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동쪽으로 약 100마일 떨어진, 모래 먼지가 날리는 황량한 사막에서 최근 한인교회 입당 이야기가 들려왔다. 팜스프링스, 이 이름에 어울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생수가 솟아난 사건이다.

개척을 하러 엘에이 땅을 밟은 최승목 목사는 성전 건물을 물색했다. 그러나 무료로 성전을 빌려주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생활이 어려워 방세를 못내 쫓겨날 처지가 된 그는 개척 대신 청빙을 받기로 했다. 어느 날 기도모임에 참석해 '목회지를 주세요'라는 기도제목을 적어서 냈고 다음날 이력서를 냈던 곳에서 모두 연락이 왔다. 그중 팜스프링스한인감리교회로 결정했다. 당시 성도 수 19명에 불과한 작은 교회였지만 '선교하는 교회'로 만들고자 처음에는 심방을, 이후에는 교인들을 데리고 선교를 열심히 다녔다.

2년 전 멕시코에서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 참석한 한 멕시코 목사님으로부터 자기 교회에 와서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그는 그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서 그는 스무 명도 채 안 되는 성도들이 모여 있는 작은 예배당과 8년 동안 철근만 박아 놓은 채 방치돼 온 교회 부지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신기한 일이 시작된다.

최승목 목사
(Photo : 기독일보) 최승목 목사

CTS TV 방송설교자, AM1190 라디오 진행자, CGNTV 방송설교자, 중앙일보, 코리아 모니터, 크리스천 헤럴드 칼럼리스트, 용인 태화 국제학교와 Dove's Landing School 이사, 미주 감리교 신학대학 교목, 자아개발-리더십 강사. 이 이야기의 주인공 최승목 목사에게 붙는 호칭들이다. 크리스천 언론과 방송에선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인 그는 미디어를 통한 복음전파에 힘쓰고 있다.

지난주 목요일 방송 녹화를 위해 엘에이에 온 최승목 목사를 만나 성전입당 과정과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팜스프링스 한인감리교회에는 언제 부임했나?

2009년 8월에 부임해 5년이 지났다. 당시 성도수가 어린이까지 합쳐 19명이었으나 현재는 100명 정도며 지성전에는 20명 정도 있다. 이민목회는 10년째다.

- 교회소개

저희 교회는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며 저는 3대 목사다. 이 교회 부임 후 선교하는 교회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캄보디아, 북한, 중국, 멕시코, 필리핀, 인디안 나바호족 등 선교를 일 년에 6~8곳을 직접 가서 선교한다. 중국 선교는 신학교를 통해, 멕시코나 인디언은 의료선교, 미용선교 등 다양한 분야로 나눠 선교한다.

최승목 목사
(Photo : 기독일보) 최승목 목사

- 팜스프링스 한인감리교회는 어떤 사역을 하는가?

목회철학은 인카네이션(성육신) 신학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배가 종교적 행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체험이 되어야 한다. 욥은 '눈으로 본다'고 고백했고 요한일서에서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다. 최 목사의 하나님이 성도 자신의 하나님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 마다 색깔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명확하지 않으면 정체성이 앞으로 갈 수 없다. 우리 교회 하면 떠오르는 게 있어야 하는데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아무 것도 없었다. 릭 워렌 교회, 사랑의교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우리 교회는? '돈도 필요 없고 사람도 필요 없는 목회를 하자'는 생각에 심방 목회를 했다. 그 다음에 선교 목회를 시작했다. 선교를 일 년 내내 했다. 한, 두 달에 한번씩 하니 성도들이 삶의 목적과 가치를 찾았다.

교육 목회에 관심이 있다. 어릴 때 교회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다. 불교도 동자승이 있다. 신부도 수도원에 맡기는 게 있다. 세상도 예고, 체고가 있다. 그런데 신학고등학교가 없다. 어릴 때부터 신앙적으로 교육하는 기관이 없다. 다 대학원으로 간다. 어려서부터 신앙으로 교육하고 싶은 꿈이 있다.

