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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겸손한 천재 토마스 아퀴나스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Jul 05, 2016 08:02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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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스콜라 철학의 대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생가가 로마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학생 시절 책으로 공부했던 분의 생가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그분이 살았던 시기는 1,270년경으로 우리 역사로는 고려 시대다. 그 시대라면 대체적으로 신화로 얼버무리게 될 수도 있을 텐데, 로마는 기원전 시저의 갈리아 전쟁이 기록된 책이 지금도 읽히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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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
(Photo : ) ▲토마스 아퀴나스.

 

 

호기심 때문에 아내와 함께 아퀴나스(Aquinas)라는 마을을 향해 무작정 출발했다. 아내에게 월요일은 편하게 보내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다독이면서. 그곳을 대강 지도로 보았을 때 로마와 나폴리의 중간 지점, 즉 프로시노네(Frosinone) 근처였다. 내비는 낯선 곳을 찾는 데 담대함을 갖게 한다.

그런데 예상외로 내비는 고속도로 우편의 높은 산 계곡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덕분에 오래 살면서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골짜기와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제 산하는 울긋불긋 새로운 옷을 입었고, 무성한 밤나무들은 많은 밤알들을 길가에 쏟아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때론 어느 곳을 가기로 목적하고 준비해서 떠날 때 실망하는 경우가 있지만, 기대하지 않고 떠날 때 예상외로 만족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연히 들른 식당의 음식 맛이 기막힌 것처럼.

비록 원하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탄생지를 보지 못한다 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산과 계곡, 그리고 높은 곳에 자리한 마을들은 훌륭한 화가가 각종 물감으로 채색한 듯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계곡을 빠져나오니 벌써 점심 때가 되었다. 마침 주유소 한편에 바(Bar)가 있기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어갔다. 운전 중에 바에서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은 생의 여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요즘 커피 매출이 적어서 그런지 하루 다섯 잔 정도의 커피가 암 예방에 좋다는 연구자의 발표까지 뉴스를 타니 나에겐 다행스럽기만 하다. 커피를 많이 마시지 못하게 하는 아내에게 들이댈 좋은 무기를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바에 들어가니 마침 장교 복장을 한 파출소 소장 정도 되는 분이 있기에 잘되었다 싶어 지도를 들이대며 아퀴나스를 찾는다고 했다. 그는 두 군데가 있는데, 우리가 지금 내비를 맞춘 곳은 다른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를 찾아왔다고 하자, "그가 누구냐" 하는 생뚱맞은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근무하는 마을에서 가까운 곳이요 스콜라 철학의 대부이자 가톨릭 신학의 기반을 이룬 성인의 이름도 모르는 파출소 소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기서 나와 프로시노네를 향해 국도를 타고 가다가, 점심을 먹어야겠기에 주유소에 들어갔다. 수 년 전부터 이탈리아는 점심을 값싸게 바에서 공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포장마차 같은 기분이 든다.

바(Bar)에 들어갔더니 친절하게 맞이한다. 남쪽이라 분위기가 약간 다르다. 로마에서는 음식점에 들어가면 소 닭 보듯 하는데 말이다. 우선 파스타를 주문했더니, 손으로 늘여내어 만든 손칼국수처럼 통통했다. 아내는 검증되지 않은 음식은 먹지 않는 스타일이라서 평범한 것을 시켰지만, 나는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라서 좀 특이한 것을 시켰다. 맛이 없더라도 한 끼인데 하는 심정으로. 그런데 내가 시킨 파스타가 어찌 그리 입맛을 돋우는지, 탄성을 질렀다. 아내에게도 맛 좀 보라고 덜어 주었다. 신은 이렇게 모험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 같다.

음식이 맛있을 때, 마음을 유쾌하게 만든다. 인생은 어쩌면 먹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꽤 점잖게 생긴 분이 식당에서 거친 본성을 드러내는 일들을 종종 보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맛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손님에게 식당의 맛은 설명의 여지가 없으리라.

