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라는 말은 우리네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달콤할 것 같아서 누구나 한 번쯤 맛보고 싶은 메뉴이다. 그러나 이 메뉴는 아무나 취해서는 안 될 금기이다. 젊은 청춘들을 위해 준비된 메뉴이다. 그것도 한 사람을 향해서만 가질 수 있는 메뉴. 만약 사랑할 한 사람을 두고 또 다른 마음이 있어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면, 그건 바람직한 연애가 아니다.
어느 권사님에게 결혼 적령기가 훌~쩍 넘은 아들이 있다. 부모의 마음은 타들어 가는데 아들은 도무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게다. '제발 연애 좀 해라!' 입버릇처럼 하는 엄마의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사람을 한번 만나 보라'고 한다. 무척 반가워서 만나봤다. 그런데 며칠 후에 또 다시 말했다. '이번에도 한번 만나 보라'고. 이게 무슨 대박? 늦복이 터진 건가? 그러나 권사님의 마음을 달랐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말했다. '이 나쁜 놈아! 양다리 걸치지 말고 빨리 한 사람으로 정해!'
젊은이들에게 정조 개념도 사라지고, 순결 개념을 엿보기 힘든 세상. 이 사람 저 사람 편리한 대로 만나도 죄의식도 들지 않는 세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어떻게 벌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원조교제의 문을 활짝 열어두는 세대.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미리 한번 살아보고 안 맞으면 헤어지자는 심산으로 계약결혼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 고리타분한 고전을 중시하는 나에게는, 더구나 하나님 말씀이 모든 삶의 유일한 잣대라고 믿고 있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생각들이다.
이러한 세대들에게도 연애라는 메뉴가 좀 정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토요일 아침, 현대무용을 하는 막내가 친구들과 만남이 있는 듯하다. 대학교 1학년이니 화장도 하고 싶을 게다. 짧은 치마를 입고 나왔다. 그래서 한 마디 툭 던졌다. "세린아, 좀 긴 치마를 입어라. 팬티가 다 보이겠다." 그랬더니 딸이 대꾸한다. "긴 치마를 좀 사줘!" 긴 치마가 없어서겠는가? 자기가 안 샀기 때문이지. 옆에 있던 아내가 말했다. "쟤네들은 몸을 드러내놓고 사는 얘들이잖아. 그러니 짧은 치마를 입어도 별 생각이 없을 거야." 그렇긴 하다. 무용복이라고 하는 게 그렇지 않은가? 온 몸이 다 드러나는 옷. 그런데 아빠는 걱정이 된다. 혹 이 세대의 트렌드에 노출되는 건 아닌지.
연애, 이건 이미 자기 짝을 찾은 기혼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메뉴다. 아니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메뉴다. 만약 호기심으로 가까이 한다면 그것은 범죄이다. 범죄를 미화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이런저런 변명을 둘러대면서 '나는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다'고 자기변호를 해서도 안 된다. 범죄는 범죄이니까.
최근 불륜조장 사이트가 국내에 상륙하고 있다. 그 정체는 글로벌 기혼자 만남 알선 업체이다. 이 업체가 한국어로 서비스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국내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들은 기혼자끼리의 만남, 혹은 기혼자와 싱글의 만남을 주선해 준다. 남몰래! 기혼자들에게 인생의 탈출구를 마련해 주겠다는 선심(?)에서다. 이 업체는 2001년 캐나다에서 출범했다고 한다. 이미 35개국에 진출해 있는 상태. 2400만명이나 되는 회원을 확보! 놀랍지 않은가? 물론 불륜을 알선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맞다. 엄연한 불륜 조장이다. 그런데 1년 매출액이 1억 2500만 달러(약 1327억원)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가히 누룩과 같은 확장이 아닌가?
2012년 일본에서는 사이트를 개설한지 3개월 만에 50만 회원을 돌파했다. 물론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 공략에 성공한 이들은 이번엔 한국을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창업자이자 CEO는 일본에서처럼 한국에서도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그 자신감은 허세가 아니다. 이미 한국어 사이트를 열지도 않았는데 접속한 한국인이 12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이들이 한국 공략을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외도율이 기혼자의 70%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니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들이 세운 전략은 간단하다. 불륜을 단골 소재로 삼는 한국의 막장 드라마에 집중적으로 광고해 회원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분명히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슬로건을 내건다. '인생은 짧다, 연애하라.' 창업자는 그럴 듯한 궤변을 토한다. "현대인들은 숨통을 틔워줘야 오히려 가정에 더 충실할 수 있다." 지쳐 있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이렇게도 생각해 주니 고맙다고 얘기해야 하나? 가정에 충실한 게 뭔가? 돈만 벌어주면 가정에 충실한가? 윤리를 내팽개친 충실. 마음이 다 빼앗긴 관계. 마음과 영혼이 없는 침실. 도대체 뭐가 충실한 가정생활인가?
그렇다. 인생은 짧다. 세월이 흐를수록 속도감은 더 높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막 살라는 것인가? 정의와 의리도 팽개치고, 윤리도 쓰레기통에 처박아둔 채. 짧은 인생이기에 아무에게나 몸을 썩혀도 된다는 말인가? 그럼, 세상이 어떻게 되는가? 질병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도 있다. 더 살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 얼마나 속상하고 가슴 아플까? 이런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살아가려고 마음먹어 보라. 세상이 어떻게 될까? 요지경이 아닐까? 금새 생지옥으로 변하지 않을까?
아무리 짧은 인생일지라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 왜?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는 인간이니까. 이성을 가진,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 존재이니까. 인간이라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 있고, 걸어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다. 이걸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요셉은 17세의 어린 소년이었다. 하지만 지킬 것과 지키지 말아야 할 것, 금기와 허용의 선을 그을 줄 알았다.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알았고, 의리를 지켰다. 더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았다. 그래서 죄 지을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성인들이 스스로 죄의 늪으로 걸어 들어가겠다고? 그것 때문에 울게 될 가족들이 불쌍하지도 않은가? 일시적인 쾌락의 기쁨을 충족시키기 위해 언젠가 추락한 자신의 초라한 신세가 보이지 않는가? 돈을 벌겠다고 사람들을 추락하게 만들고, 타락의 올무를 씌우겠다고?
인생은 짧다. 그렇기에 더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잘 해주어야 한다. 아픔과 상처를 줄 틈이 없다. 눈물을 흘리게 하지 말고 눈물을 닦아 줘야 한다. 함께 침실에 누울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드는 만큼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후회가 되지 않도록. 짧은 인생을 마친 후에 영정 앞에 선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생각해 봤는가? 하나님 앞에 가면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텐데, 하나님의 얼굴을 미리 한번 내다보면 안 될까? '예 이놈!'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야'라는 부드러운 음성을 듣기 원하지 않는가? 그러기 위해 거부할 것은 단호하게 거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