- 청빙과정은?

볼티모어에서 교회를 저와 처가댁이 함께 개척했다. 패밀리 처치로 인식돼, 자립이 된 다음 교회를 떠났다. 뉴욕에 갔다가 엘에이에 개척하러 왔는데 뉴욕에서 세 번 다 무료로 교회를 빌렸다. 엘에이도 무료로 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한 교회를 섬기며 교회를 개척하려는데 개척이 어려웠다. 청빙을 받기로 생각을 바꿨다. 너무 어려워서 라티노들이 사는 집에 방 하나 얻어 살았는데 거기서도 쫓겨났다. 8개월 정도 자리를 알아 봤다. 어느날 교회 기도모임에 참석해 기도제목을 적어 냈다. '목회지를 주세요.' 다음날 지원서를 냈던 네 곳 모두에서 '우리 교회 담임으로 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 성전 구입 과정은?

건물도 기적적으로 주셨다. 2년 전쯤 멕시코를 갔는데 제가 집회하는 교회에 멕시코 목사님이 참석했다. 집회 끝나고 은혜를 받았다며 자기 교회에 와달라고 하셔서 가보니 20명도 안되는 작은 교회였다. 거기 큰 땅이 있는데 철근을 박아 놓았다. 교회를 중축하려 했는데 돈이 없어서 8년 간 그 상태로 방치된 것이다. '안되겠다. 이것을 우리가 지어 줘야겠다'고 생각에 재료값을 대주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드렸다.

그 교회가 세워져 축하해주러 차를 타고 가던 중 한 미국 교회에서 전화가 왔다. "교회를 정리하려 하는데 혹시 건물을 살 의향이 없느냐"는 전화였다. 다음날 만나서 대화를 나눴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해 건물을 정리하려 하는데 3에이커에 건물 두 채가 있다"며 "그 건물들을 한 채 가격으로 드리겠다"고 했다.

그 건물 한 채 가격도 드릴 형편이 안 되는데 오너캐리(Owner Carry: 판매가격의 일부에 대해 융자를 해주는 방식)로 준다고 했다. 또 그 교회 안에 미국인 학교가 있는데 렌트비를 우리에게 준다. 결국 보증금을 내고 나머지 융자금은 미국인 학교에서 받아서 갚으면 되게 됐다. 공짜로 들어가게 됐다. 게다가 교회 건물 내 의자, 스피커, 마이크 등 기자재를 다 놔두고 가기로 했다. 몸만 들어가면 된다. 그러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우리는 멕시코 교회를 지어주고,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지어줬다.' 부활절에 들어갔고, 8월 17일에 입당예배를 드렸다. 눈으로 보는 것, 경험하게 하는 것이 내 목회 철학이다. 우리 교회는 간증이 있고 체험이 있는 교회다. 그래서 교회가 많이 부흥했다.

- 목회자가 된 계기? 목회의 소명은 언제 받았는가?

사랑하는 은사님이 계시다. 그분이 교회에서 먹고 주무셨다. 저는 처음에 교회가 좋아서 교회에서 지내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무당이셔서 집에서 쫓겨난 것이었다. 저는 그분이 너무 좋아서 중고등학교 때 그분과 같이 지냈다. 교회 작은 방이 있었는데 집에 가서 밥 먹고 교회로 다시 가서 숙제하고 기도하며 교회에서 생활했다. 어려서부터 그냥 목사가 되고 싶었다.

- 실천신학을 전공한 이유는 무엇인가?

목사님들의 설교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떻게 설교하는 게 맞는가'를 학문적으로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하게 됐다. 설교할 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분도 있고 영화 이야기하는 분도 있고 책 이야기하는 분도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설교는 말씀을 받아서 전달하는 것이다.

- 존경하는 목회자나 인물은?