맛있게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니 천하를 얻은 것 같은 풍요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음식값은 고작 20유로 남짓했으니 정말 Contento(만족)하다. 행복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통속적인 말이 살갑게 마음을 다독인다. 이쯤 해서 돌아갔으면 하는 아내의 눈치를 뒤로하고, 시간이 좀 지났지만 처음 목표했던 아퀴나스를 향했다. 이럴 때는 약간 긴장이 된다. 이유는 모험을 즐기는 마음이 아내의 불안함을 다독여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지배당하는 것을 싫어할 터!

프로시노네를 지나 조금 더 가니, 아내는 아퀴노(Aquino) 푯말이 있다고 톨게이트로 나가라고 한다. 급히 빠져나와 조금 더 가니 아퀴노라는 검은색 간판이 나타났다. 이탈리아에서는 유적지를 표시할 때 언제나 검은색 간판을 사용한다. 우연히 알게 된, 아퀴나스가 태어났고 자랐던 현장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된다. 1200년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나고.

아퀴나스는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지만, 이곳은 아주 척박한 작은 동네였다. 마을 뒤편은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는 가난해 보이는 산골 마을. 나는 산골 출신이기에 구라파에 살면서도 어떤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먼저 넒은 들이 있는지, 삶이 척박하겠는지 또는 풍요롭겠는지를 판단하는 버릇이 있다. 이탈리아 북쪽의 롬바르디아 평원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높은 산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조상 누가 무슨 이유로 그런 곳에 둥지를 틀었는지 모르나, 한 번 둥지를 틀면 후손들은 숙명처럼 그곳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어쩌다 관광으로 오는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찬탄하지만, 실상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떠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위스의 아름다운 산동네마다 그곳을 떠나려는 젊은이들을 붙잡아 두려고 나라에서 혜택을 주지만, 남으려는 사람은 노인들뿐이라고 하지 않는가!

족보를 보니 우리 조상은 조선 중기 정종 때 고향 산골로 내려 오셨다. 몇 대조 할아버지가 조광조의 문하생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늘바라기 땅이 손바닥 만한 깊은 산속으로, 그 후로 수많은 후손들이 그곳에서 가난을 벗 삼아 살아가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작은 행동과 결단이 후손들이나 이웃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가.

 

마을 입구에 로마 시대의 작은 개선문이 있고, 개선문을 따라 로마의 옛길이 1Km 정도 뻗어 있다. 로마식 옛 이름이 Aquinum이었다. Aquinum의 라틴어 um이 이태리어 o로 변형되어 현재 지명이 아퀴노(Aquino)였다. 간판에 쓰여 있는 설명을 보니 기원전 1세기에 어느 집정관이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마을은 작지만 기원전 1세기 전부터 형성되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아퀴나스도 이곳에서 태어나 이 작은 개선문을 오가며 그의 신앙의 편린들을 남겨 놓았지 싶다. 바닥은 기원전 3세기에 아피우스(Appius)가 만든 군사도로 아피아 안티카(Appia Antica)처럼 넓적한 까만 돌로 포장되어 있다. 그 돌에는 그 옛날 누군가가 타고 다녔을 마차 바퀴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마을 중앙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는데, 그 광장 앞에 그의 죽음 700년을 기념하는 커다란 아퀴나스 형상이 있다. 박사의 모습으로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교황이 방문했다는 설명도 있었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퀴나스 때문에 이 작은 마을을 찾아온다는 안내문도 있다.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작은 마을을 천 년 동안 지탱하고 있지 싶다.

1200년경의 석학, 아퀴나스를 생각했다. 그는 당시 학문의 융성한 꽃을 피웠던 파리대학에서 교수를 두 번이나 역임했다. 그가 가장 영향력 있는 스승의 추천을 받아 처음 파리대학에 부임하러 갔을 때가 겨우 27살이었다. 너무 젊은 사람임을 보고 학장은 어안이 벙벙하여 취임을 미루기도 했다. 이런 숱한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그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 것은 주님을 사랑한다는 점이 아닐까?

