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종부 목사(남서울교회)는 지난 2014년 11월 첫 저서인 <읽는 설교: 갈라디아서(죠이선교회)>, 지난해 빌립보서 강해집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두란노)>에 이어, 올해 4월 히브리서 11장 강해집 <결국엔 믿음이 이긴다(생명의말씀사)>를 연달아 출간했다.

화 목사는 자신을 '구주'와 '조국 교회'를 사랑하는 설교자로 소개한다.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총신대 신대원에서 목회학 석사,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교회사를 전공하고 옥스포드한인교회를 섬겼다. 고국에 돌아와 서울 성내동 제자들교회에서 10년간 목회한 후 5년 전부터 서울 반포동 남서울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현재 WEC국제선교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쓰신 책 세 권이 모두 신약의 (바울)서신 강해집인데요.

"부임 첫 강해가 빌립보서였지만, 갈라디아서부터 낸 것에는 강한 의도와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지요. 조국 교회가 가진 여러 약점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복음이 너무 약하다'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복음 설교'가 너무 부족합니다. 대부분 '윤리 설교'를 합니다. 이러한 나름의 문제 의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복음'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로마서처럼 풍성하진 않더라도, 루터처럼 아주 거칠지만 단순하면서도 선명한 복음을 가진 좋은 책입니다. 또 빌립보서는 남서울교회 부임 후 적절한 책으로 주셨던 본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대해선, 한국교회 많은 교인들이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그 믿음이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 성경이 말하는 틀과 내용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일반 종교인과 같은 믿음 혹은 샤머니즘적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모르는 데서 오는 혼돈이 조국 교회에 너무 많기 때문에 이를 다루고자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굉장히 좋은 도전이 됩니다.

저는 조국 교회가 지탄받는 부분과 직면한 문제가, 윤리적 부분 또는 삶이 따라 주지 못해서라고 보지 않습니다. 윤리와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틀'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진리와 그 내용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통해 '복음'을 다뤘고, 히브리서 11장으로 '믿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를 다루려 했던 것으로, 시대적인 적절성을 갖는다고 봅니다."

-이번 책 <결국엔 믿음이 이긴다>에서도 그렇지만, 강해설교 도중 종종 관련된 다른 본문(예: 창세기)들로 설교하시기도 하는데요. 그리고 구약은 잘 설교하지 않으시는 건지요.

"예를 들면 갈라디아서 3장을 강해하다 '속량'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바울이 속량을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갈라디아서에서는 저렇게 말했다 하고 설명합니다. 부활절 같은 절기 때도 설교 본문이 달라지지요.

구약과 신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책입니다. 구약 없이는 신약이 의미가 없고, 신약의 렌즈 없이는 구약이 의미가 없습니다. 66권 전체가 하나님 말씀인데, 구약을 즐겨 읽지 않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다룰 때도 가능하면 문맥을 살려냈지만, 창세기 본문들을 같이 다루고 구약 본문들도 그대로 많이 썼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구약을 설교하고 싶지만 창세기의 경우 50장이나 되는 성경을 강해하려 하니 너무 길어서, 믿음의 인물들을 다루며 창세기를 함께 설교한 것입니다.

책에는 다 들어가지 않았지만,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사사들도 일일이 다 다뤘습니다. 야곱도 구약 창세기 본문들을 촘촘하게 나눠 여러 번 다뤘습니다. 사실상 구약을 강해했던 것이지요. 정확히 말해 히브리서 11장을 통해 구약을 설교한 것입니다. 신약의 렌즈로 보면, 구약은 풍성한 강해설교의 재료를 제공합니다."

-이번 책 <결국엔 믿음이 이긴다> 속 내용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먼저 "제가 조국 교회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교인들을 절망시키는 구조가 교회 안팎에 가득하다는 것(180쪽)"이라고 하셨는데요.

