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역사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학자들이 시내산을 찾아 나섰지만, 시내산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솔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렵다. 객관적으로 어느 한 곳을 시내산으로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한국 관광객들이 찾는 이집트의 시내 반도 (Sinai Peninsula)에 위치한 시내산은 비잔틴 시대 이후 교회의 전통에 따라 시내산으로 결정된 곳으로, 모세의 출애굽 사건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각주 1)
현재의 시내산 외에 이스라엘의 네게브 사막에 위치한 카르콤 산 (Mt. Karkom)을 시내산으로 주장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고고학자가 있다. 카르콤 산의 위치는 필자가 제작한 입체적 모형이나 대형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남단, 미쯔페 라몬 (Mizpeh Ramon)의 남쪽에서 카르콤 산지 (Sheluhat Karkom)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이곳을 시내산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83세의 노인인 임마누엘 아나티(Emmanuel Anati)는 시내산을 찾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학자이다. 그는 30년 넘게 카르콤 산에서 발견한 유물들을 최근 책으로 출판하였다 (the Mountain of God). 아나티의 결론은 카르콤 산이 성경의 시내산이란 것이다. 카르콤 산에 대해서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아나티의 주장은 학자들로부터 심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시내산으로 주장되는 장소들은 그 외에도 아주 많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 대학의 요엘 엘리쭈르 (Yoel Elitzur)는 시내산의 수는 아마도 시내산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수 만큼이나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고학자나 성경학자도 아닌 일반인들도 시내산을 찾는 일에는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어느 한의사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시내산을 찾았다고 주장하며 가벼운 책도 썼다. 두란노 서원에서 이 책을 출판해서인지 많은 한국 독자들이 읽은 것 같다. 그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 시내산을 찾았다면서 놀라워한다. 그러나 시내산은 한의사가 우연히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마치 버스 터미널에서 누군가 두고 간 물건을 발견하는 것처럼 시내산은 그렇게 우연히 찾아지는 곳이 아니다.
시내산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자손들에게 율법을 주신 산으로 모두 15차례 기록되었다. 시내산에 대한 시적 표현 (삿 5:5, 시 68:8, 68:17)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산으로 나온다. 시내산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바란산은 신명기 33:2절과 하박국 3:3절, 두 차례 기록되었다. 민수기 10:12, 12:16, 13:3절에 바란 광야는 시내 광야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바란이란 이름은 비잔틴 시대의 페이란이란 지역에서 그 이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민수기 10:30절에 시내산은 여호와의 산으로 기록되었다. 시내산은 히브리어 성경에는 17차례 기록되었으며 대부분 신명기에 기록되었다. 그 외에 출애굽기 3:1, 17:6, 33:6, 열왕기상 8:9, 19:8, 역대하5:10, 시편106:9, 말라기4:4절에 기록되었다. 호렙산은 시내산을 가리키는 다른 용어로 쓰이기도 했다 (신 9:8). 그렇다면 호렙산과 시내산은 같은 장소인가 아니면 다른 곳인가 이것은 아직도 문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시내산은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산으로도 기록되었다 (출4:27, 18:5, 24:13).
모세와 관련하여 시내산의 위치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출애굽기 3:1절(각주 2)에 따르면 모세가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쳤던 곳은 미디안 광야였다. 또는 미디안 광야에서 멀리 벗어난 곳은 아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2:15절에 모세는 자신의 목숨을 찾던 바로를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피신하였다. 모세 당시 이집트 바로는 시내 광야에 여러 구리 광산을 갖고 있었고, 군대도 주둔했기에 바로를 피하여 도망하는 모세에게 시내 광야는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실재로 엘랏 북쪽 팀나 (Timna)에서 출애굽 시대 이전, 이집트의 풍요의 신인 하토르 (Hathor) 신전이 발견되었다. 또한 출애굽기 4:18-19절(각주 3)의 기록 역시 미디안 광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모세가 양떼를 쳤던 장소,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 모세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갔던 장소는 모두 미디안 광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미디안 광야를 배경으로 하는 시내산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받았던 장소임을 출애굽기 3:12절(각주 4)은 암시하고 있다. 갈라디아 4:25절(각주 5) 역시 지금의 시내산 위치가 아닌 미디안 광야, 아라비아 반도를 말하고 있다. 아라비아에 대한 성경의 기록들은 (왕상10:15, 대하9:14, 사21:13, 렘25:24, 겔27:21) 모두 아카바 만의 동쪽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세와 관련된 시내산은 현재 아카바 만의 동쪽과 서쪽 일부 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민수기 33장에 기록된 출애굽 경로를 통해서도 시내산의 대략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히브리 민족의 출애굽 경로는 이집트 고센 지역을 출발하여 홍해 (민 33:11)를 향하여 진행하였다. 그리고 시내 광야 (15)에서 진을 쳤고, 에시온게벨 (36), 진 광야 (한글 성경에는 신광야라 되어 있지만 히브리 성경에는 Sin이 아닌 Zin으로 기록)에 이르는 경로를 보면 시내산의 위치는 미디안 지역, 곧 아라비아 반도가 아닌 현대 이집트에 속한 시내 반도 (Sinai Peninsula)에 위치한다.