그는 천재로서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그 당시는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저항하려는 논지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쳐들고 있었기에, 그들에 대항하여 하나님을 논리적으로 변증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보니 그는 결국 스콜라 철학의 대부가 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신의 존재에 대해 다섯 가지로 논증했다.
-모든 것은 운동한다. 운동은 스스로 할 수 없다. 고로 운동의 제일 원인자는 하나님이다.
-세상에는 우연한 사건들이 있는데, 우연이 있다는 것은 필연적 존재가 있음을 의미하며, 그 필연적 존재가 하나님이다.
-사람은 충족하려고 한다, 그것은 자아 충족적 존재가 있기 때문이며, 그분이 하나님이다.
-불완전하다는 것은 완전함이 있음을 의미하며, 그 절대적 척도로 완전하신 분이 하나님이다.
-세상에 질서가 있다는 것은 질서의 주체되신 하나님이 계심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는 신학대전이라는 대작을 완성하지 못하고 붓을 꺾어 버리고 말았다. 이유는 그가 예배를 드리던 중 임재하신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분인지, 그분 앞에 자신의 지식은 한낱 쓸모없는 지푸라기밖에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기에 더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가 체험한 하나님을 사람들이 경험한다면, 사람들은 겸손해지고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무엇보다 나부터 말이다. 이사야도 하나님을 경험한 후, 자신의 존재를 지렁이 같다고 고백했다.

아직도 한창 일할 나이인 50세에 리옹의 회의에 참석하라는 교황의 부탁에 순종하기 위해 연약해진 몸을 이끌고 가던 중, 나폴리와 로마의 중간 지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 시토수도회는 그가 분명 성인의 대열에 오를 분임을 알아보고 그 시신을 보관하였고, 사람들은 그의 머리와 신체를 베어가 버리고 말았다. 당시의 문화는 성인의 신체는 주술적인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일화를 한 가지만 더 소개하고 끝내야겠다. 아퀴나스가 로마 근교 비테르보(Viterbo)수도원에 잠깐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수도원장이 젊은 수도승에게 맨 처음 만나는 수도사를 데리고 시장에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데 젊은 수도사에게 맨 처음 눈에 띈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젊은 수도사는 다짜고짜 그를 잡아끌고 시장으로 갔다. 

몸이 비둔했던 아퀴나스는 젊은 수도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꾸 뒤처지는 아퀴나스를 젊은 수도사는 심하게 나무랐다. 젊은 수도사가 야단을 치는데도 아퀴나스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그를 따라가기에 열중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시장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젊은 수도사에게 한없이 야단을 맞고 있는 사람은, 당시 최고의 석학이요 교황이 존경하여 자문을 구하는 박사 아퀴나스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은 아퀴나스를 닦달하는 젊은 수도사를 세우고 물었다. "이분이 누군 줄 알기나 하오?" "누구긴 누굽니까? 수도사지." "이분이 바로 그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 박사이십니다."

그 말에 젊은 수도사는 깜짝 놀라 안색이 흙빛이 되어 벌벌 떨었다. 사람들이 왜 당신의 신분을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퀴나스는 겸손히 대답했다. "수도사의 본분은 순종과 겸양입니다. 저 젊은 수도사와 저는 그 본분을 따랐을 뿐입니다."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Photo : )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우리는 약간만 무엇을 잡았다 생각하면 한없이 거드름을 피운다. 그리고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특권을 향유하려고 한다. 그러나 특권을 행사하지 않고 겸손하게 진리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지 싶다.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런 스승이 많지 않다. 물론 기독교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진정한 겸손은 주님을 경험함으로 이룰 수 있는 길이지 싶다. 그런 면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스승이다. 방대한 지식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전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한없이 겸손했던 사람, 그 겸손을 우리도 배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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