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규 목사.
(Photo : 기독일보) 박석규 목사.

사순절을 맞아 가정 예배를 드리며 찬송을 부르다 아내가 우는 바람에 나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울면서 둘이 부른 찬송이 147장이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 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 된줄 알고 버리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입어서 교만한 맘을 버리네

못박힌 손 발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 우리를 위해 쓰셨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이 찬송은 촬스 웨슬레(Charles Wesley)와 더불어 영국 찬송계의 巨木, 찬송계의 개척자, 찬송가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아이작 왓즈(Isaac Watts)가 갈라디아서 6장 14절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는 말씀에 의거하여 작사하고, 불멸의 찬송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하려 함은'을 비롯하여 1,500여곡을 작곡한 '미국 찬송가의 보물'이라 자랑하는 로웰 메슨(Lowell Mason)이 작곡한 찬송이다.

가사 4절 모두가 心根을 울려준다
부르고 또 부르노라면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저절로 생각나게 만든다.

우리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지나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사순절의 중심은 십자가다.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 들이고 체험했느냐?
여기에 진짜 그리스도인이냐 가짜 그리스도인이냐가 가려진다.

십자가의 道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백하기는
어느 성서학자, 목사, 교사도 십자가를 이해시킬 수 없다.
십자가의 신비를 꿰뚫어 보일 수 없다.

다만 십자가는 오로지 체험이다.
우리가 십자가로 가까이 가까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면 영향을 받고 삶이 변하는데 놀란다.
십자가는 신비스러운 능력이다.
신앙이 성장했다면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며 십자가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우리 죄 때문에 매맞고 상처 입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다.
십자가를 끌어안고 매달린다.
험한 십자가 고통을 느끼고 싶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으라'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으면 주님의 뒤를 따라갈 수 없다.
따라 가려면 겪어야 하는 고난이 있다.
자기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름대로의 십자가가 있다.

목회자이기에 져야하는 십자가, 직분자이기에 져야하는 십자가, 그리스도인이기에 져야하는 십자가가!!
향락도 포기하고, 명예와 지위, 인기와 권리를 포기하며, 지혜도 포기해야하는 십자가
그 십자가 싫다고 내려놓는다면 제자의 자격을 상실한게 아닌가?

오늘 아침
왜 이렇게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가 생각나는지

네로의 박해를 피해 로마를 빠져 나와 한참을 걷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난다.
놀란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께서 대답하신다.
'네가 버리고 나온 로마에 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간다'
이말을 듣고 베드로는 발걸음을 돌려 로마로 들어간다.
로마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다 붙잡혀 十字架 刑을 선고 받는다.
그때 베드로는 생각한다.
감히 내가 주님과 같은 모양으로 죽을 수 있나
'나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달라'고 울부짖는다

그렇게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

예수 나를 오라하네 예수 나를 오라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주의 인도하심따라 주의 인도하심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