또한 신명기 1:2절6의 기록에 근거하여 시내산의 위치를 추정하면 가데스바네아에서 남쪽으로 열 하룻길에 위치한 시내산은 아카바 만의 동쪽 보다는 아카바만의 남쪽과 서쪽이 더욱 유력하다. 이렇듯 시내산, 호렙산, 바란산, 모세의 도피 사건, 출애굽 경로에서 보듯 어느 한 장소를 시내산으로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진짜 시내산의 위치가 어디인가에 대해서 정말 궁금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호기심에 편승하여 시내산 순례 코스도, 또 일부 잘못된 책도 출판되는 것이다.
시내산의 위치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몰랐던 거 같다. 알았을 지라도 그들은 시내산을 경배의 장소로 삼지는 않았다. 가나안 땅을 차지한 이후 세겜, 실로, 예루살렘으로 예배의 장소가 옮겨졌을 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지는 않았다. 그런 기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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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1 현재의 시내산 수도원은 이집트 수도사인 안토니 (Anthony)와 관련이 깊다. 안토니는 251년 이집트 남부 헤라클레오폴리스 (Herakleopolis) 근처 코마 (Coma)에서 태어났다. 안토니의 나이 18세 되던 해 그의 부모님은 모두 사망하였고, 안토니에게는 결혼하지 않은 여동생과 부모님의 많은 토지와 재산이 유산으로 주어졌다. 이후 안토니는 예수님의 가르침인, ‘만약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마19:21)’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안토니는 자신에게 남겨진 토지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을 기독교 처녀 공동체에 부탁한 후에 자신은 그 지역의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안토니 (Anthony)는 이집트의 동쪽 사막을 자신의 경건을 위한 수도 장소로 삼았다. 안토니에 의해 이집트 수도원 운동은 동쪽으로 확장되어 비잔틴 시대에는 시내 반도까지 퍼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수도원들과 관련된 여러 장소들이 시내산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제벨 무사 (Jebel Musa)이다. 아랍어로 모세의 산이란 뜻으로 현재 많은 사람들이 시내산으로 생각하고 찾는 산이다. 시내산으로 알려진 또 다른 산으로 , 제벨 세르발 (Jebel Serbal)이 있다. 그곳 역시 시내 반도의 남쪽에 있는데 이곳은 물이 풍부한 와디 페이란 (Wadi Feiran)이 위치한 곳이다.
4세기 유게리아 (Egeria)라는 순례자는 당시 시내산으로 알려진 제벨 무사와 모세의 동굴도 방문하였다. 모세의 동굴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므로 모세가 깬 하나님의 십계명을 다시 받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 모세가 거했던 동굴이란 것이다. 이 산 아래로 주의 천사가 모세에게 나타난 것을 기념한 나무 주위에 교회가 세워졌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출 3:2).
6세기 말 유스티니안이 시내산 교회를 수도원 요새로 바꿀 때에 이 수도원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헌정되었다. 당시에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시내산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이 요새 수도원을 건축한 이유는 시내 반도의 수도사들을 약탈자들로부터 보호를 위한 때문이다. 이후 12세기에 수도원 요새는 성 캐더린에게 헌정되었다. 그래서 시내산 수도원을 캐더린 수도원으로 부르는 것이다.
각주 - 2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각주 - 3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각주 - 4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각주 - 5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각주 - 6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