한국중앙교회에 최복규 원로 목사님(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장)이 계시다. 이분은 아이가 교통사고가 나서 세상을 떠났는데 병원에 가지 않고 강단을 지키셨다. 자녀보다 교회를 더 사랑했던 목사님이다. 모교회의 홍순자 목사님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목회하셨다.

제가 같이 생활했던 분은 백향목 목사님이다. 한번은 누가 구두를 훔쳐가서 고무신을 신고 다니셨다. 고무신이 편해서 신으시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구두 살 돈이 없으셨다. 그런데 한번은 제 동생이 농구를 하다가 농구공을 잃어버렸다. 동생이 우는 걸 보고 몰래 문방구에 가서 농구공을 사서 땅바닥에 긁고 계셨다. 그리고는 농구공을 찾았다며 동생에게 주셨다. 2001년도에 캐나다에 가서 이분을 뵜다. 사모님이 아기를 낳으셔서 처가에서 몸조리하라고 50만원을 줬는데 그 돈 전부를 저에게 주셨다. 제가 안 받겠다고 하는데 그 큰 분이 펑펑 울면서 돈을 던지고 가셨다.

- 목회하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나?

고생을 많이 했다. 군대에서도 교회 간다고 계속 맞았고 미국 와서도 노숙자가 되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그런 게 힘든 건 아닌 거 같다. 정말 힘든 건 성도들이 불안해하고 믿음을 포기할 때다. 건물 살 때도 성도들에게서 '힘들다, 포기해야겠다,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왔을 때 힘들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주실 것을 알지만 그분들이 낙담하면 저도 힘들다.

최승목 목사
(Photo : 기독일보) 최승목 목사

-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실력도 아니고 능력도 아니고 청렴한 윤리도 아니고 사랑이다. 그런데 이 사랑은 가슴이 찢어지는 사랑이다. 십자가에서 몸과 마음이 찢어진 것처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게 없다면 목회자는 안 됐으면 좋겠다. 설교 좀 못해도 실력이 조금 없어도 이것이 있으면 될 거 같다.

- 크리스천들이 세상으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크리스천들에게 아쉬운 점이 있나?

먼저는 목회자 자질이 문제다. 공부만으로 참된 목사가 될 수 없다. 성경은 지극히 상식 안에 있다. 불신자들이 왜 기독교에 대한 왜 반감을 갖는가? 상식밖에 있기 때문이다. 일반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범과들이 교회 안에 있기 때문이다. 목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목사는 둘째 치고 사람도 안됐기 때문에 그런 비판이 나온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믿음이 아닌 참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바울사도조차 날마다 내 몸을 쳐 복종케 한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몸부림이라도 쳐야 한다.

- 절망에 속에 있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님 사랑은 이웃사랑이다. 요한일서 3,4장을 보면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가라는 반문이 나온다.

또 하나는, 예수님이 천국은 너희 마음에 있다고 하셨다. 에덴동산은 기쁨이란 뜻이다. 사람은 원래 기쁨 동산에 살게 만들어졌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지금 천국을 경험하는 것이다. 지금 천국에 가면 육신의 죽음이 그 천국의 삶을 단절시키지 못한다. 지금 천국을 경험하는 자가 죽어서도 천국 가는 것이다. 사는 게 지옥이라면 내가 정말 예수 믿는 건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도바울은 '내가 날마다 죽노라'라고 했다. 부활도 오늘 경험하는 것이다. 니고데모가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냐"고 묻자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고 하셨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었고 스데반은 돌에 맞았다. 그런데도 항상 기뻐했고 얼굴이 환했다고 나와 있다. 오늘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기쁠 수 있다.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내 안에 예수가 있다는 것이고, 내가 부활했다는 것이고 내게 천국이 임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기쁘지 않다면 주님을 다시 만나야한다.

- 2세 교육과 청년 사역은 어떻게 하고 있나?

