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은 지금
양기선 | 홍성사 | 304쪽 | 15,000원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지인 '유다 땅' 베들레헴은 지금, 하루 다섯 번씩 '알라'에게 기도하는 소리가 요란한 무슬림들의 땅이 됐다. 이스라엘 영토도 아니다. 한때 그 '성지'에 90%에 달했다던 기독교인들은 지금 28%밖에 남아있지 않다.

르포 에세이 <베들레헴은 지금>를 쓴 이는 순전히 '색다른 경험'을 꿈꾸며 베들레헴대학교 교환학생에 지원한, 스물두 살의 크리스천 남자 대학생이다. 대학교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양떼가 풀을 뜯는 목가적 풍경을 상상하고 당도했지만, 첫날부터 환상은 깨졌다. 그를 맞이한 것은 자동차 매연과 히잡을 쓴 여학생들, 그리고 북적대는 시장이었다. 전형적 아랍 도시였다.

그래도 베들레헴에 왔으니,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마구간은 봐야 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전 세계 성지순례객단과 관광객들이 사모하는 '탄생교회'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살게 됐다. 그래서 처음 몇 주 동안 기쁨에 차서 몇 번씩 방문했다.

하지만 곧 시큰둥해졌다. 집 가까이에 있어서인지 그곳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몇 번씩 방문하다 보니, '인공적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불쑥 올라왔다. '평범한 마구간이었다면 더 은혜로웠을 텐데...'라고 생각하다가도 '마구간만 있었다면 참 허술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그는 탄생교회를 들를 때마다 이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탄생교회 광장 맞은편, 거대한 모스크에서 나오는 아랍어 기도 소리는 그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떠나기 전엔 자신의 말처럼 '철없고 단순한' 마음이었지만, 다녀온 후에는 이렇게 고백한다. "베들레헴에서 공부하던 하루하루는 제 눈을 뜨게 했고, 몰랐던 사실을 가르쳤고, 편견을 부수며 제 시야를 넓혀 주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괴로운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속 가능한 평화와 용서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거주지를 나누고 있는 장벽들. 사람들은 이곳에 각종 그림들을 그려 넣고 있다. ⓒ홍성사 제공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거주지를 나누고 있는 장벽들. 사람들은 이곳에 각종 그림들을 그려 넣고 있다. ⓒ홍성사 제공

분쟁과 장벽, 공습 같은 심각한 장면부터, 대학생활과 친구 이야기까지. 저자는 꼼꼼한 기록과 다양한 사진들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을 담아냈다. 글을 시작하기 전, '팔레스타인 아랍인'과 '이스라엘 유대인' 입장에서 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각각 서술해 주는 등,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곳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움이 싹텄지만, 주말마다 이스라엘 땅에 나가 선량한 유대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 마음은 흔들렸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분쟁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말한다. "유대인은 선택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주변 아랍인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적의 세력이라고 생각해 보았다면, 혹은 유대인들이 중동의 평화를 방해하는 악의 축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장벽 한쪽엔 고형원의 ‘보리라’ 가사도 보인다. ⓒ홍성사 제공
장벽 한쪽엔 고형원의 ‘보리라’ 가사도 보인다. ⓒ홍성사 제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신문의 국제란에 종종 등장한다. 최근에도 양측은 가자 지구에서 50일간 교전을 벌이며 2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역만리인 이곳에서 접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지식이 얼마나 파편화돼 있고 글자 자체로 그치는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저자도 말한다. "직접 그 땅을 방문해 현실과 얼굴을 마주하고 살을 맞대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별 감흥과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는 최소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땅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이 땅의 평화와 용서, 그리고 공의를 위해 기도하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