"한국교회는 말씀대로 살면 잘된다고 가르칩니다. 그 본문은 요셉 이야기인데, 요셉은 믿음으로 살았지만 보디발의 아내를 거절하다 옥에 갇힙니다. 그래도 본문에는 '형통했다(창 39:3)'고 합니다. 고난이 따라오더라도 신실하게 감당하면 영광이 따라오는 것인데, 우리는 잘된다는 것만 가르치고 하나를 빠뜨립니다. 그리고 '잘된다'는 개념을 세상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잘된다는 것은 세상과 다릅니다. 교회 직분도 받으면 마치 높아지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니 섬기고 낮아지고 종이 되려고 하질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내가 낮추면 남들이 높여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낮춥니다. 참 의미 없고,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런 구조적이고 사유적인 틀들이 너무 안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보면, 장로들이나 목회자들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직분자들이 더 잘 봉사하고, 희생하고, 종이 되고, 많이 일하는 구조가 나와야 합니다."

-"조국 교회가 세상에서 믿음의 본이 되지 않자, 사람들은 교회가 너무 내세적인 교훈만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서 내세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언제입니까(108쪽)?"라고 하셨는데요.

"교회사를 전공했는데, 모든 교회사를 보면 내세를 바르게 가르칠 때 교인들이 현세를 제대로 살았습니다. 언제나 그런 원리입니다. 기자님도 자주 들으시겠지만, 한국교회가 너무 쉽게 내세지향적이라고들 하지요. 그런데, 요즘 교회에서 정말 내세를 가르칩니까? 논리적으로 그렇게 비난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내세를 바르게 가르치면, '오는 하나님나라'를 바르게 가르치면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 고난과 질고 속에 있던 사람들을 다 일일이 품어 주셨는데, 지금 교회들은 그런 것들을 품지 못한 채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의 눈물을 닦아 줘야 합니다.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신약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가 '성도의 고난'인데, 한국교회가 그것을 왜 다루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고난과 내세의 영광을 잘 연결시켜 내어, 실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당장 불행한 것 같아 보여도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며 이겨내는 것이 신앙이라고 가르쳐야 하는데, 너무 감각적이고 기복적으로 가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걸 왜 믿겠습니까? 어리석은 것이지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 때문에 믿게 되는 것이 정상적 믿음의 핵심인데, 조국 교회는 믿음으로 살기보다 느껴지고 체험되는 것으로 살려고 합니다. 마지막 날에야 정말 보이고 만져지겠지만, 아직 완성된 날이 아니기에 많은 것들을 주시지만 동시에 여전히 기다려야 하는데, 그런 신앙은 생기질 않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 때 제일 어려운 것은 전망을 내려놓는 것(85쪽)"이라고 하셨는데요.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 사건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하셨을 때,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거나 지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미래적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를 어떻게 해석합니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히 11:8)'고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므로, 가라 하시면 '어디로 가라 하실지 알지 못하지만 가라고 하신 게 틀림없으니 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그림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그림을 하나님에 대한 신뢰 때문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 '제자들교회를 떠나라'고 하셨을 때 황당했습니다. 제가 가졌던 그림은 작은 교회에서 행복하게 성경적으로 목회하는 것이었기에, 그런 구체적 부르심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와서 보니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많은 성도도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이걸 보여 주셔야 내려놓을 수 있다'고 하는데, 믿음은 앞이 보이지 않아도 딱 출발하는 것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보상이 따르고 영광이 있습니다. 나중에 주님 나라에 가면 그게 최고이지요(웃음). 믿음으로 한 것이 최고입니다. 그런 것에는 다 상이 있습니다."

-최근 설교 도중 '강남 사는 교인들'을 질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본문이 말할 때는 혼도 내지요. 우리 교회가 속한 지역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이곳은 대한민국의 '교육 특구'입니다. 공부에 목숨을 거는 지역이지요. 그래서 '너무 그렇게 좋은 대학에 넣으려고만 하지 마라', '그것만이 하나님 영광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아이들이 결대로 자라는 게 중요하다', '은사와 능력과 부름에 따라 세상 교육이 할 수 없는 걸 하려 해야지, 교회가 그런 것까지 하려고 하느냐'고 이야기합니다. 좋은 대학 가는 데 목숨을 걸지 않도록, 그 부분에 시달리지 않도록 자주 말하는 편입니다.