교회에 케네디 락커라는 교육전문가가 계시다. 교장을 20년간 하셨고, USC에서 3년간 교수로 계셨다. 그분이 저희 교회에서 크리스천 사립학교를 개척하셨고 교회학교 교육을 담당하신다. 신앙교육은 일주일 한두 번으로는 부족하다. 인성교육이 지식 교육보다 더 중요하며 인성교육보다 신앙교육이 더 중요하다.

- 성경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주는가? 심리적, 정신적인 문제, 중독, 전쟁 같은 심각한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에게 성경은 해답을 주나?

성경박사라고 해서 성경을 이해하는 게 아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해서 해답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니 성령의 감동으로 읽어야 한다. 마음이 뜨거워져야 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읽으면 하나님 사랑으로 마음이 뜨거워진다. 그러면 인생의 해답을 왜 못 찾겠는가. 그냥 말하는 게 아니라 임상목회를 하며 수도 없이 봐왔다. 절대 변하지 않을 거 같은 깡패, 마역중독자가 바뀐다. 우리교회에 마약중독자가 왔는데 병원에 다녀도 약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던 마약을 끊었고 공황장애를 앓던 조하문 목사님은 말씀 듣고 치료되셨다.

- 성적 타락의 문제가 교회 안에도 존재한다. 이 문제로 성도들은 큰 상처를 받는다. 이 문제를 어떻게 예방하고 극복해야 하는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어려운 질문이다. 간단하게 말하겠다. 죄의 경중이 없다고 본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성경에도 실수한 인물이 많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실수한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을 나무라셨다. 실수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나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주님은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 하셨다. 자신 있게 정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지도자나 평신도나 늘 근신하여 깨어 구원을 성취해야 한다. '나는 안 그랬으니 그를 비판한다'는 태도는 아닌 거 같다. 하와의 실족은 아담과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있는 게 중요하다.

- 방송에 출연하게 된 계기?

미디어를 좋아한다. 미디어에 대해서 자기를 드러낸다고 오해하는 분이 있다면, 시대를 너무 못 읽는 것이다. 바울도 당대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도구, '편지'를 사용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본인이 뛰어 다녀야 했다. 양피지를 보내면 그 역할을 한다. 세상도 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전한다. 알릴 수 있으면 최대한 알려야 한다. 20여년전 군대에서 짬밥회지를 만들었다. 군대에서 일어난 신앙의 사건에 대해 신문을 만들어서 100여 곳에 보냈다. 바울처럼 편지로 보냈다. 또 방송을 찍어 국방뉴스로 복음을 짧게 전했다.

- 칼럼을 연재하고 기독교 TV에도 나온다. 명예의 시험을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오히려 알려지면 불편하다. 식당에 가서도 정당한 불편 사황을 말하기도 어렵다. 그것을 감수하고 알리려고 하는 것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복음을 더 효율적으로 퍼뜨리기 위함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알려지면 사람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 불편을 아시는 분들은 미디어 활동을 자제하려 한다.

오랜 방송 경험 때문인지 최승목 목사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도 술술 답변을 풀어놓았다. 확신에 찬 명쾌하고 뚜렷한 그의 목소리는 때로는 설교를 하듯 고조되기도 했고 은사님에 대해 회고할 때는 떨리기도 했다. 전 월트디즈니 감독과 함께 크리스천 만화를 제작 중이며 변호사, 한의사, 의사, 예술가 등 전문인을 중심으로 한 평신도 워크샵을 구상 중이라는 이 아이디어 넘치는, 40세 젊은 목사에게 하나님이 앞으로 어떤 일들을 보여주실지 기대된다.

*2004년 7월 생수교회란 이름으로 설립된 팜스프링스 한인감리교회는 1대, 2대 담임목사로 라환주 목사, 김양건 목사가 섬겼으며, 2009년 8월 최승목 목사가담임으로 부임했다. 2012년 "전세계를 먹여 살리는 교회", 2013년 "꿈을 따라 움직이는 교회"에 이어 2014년에는 "오병이어 기적이 매일 일어나는 교회"라는 표어 아래 '귀로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라는 요한일서의 말씀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선교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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