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목사.
(Photo : 기독일보) 김범수 목사.

살다보면 지난날들을 후회할 때가 있다. 나름대로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때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미안할 때가 있다. 구석에 쳐 박혀 있던 사진첩의 먼지를 털어내고, 십 수 년 전에 찍은 촌스러운 사진을 볼 때 혹시 누가 볼까 금방 덮어 버린다. 아니 아예 그 사진을 빼어서 찢어 버릴 때가 있다. 그 사진이 지금의 나와 다를바 없는 나 자신인데 그 모습이 지금 싫은 것은 무엇인가? 나름대로 어깨에 힘주며 허리를 펴고 하나, 둘, 셋 하며 찍은 사진이 지금에는 "오 마이 갓"하는 것은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달리는 꿈을 꾸고 있으며, 쇼핑을 즐기며, 영화구경을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도 똑같이 푸른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며 공을 넣기를 원하는 것을 안다. 그때 이것을 알았더라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나는 재물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재물에 대해 고민하고 염려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재물이 넉넉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짐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그때 이것을 알았더라면 넉넉한 사람들의 호의가 재물의 풍요에서만이 아니라 재물을 사용하는 그들의 지혜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지금은 임금님이나 왕과 대통령이 세상에서 최고로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이것을 알았더라면 임금님이나 대통령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시간 쫓기며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인 것을 알았을 것이다.

지금 나는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별로 큰 일이 아닐지라도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의 즐거움을 보석으로 여기고 있다. 그때 이것을 알았더라면 큰 일을 하는 사람을 그냥 작은 일 하는 사람보다 더 높게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나는 신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 그 사람들이 얼마나 사회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마음속으로 격려하며 감사하며 그들의 수고를 통해 더욱 살기 좋은 사회와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때 이것을 알았더라면 남들을 위해 앞장서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알았을 것이다.

지금은 길가에서 광고용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주는 것을 정성스럽게 받는다. 그것이 때로는 그들의 직업이고 일이라고 알기 때문이다. 그때 이것을 알았더라면 귀찮다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길거리에 서서 도움을 구하는 홈리스들에게 동전하나라도 건네주곤 한다. 그때 이것을 알았더라면 그들을 일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대로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작은 일로 칭찬해도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그때에 이것을 알았더라면 칭찬 한마디에 자존감을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일등이 아니고 꼴등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여유를 갖는다. 일등도 잘했지만 꼴등도 아주 잘했기 때문이다. 그때에 이것을 알았더라면 아들이 공부를 못했을 때 마음이 덜 아팠을 것이다. 지금 나는 홀로 사는 사람들을 보면 홀로 산다는 것 하나만의 이유로 외면하거나 무엇인가 잘못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때에 이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과부니, 홀아비니, 이혼녀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생각조차 않았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 지금 잘한다고 하여도 또 나중에는 후회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럼에도 오늘을 최선으로 산다면 미래에는 오늘처럼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에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 했던 일을 지금도 하고 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