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씨의 소설 “벌레 이야기”는 진정한 기독교적인 용서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밀양”이라는 영화가 되었고, 송강호와 전도연의 실감나는 연기를 통하여 우리 가까이로 왔습니다. 작가가 왜 사람들의 이야기를 “벌레 이야기”라고 했는지 나름 추측하여 봅니다.
여주인공의 아들 알암이를 죽인 범인은 벌레 인생입니다. 돈 때문에 아이를 살해했으니까 벌레보다도 더 잔혹하지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알암이 엄마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들을 잃은 증오가 활화산처럼 터져 올라 그를 찾아 죽이겠다고 울부짖습니다. 간신히 하나님을 통하여 위로를 받고, 안정도 되고, 나중에는 잡힌 범인을 용서한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교도소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범인을 만나고 나서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누리고 심령의 평강을 찾은 범인을 절망스럽게 바라봅니다.
알암이 어머니의 고뇌는 이때로부터 다시 시작이 됩니다. 알암이 어머니는 살인 때문에 괴로워하고 간곡히 용서를 빌 범인을 예상하였는데, 광신이었는지 무심이었는지 고통의 당사자인 알암이 엄마를 향하여 사과와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범인에게 절망합니다. 그리고 알암이 엄마는 결국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용서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빼앗았습니다.” “내가 고통의 당사자인데 누가 먼저 저 인간을 용서합니까?” 범인이 사형을 당한고 난 후 이틀이 지나서 알암이 어머니는 자살 합니다.
작가가 말하는 벌레는 틀림없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용서의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사람을 향한 염치를 잃어버린 벌레, 그리고 용서했다고 말하면서 용서를 다시 베푸는 강자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벌레를 작자는 그리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벌레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제가 어렸을 때 보았던 가장 징그러운 애벌레는 우리 삶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소나무, 포도나무, 사철나무, 감나무, 장미, 백양목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에는 털이 숭숭 나있고, 열심히 나뭇잎을 파먹는 애벌레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고무줄과 나뭇가지로 손수 제작한 집게를 가지고 전교생이 산으로 송충이를 잡으러 간 것도 생각이 납니다. 자연 속의 애벌레는 고치를 만들고, 껍질을 벗으면서 신기하게도 성충인 나비가 됩니다.
아름답게 너울너울 날아다니면서, 꿀을 먹는 신선 같은 나비가 징그러운 애벌레 출신입니다. 죽은 것 같은 번데기가 된 후에 허물을 벗어버리고는, 이전에 상상할 수 없던 창공을 자유롭게 나는 3차원적 존재가 됩니다.
벌레 인생은 십자가를 통과하여야 나비로 부활하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 밑에서만 나의 죄와 악이 처리됩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여야만 부활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을 통해 살아나는 인생은 벌레인생이 아니라 나비인생입니다.
2014년의 부활절은 아름다운 나비 인생으로의 새로운 시작이 되어지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