또 경제적으로 수준 높은 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합니다. 부동산·주식 등의 투기를 하지 못하도록 많이 권면합니다. 건전한 주식 투자는 괜찮지만, 투기성 강한 주식으로 '대박'이 나기를 기대해선 안 된다는 말씀이지요. 성도는 그래선 안 됩니다. '부동산에 투기해서 가격이 오르는 것은 결국 남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다' 하는 점 등을 가르치고, 할 수만 있으면 물질을 많이 흘려 보내자고 말합니다. 비근한 예로는 가능한 한 자녀들에게 유산을 주지 않고, 교회에 내서 교회가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합니다."

-반응이 어땠나요.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놀라울 만큼 잘 들어 주는 편입니다. 한국교회가 가장 많이 실패하는 부분이, '바른 말을 하면 듣기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성경에 근거한 내용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해 주는데 달가워하지 않을 교인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목회자들이 본문을 열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성도를 겨냥하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달게 듣고 순종하기를 좋아합니다.

요즘 전셋값이 너무 뛰는데, 이 지역에는 2년에 한 번씩 5천만 원씩, 몇억 원씩 올리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를 감당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참 나쁜 나라이다, 이런 걸 어떻게 허용하는가' 늘 답답해합니다. 성도에게도 '여러분은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 아무도 그렇게 못 사는데 그렇게 올리면 어떻게 하는가. 남들이 한다고 똑같이 그래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화종부 목사가 최근 펴낸 강해설교집 세 권. 왼쪽부터 순서대로 <갈라디아서>,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결국엔 믿음이 이긴다>.
화종부 목사가 최근 펴낸 강해설교집 세 권. 왼쪽부터 순서대로 <갈라디아서>,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결국엔 믿음이 이긴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저는 교회 근처에서 신앙생활 하려고 살던 집을 전세로 준 뒤 이 근처에 전세로 왔는데, 우리 주인이 5천만 원을 올리길래 저도 5천만 원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안 된다. 주인이 5천만 원 올리니 기분이 어떻더냐? 차라리 융자 내서 갚자. 그런 손해도 안 보고 신자가 어떻게 이 불신의 시대를 살 수 있겠느냐'고 권면했습니다.

그분은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성경을 열어서 바르게 가르치면, 듣지 않을 성도가 없고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이고 결국 그러면 자신들에게도 좋을 테니, 기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성도와 여러 관계들이 생기는데, 관계가 어려워지면 자꾸 성경에 빗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은 설교를 죽이는 것입니다. 절대로 설교를 그런 식으로 사용해선 안 됩니다."

-그런 목회자들도 있나요.

"본문 연구를 꾸준히 해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했던 설교를 또 하게 되고, 설교가 두루뭉술해집니다. 성경에서 많이 벗어나진 않지만, 그 본문이 말하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습니다. 본문이 말하게 하고, 본문이 뭐라고 하는지를 성도가 알게 해야 합니다.

성경은 다른 책입니다. 일반 세상의 윤리와는 매우 다릅니다. 이걸 제대로 연구해서 전하질 못하니, 일반 윤리 수준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윤리 설교'를 하는 것을 문제라고 보진 않습니다. 윤리 설교가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복음을 설교하면 복음이 만들어내는 '복음적 윤리 설교'를 하게 되는데, 복음 설교를 하지 않으니 자꾸 두루뭉술한 일반 윤리를 설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본이 되라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우선 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본이 되는 신앙을 하려니, 나에게 초점을 더 맞추게 됩니다. 하지만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나 자신이 자유를 얻고, 그 자유로 이웃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틀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요. 성경을 열어서 가르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자신이 가진 틀을 그대로 이야기합니다. 성경이 들어와서 사유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강해설교를 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의 꾸준한 연구가 중요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