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기적들을 아무도 할 수 없나이다, 하매 <요한복음 3:2>

그는 왜 예수님을 찾아 왔을까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많은 기적들 봤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자기보다 훨씬 나이도 어리며 어떤 랍비 교육도 받지 않은 예수님께 공손하게 얘기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으며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고 계심을 인정합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부러움을 사기에 부족함 없는 니고데모 역시도 관례에 따른 돌 항아리처럼 구원을 스스로 이뤄낼 수 없는 존재로 등장합니다.오히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다고 얘기하며 물 즉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심을 알려주시며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시는데,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4~16>

구원의 방법은 인자가 반드시 광야의 뱀처럼 들려야 하며 이것을 통해 누구든지 인자를 믿는 자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3일만이 다시 세우시겠다는 성전, 광야의 뱀처럼 들리는 것은 십자가 보혈의 공로 즉 포도주를 얘기하는 것 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되었다가 예수님과의 연합 즉 혼인 잔치가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최고의 종교 행위가 아니라 그 안에 물 즉 성령이 들어가서 예수님의 보혈을 믿을수 있게 해주셔야 한다는 복음의 이야기를 다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계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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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상반된 수가성의 여인은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와 반대로 구원이나 영생에 대해 큰 관심도 없이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수가성의 여인을 일부로 찾아 가십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인간 취급을 안했고 게다가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수가성의 여인은 놀라면서 왜 말을 거는지 반문하는데, 그 때 예수님은 뜬금없이 자신이 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며 그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을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수가성의 여인은 이 물을 육신의 물로 오해하고 예수님께 그 물을 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수가성의 여인은 이 세상의 부족과 목마름을 남자로 채우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는 남편을 다섯이나 뒀고 지금도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동거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죄와 상처를 드러내신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수가성의 여인은 종교적인 얘기를 꺼내기 시작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게하고 이 예배는 한 곳에서만 드려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율법에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과의 단절이 해결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큰 목마름을 느꼈던 것 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장소가 아닌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하며, 그런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자, 그리고 그녀 역시 기다려온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자신을 찾아 오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물 항아리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또 다시 우리는 가나의 혼인잔치에 등장했던 도구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을 기르기 위해 가져왔던 하지만 비어 있었던 돌 항아리에 성령님 곧 물이 등장하고, 그리스도 곧 보혈이 등장하게 되자 항아리를 버리고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서 자신을 왕따시키던 사람들에게 나아가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역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수가성의 여인과 우물가에서 만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만나신 장소 역시 가나의 혼인 잔치를 설명하는 장치로써 사용됩니다. 성경에서 우물은 배우자를 만나는 운명의 장소로 자주 소개되어지고 있습니다. 라헬을 만나는 야곱이나 십보라를 만나는 모세, 이삭의 배우자를 찾기 위해 리브가를 만나는 아브라함의 종도 모두 우물에서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우물가에서 수가성의 여인 마치 호세아의 아내 고멜 같이 부도덕하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죄인 즉 하나님의 백성을 신부로 맞이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물가로 찾아오셨습니다.

첫번째 표적에 대한 결론을 정리 합니다. 이 두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인류의 가장 위에 있는 사람과 가장 아래 있는 사람의 대표로써 하늘 아래 사람 중 예수님의 칭의 없이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을만큼 선하고 잘난 사람도 없고 그와 반대로 예수님께서 구원하지 못할 만큼 못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가장 핵심 즉 누구든지 그를 믿는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시며, 또 동시에 그를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한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